괜찮아, 오늘의 너도
오늘 아침, 내 머릿속 잡념들은 마치 밤사이 모든 대화를 훔쳐 간 도둑 같았다.
덕분에 유난히 맑아진 정신으로 난잡을 떨었고,
그 결과 30분이나 지각했다.
늦은 출근길, 자동차 안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는 전보다 한결 일상처럼 느껴졌다.
진행자와 패널의 수다 떠는소리가 내겐 ‘정신없는 아침 뉴스’가 아니라
‘동네 친구와 나누는 담소’처럼 들렸다.
매장 문을 열자 고무나무가 은은한 초록빛으로 나를 반긴다.
“밤새 별일 없었지?”
그 푸른 입맞춤에 나는 답한다.
“덕분에 한결 개운해.”
커피 머신의 모터가 웅웅 돌아갈 때,
그것은 마치 아침잠을 깨우는 작은 기계의 합창 같다.
전기주전자는 보글보글 끓으며,
정적 속에 묻혔던 매장에 생기 같은 소리를 채운다.
오늘은 왠지 라테가 당겼다.
우유를 데우고 에스프레소를 추출한 뒤,
새로 산 하트 모양의 컵에 거품을 부었다.
검은 컵이 하얗게 변하는 순간,
초등학생 시절 짝꿍에게 몰래 편지를 건네던 설렘이 되살아났다.
오로지 하트가 선명해질 때까지 숨죽여 바라보던 그 눈빛처럼,
나도 몰입했다.
하얀 캔버스 위로 에스프레소를 붓고 바닐라 시럽을 뿌리자,
코끝에 커피와 우유, 시럽이 어우러진 향연이 펼쳐진다.
한 모금 들이킨 입안엔 부드러운 거품이 춤추고,
그 달콤 쌉싸름함이
“역시 탁월한 선택”이라는 한마디를 속삭인다.
라테의 온기를 곁에 두고 꺼낸 책은
유희경의 산문집 『반짝이는 밤의 낱말들』.
조용한 문장 속에서 울리는 작가의 목소리는 마치 잔잔한 강을 흐르는 물소리 같다.
‘손금’이라는 글을 읽다 보면, 우리는 누구나 손바닥에 삶의 지도를 새긴 채 태어났음을 깨닫는다.
'손에는 소리가 없으니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데, 졸졸 물이 흐르는 것 같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밤새 고요했던 매장에 반짝이는 물방울이 흘러드는 상상을 했다.
손을 귀에 대면 물소리가 들릴 거라는 작은 기대로, 나는 손금을 꾹 눌러본다.
그러다 문득 옛 기억이 떠오른다.
아내에게 “내가 손금을 읽어 줄게”라며 시도 때도 없이 손을 내밀었던 날들.
사실 그때의 내 속마음은 손금이 아니라 따뜻한 그녀의 손바닥이 필요했던 것뿐이었다.
그녀의 손을 잡고 느낀 온기와, 웃음 속에 감춰진 말없는 위로가 내게는 그 무엇보다 소중했다.
오늘의 나는 그때 내 손금 위에, 그리고 당신의 손금 위에 바람을 담아 본다.
'행복과 건강이 가득하기를.'
손금을 따라 그어 내려가는 검지 끝에서,
작은 소망들이 반짝인다.
이 손바닥의 지도가 언제나 평탄하지만은 않겠지만,
비틀리고 휘어진 선 위에도 빛나는 순간들이 분명 새겨져 있으니.
그래도 괜찮다.
나는 다시 라테를 한 모금 마셨다.
입안 가득 퍼지는 거품의 부드러움처럼,
오늘의 나는 이 여백과 쉼이 빚어낸 위로로 충분히 충만해졌다.
차갑게 식어버린 잡념 대신,
따끈한 한 잔의 라테와 손금의 속삭임을 마음에 담는다.
그리고 속삭인다.
“오늘도, 별일 없이 살아 있어 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