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버스, 한 정거장 멈춤

괜찮아, 오늘의 너도

by 시원시원

디스크 파열로 나의 루틴 버스가 한 정거장에서 멈춰 섰다.

출발 안내 방송은 울리지 않았고, 다음 정류장도 기약이 없었다.
나는 버스를 두 손으로 밀어 보기도 했다.
하지만 바퀴는 한 뼘도 굴러가지 않았다.
버스의 발전기를 맡은 건 허리였고, 발전기가 고장 나자 몸도 마음도 동시에 방전됐다.
정적만이 길 위에 깔렸고, 녹은 점점 버스 차체를 물들였다.


“내일이면 괜찮아지겠지.”
희망고문이 시작되자, 통증은 허리에서 다리로 내려갔다.
나는 조금만 걸어도 바닥에 주저앉았다.
쉬던 루틴은 곧 ‘게으름’으로 오해되기 시작했고,
3년 동안 이어온 운동, 올해의 글쓰기와 독서는 마음속을 맴돌다 사라졌다.
그렇게 8개월이 흘렀다.


사실 '쉼'이라는 말이 부끄러울 정도로 지독한 무기력이었다.
나는 '달려온 나에게 주는 상'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몸이 무너지면 마음도 함께 내려앉는다는 걸 새삼 배웠다.
이쯤에서 알아버렸다.
이 시기의 나에게 필요한 건 멋진 자기 계발이 아니라, 건강이었다.

다행히 조금씩, 정상으로 돌아오는 몸이 무너진 마음을 일으켜 세웠다.


“나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나는 셀프 암시를 매일 건넸고, 몸이 버텨줄수록 루틴은 더 간절해졌다.
그리고 어느 날,
멈춰 있던 나의 루틴 버스가
마침내 시동이 걸렸다.
8개월의 공백은 실망도 데려왔지만,
그보다 큰 감정은 감사였다.
“다시, 출발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로도 충분했다.


퇴근 후, 현관문을 열자 아내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원하는 자유가 시간의 자유, 경제적 자유라고 생각했지? 그게 다가 아니더라.
진짜 자유는, 우리의 능력을 마음껏 펼쳐서 세상과 나눌 때 오는 거야.”


말끝이 묵직하게 가슴을 눌렀다.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인생의 끝이 죽음이라면 너무 단순하다.
내가 생각하는 인생의 끝은 ‘자유가 멈출 때’ 이다.
그러니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건, 내 능력이 아직 살아 있다는 뜻이다.
그 능력을 펼칠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를 얻는다.


10월이 되면 나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그동안 손보아온 매장 한편을 정식 카페로 연다.
간판 이름은 오래 고민 끝에 정했다.
‘인생 끝에 시작’.
조금 철학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우리는 끝에서 다시 시작할 때 종종 더 멀리 간다.
고장 난 버스가 정비소를 거쳐 새 엔진으로 돌아오듯,
내 루틴도, 내 일도, 내 하루도 그렇게 다시 달려볼 생각이다.


버스는 다시 움직인다.

느리면 어떤가.
한 정거장 더, 그리고 또 한 정거장.
오늘의 내 운전석에는,
통증 대신 의지, 두려움 대신 호기심,
그리고 무엇보다 다시 시작할 용기가 앉아 있다.


다음 정류장의 이름은 이렇다.
자유. 나눔. 그리고, 시작.
나는 방향지시등을 켜고, 부드럽게 차선을 변경한다.
창밖으로 스치는 바람이 말한다.
“출발합니다. 인생 끝에,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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