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오늘의 너도
나는 꽤 오랜 시간
‘중간’이라는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서 누군가를 위해 지금 서있는 거라면,
내 앞에 거대한 빙하가 가로막혀 있어도
나는 그 자리를 지켜야 했다.
하지만 곧 빙하에 부딪혀
내 삶의 배가 침몰하게 되면,
그제야 슬며시 후회를 꺼낸다.
‘내가 왜 그랬을까.’
‘굳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까.’
그리고 슬며시 방향을 튼다.
처음엔 내 탓이더니,
나중엔 그들의 탓이 된다.
내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가
그들 때문이라는 합리화가 시작된 것이다.
결국, 나는 침몰하는 배 안에서
모든 것을 품는 결정을 하며
스스로를 고귀한 희생자로 포장하기 시작한다.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각본처럼 말이다.
나는 한때,
누군가의 삶 속에 들어가
그들의 무너진 삶을 ‘내가’ 바로 세워주겠다는
오만한 착각 속에 빠져 있었다.
‘괜찮아, 내가 버티면 돼.’
‘좋은 사람은 참는 사람이야.’
그렇게 누군가를 위해,
내 시간을 내어주고,
내 마음을 내어주고,
결국에는 내 삶까지 조금씩 내어주었다.
그러다 보니,
정작 나는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10년 전의 나.
책상 앞에 앉아,
성공한 사람들의 강의를 반복해서 들었다.
‘나도 저들처럼 될 수 있을까?’
그들의 말 하나하나에 희망을 걸었었다.
그러다 그 열망은
어느새 가짜 부자들의 화려한 말에 휩쓸렸다.
나는 그들의 삶 속에 머무르며
하루빨리 부자가 되려 안간힘을 썼고,
결국 몇 번의 그릇된 선택 끝에
아무것도 남지 않은 채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때 문득 떠오른 말,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
그래서 나는
중간이라도 차지해 보겠다며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중간의 삶이란
언뜻 보면 꽤 그럴듯하다.
위도 아니고 아래도 아니니,
크게 상처받지도 않고,
크게 두드러지지도 않는다.
‘이 정도면 괜찮지.’
‘적당히, 무난하게, 중간만 가자.’
이렇게 중간은
마치 편안하고 안전한 자리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중간은
종이를 반으로 접힌 선처럼,
항상 팽팽한 긴장감 위에 놓여 있는,
올라가기엔 버겁고,
떨어지긴 쉬운,
절묘한 그 균형.
그런 위치에 있는 나는,
혹여 떨어질까 두려워
나를 칭칭 감아 고정시켰다.
덕분에 바람에 흔들릴 일은 줄었지만,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살아 있다는 건,
움직이는 것이고
흔들리는 것이어야 하는데.
나는 어느새
흔들리지 않는 대신
죽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정작 두려운 건,
멈춰 있는지도 모른 채
그 삶에 길들여지는 나였다.
한 발자국만 나아가면
조금 더 괜찮아질 것을 알면서도,
떨어질까 봐
한 발도 떼지 못하는 나.
그러다 문득,
“중간에 있던 나는… 지금 어디로 간 걸까?”
라는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내 안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알게 된 사실
지금의 나는
조금은 덜 착해도 괜찮다고,
조금은 불편하게 보여도 괜찮다고,
그 대신
나를 잃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고.
어쩌면 우리는
중간이 주는 안정감에 기대어
그 너머를 상상하지 않게 된 건 아닐까.
하지만 잊지 말자.
중간은 잠시 머무를 수는 있어도,
영원히 살아야 할 곳은 아니라는 것을.
그러니 오늘,
단 한 걸음만이라도 내디뎌보자.
그 한 걸음이
익숙한 중간에서 벗어난 나를 만나게 해 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나’는,
생각보다 꽤 괜찮은 사람일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