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평생이용권의 환장 콜라보

괜찮아, 오늘의 너도

by 시원시원

여름의 끝자락, 아직 이른 가을바람이 슬쩍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 바람이 내 어깨를 스치자, 문득 4년 전 오늘이 떠올랐다.
19년 만에, 다시 매장을 열었던 그날.


그때의 설렘과 긴장은 여전히 이 바닥 어딘가에 붙어 있는 듯하다.
가만히 앉아 매장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그래, 이쯤이면 3주년 맞이 리오픈도 나쁘지 않지.”


그러자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뭔가 바꾸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시작은—바닥 타일이었다.


3년 전, 밝고 따뜻한 분위기를 꿈꾸며 골랐던 타일은
시간과 먼지의 콜라보로 이제는 칙칙한 회색이 되어 있었다.

“이번엔 제대로 가자.”


나는 마음을 굳혔다.
심지어 매장 한편의 작은 카페 공간도 확장해 보기로 했다.
혼자 설레고 있는 와중, 그 소식을 때마침 매장에 놀러 온 친구에게 털어놓았고
그는 그 특유의 절레절레를 시전 했다.

“야, 매장 정체성 잃는 거 아냐?”


나는 잠시 점잖은 말투를 장착했다.
이건 평생 친구를 설득할 때 쓰는, 일종의 나의 시그니처 페르소나다.

“이보게 친구, 내가 하는 일은 변한 적이 없네.
다만, 매장이 내 취향대로 진화하는 중일뿐이지.”

“손님이 편하고 멋지다 느낀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가?”


친구는 내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다.

“야, 그 말투 진짜 역겨워. 그만해라 좀.”


친구의 예상된 반응에 나는 웃었다.
그리고 슬슬 본론에 들어갔다.


“그래서 말인데, 도와주면 말이야
매장 평생 이용권을 자네에게 주기로 했다네.”


그 말에 친구는 콧방귀를 뀌었다.

“야! 그거 3년 전에도 나한테 줬잖아.
나 이미 평생 이용권 보유자야.”


맞다.

처음 매장 꾸밀 때도, 혼자 감당이 안 돼서
'평생 이용권'이라는 거창한 리워드를 내걸고 도움을 요청했었다.

하지만 이번엔 한 술 더 뜨기로 했다.


나는 능청스럽게 말했다.

“그때 준 평생 이용권 말이야…
조건이 있었다네.”

“무슨 조건?”

“매장의 모습이 바뀌지 않을 때까지만 유효하다는 조건이었지.
지금은 타일도, 공간도 다 바뀌었으니 아쉽지만… 소멸되었다네.”


친구는 말을 잇지 못했다.
말 대신 한숨과 욕설이 흘러나왔다.

“지랄하고 있네, 진짜…”

“야! 그런 법이 어딨어? 나는 죽을 때까지 이 매장 이용권 쓸 거야!”


나는 여전히 능청스럽게 미소 지었다.

“좋네. 그럼 자네의 평생이용권은 보장하겠네."
"다만, 앞으로는 자네 부탁과 요청은
비용을 지불하거나 들어주지 않을 생각이네."
"사실 이용권보다 그게 더 큰 혜택 아니었나?”


친구는 무언가 반박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결국 고개를 푹 숙이고 말했다.

“아, 짜증 나… 알았어. 도와줄게.
근데 언제 할 건데?”

“지금.”

“지금? 지금 당장?”

“그렇네, 친구."

"이것이 타이밍이라는 거네,

생각났을 때 안 하면, 영영 하지 못한다네.”


그렇게 우리는 타일 매장으로 향했다.
나는 눈에 띄는 타일을 골랐고, 바로 결제했다.

사장님은 굳이 지금 결제 안 해도 된다며 말렸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결제를 안 하면,

제 마음도 바뀔까 봐요."
"생각이 식기 전에 꺼내 먹어야죠.”


돌아온 매장에서 우리는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쓸 것과 버릴 것을 나누고,
‘언젠가 쓸지도’ 하는 것들은 그냥 버렸다.

3평 남짓한 공간을 정리하는 데
무려 반나절이 걸렸고,
75리터 쓰레기봉투 두 개가 꽉 찼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출장 요청.

잠깐 망설였다.
‘가지 말까?’
하지만 곧 몸을 일으켰다.

“매장 일이 일 순위지.”


그날의 출장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점심은 오후 5시 30분,
배도 마음도 비워진 끝에야 겨우 한 끼를 채웠다.


늦은 점심을 마치고
커피 한 잔 내려놓고 앉았을 때,
비로소 꿀맛 같은 고요가 찾아왔다.


그런데 이상했다.
피곤하기보다, 속이 시원했다.
오늘 하루가 유독 술술 풀렸다는 느낌이 들었다.

‘왜일까?’ 생각해 보니,
문득 오전의 정리 시간이 떠올랐다.


버릴 걸 버리고,
쓸 걸 나누고,
비워낸 그 시간이 오늘의 흐름을 만든 건 아닐까.


정리는 단지 공간을 정돈하는 일이 아니라,
생각과 마음의 흐름을 다시 정비하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모든 시작에는,
친구의 평생 이용권이라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명분이 있었다.


"고맙네, 친구."
"너의 잔소리와 한숨,
시큰둥한 표정과 무심한 도움 덕분이라네."
덕분에 내 공간도, 마음도 새로워졌다네."


"다시 말하지만,
그 평생 이용권은 소멸되었네."
"하지만 우리의 환장 콜라보는 여전히 유효하다네."
"앞으로도, 아주 오래도록 잘 부탁함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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