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계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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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야근 탓인지 늦잠을 잤다. 어제 휴대폰에 있는 알람 기능에 정확히 5시에 설정을 해놓았는데 울리지 않았다. 가뜩이나 연말이라 할 일이 태산인데 휴대폰마저 말썽이라니 어처구니없었다. 큰 쌀가마니가 몸에 들려 있는 것 같았다. 알람이 울리지 않은 휴대폰을 침대에 집어던지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발을 질질 끌다시피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왔다. 아내는 벌써 일어나 아침 준비를 한다. 그 모습을 보고 난 아내에게 말했다.
"당신 일어났으면 날 깨웠어야지"
나를 깨우지 않은 아내에게 신경질스러운 말을 건넸다. 아내는 힐긋 쳐다보더니 하던 일을 한다. 가뜩이나 밝은 조명 때문에 찌푸린 표정을 하고 욕실로 들어갔다. 칫솔에 치약을 묻히고 입으로 가져가는데 치약이 세면대에 떨어졌다. 짜증이 솟구쳤다. 세면대를 양손으로 잡고 악!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거울을 보았다. 빈 칫솔을 물고 있는 성난 얼굴이 보였다.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내뱉고 치약을 다시 묻히고 양치질을 했다. 세면대에는 떨어진 치약과 입에서 나온 거품치약을 뒤섞여 있었다. 입을 몇 번 헹구자 떨어진 치약만 남았다.
손으로 치약을 문질러 세면대 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찬물로 머리를 감으며 얼굴로 떨어진 샴푸로 세수를 했다. 여자들이 보면 이상할지도 모르지만 남자들은 원래 이렇게 씻는다. 머리와 세수를 동시에 할 수 있는 능력이 남자들에겐 다 있다. 머리를 수건으로 털며 욕실로 나왔다.
"헤어 드라이 어딨어?"
아내는 나를 보지도 않고 말한다.
"늘 있는 곳에 있잖아, 잘 찾아봐"
거긴 벌써 찾아봤다. 없어서 물어본 것인데 잘 찾아보라는 말에 성이 났다.
"찾아봤는데 없잖아, 도대체 매번 물건들을 제자리에 두질 않아"
그제야 아내는 딸아이 방으로 가서 헤어 드라이를 나에게 건넸다.
"거봐 이러니 아무리 찾아도 없지"
헤어 드라이로 머리를 말리는 내내 난 불평의 소리를 잔뜩 풀어놓았다
가뜩이나 어제 야근을 해서 힘든데 가족들마저 날 도와주지 않았다. 베란다에 널브러진 옷들이 보였다. 바지와 체크남방 그리고 외투까지 겹겹이 쌓여 있었다. 체크남방은 여러 갈래의 주름이 어지럽게 잡혀있었다. 한 손에 바지와 다른 손에 구겨진 체크남방을 들고 와서 아내에게 말했다.
"이 구겨진 체크남방을 어떻게 입겠어?"
"다른 건 없어?"
아내는 내 손에 들려 있는 와이셔츠를 낚아챈다. 그리고는 방 안으로 들어간다. 몇 분 후 아내는 주름이 없어진 체크남방을 내게 내밀고는 다시 하던 일을 한다. 난 바지와 남방을 입었다. 방금 다려서인지 가슴과 팔이 따뜻하다. 시계를 보니 벌써 7시 50분이다. 어제 심부장에게 깨졌는데 오늘 지각하면 악마 같은 그놈은 자신의 더러운 입에 내 목을 집어삼킬 것이다. 생각만 해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서둘러 외투를 챙기고 신발을 신었다. 그때 부엌에서 아내가 말한다.
"밥은?"
"지각이야, 어떻게 먹겠어?"
짜증 섞인 말투로 말하고 현관을 나섰다. 우리 집은 25층인데 엘리베이터의 눈금은 지하 1층을 가리켰다. 30초가 지났지만 지하 1층에서 눈금이 고정되어있다. 다시 30초가 흐르지만 여전히 그 상태였다. 내 뒤에 있는 문을 열고 계단 밑을 보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고개를 돌려 엘리베이터를 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눈금은 지하 1층에 고정되어 있었다.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보았다. 2분은 더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이 있었지만 그런 여유 따위는 이미 마음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젠장! 누가 이렇게 오랫동안 잡고 있는 거야?"
''야 이 XXX야!'라고 계단 밑을 향해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난 계단을 빠르게 내려갔다. 한 번에 두세 칸씩 뛰어넘으며 지하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잡고 있는 놈의 면상을 보고 싶었다. 20, 18, 15, 10층이 되자 다리가 저려왔다. 하지만 그놈의 면상을 꼭 봐야 했다. 그리고 어떤 말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당신 때문에 지각하면 책임질 거요?" 이 말을 하기 위해 두세 칸씩 계단을 내려왔다. 8, 4, 1층이 되고 드디어 한층만 걸어 내려오면 그놈의 면상을 볼 수 있었다. 불만을 한껏 승화시킨 얼굴을 하고 지하 1층의 계단을 내려왔다.
한 사람일 거라는 생각을 가졌지만 거기엔 여러 사람이 보였다. 게다가 경비아저씨까지 있었다.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에 다들 나를 쳐다보았다. 경비아저씨는 잔뜩 화가 난 내 표정을 보더니 말한다.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났네요"
"업체를 불렀어요, 오늘 중으로 수리가 될 겁니다"
하필이면 오늘 엘리베이터가 고장이라니 되는 일이 없었다.
"그.. 그런가요"
"어쩔 수 없지요"
"그럼 수고하세요"
지하층에 주차된 차를 타고 아파트 입구를 빠져나갔다. 회사에 오는 내내 내 앞을 끼어드는 차량들이 오늘은 유난히 많았다. 그때마다 입에선 거친 욕설과 핸들 중앙에 손은 쉴세 없이 움직였다.
그나마 다행히 회사에 지각은 안 했다. 심부장의 입에서 나는 더러운 냄새를 맡지 않아도 된 것에 아침에 있었던 일을 잊을 수 있었다.
나는 자리를 앉고 나서야 긴장이 풀렸다. 배가 고파왔다. 휴대폰을 보니 10여분 남짓 시간이 남았다.
지하 편의점에서 간단히 빵이나 먹으려고 외부를 의자에 걸치고 엘리베이터 갔다.
때마침 '띵'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사람들 속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심부장이었다. '젠장'이라는 마음의 소리가 심부장의 얼굴에 닿을 때 심부장은 나에게 말한다.
"일찍 왔으면 자리에 업무 준비를 할 것이지 또 어딜 갈려고?"
심부장의 날카로운 말에 주눅이 들었다.
"그게 아니라. 밑에 잠깐 볼일이 있어서요"
"무슨 볼일?"
"아닙니다. 나중에 하겠습니다."
계속 말하다간 심부장은 치즈에 유혹에 빠진 생쥐처럼 나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선 그와 최대한 멀어져야 했다. 뒤를 돌아 종종걸음으로 자리로 돌아갔다. 자리에 앉고 나자 심부장이 내 뒤로 지나간다. 그때 일으키는 작은 바람이 날 오싹 들게 했다.
업무가 시작되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점심시간이 다될 무렵 김대리가 나에게 왔다.
"이 과장님 심부장님이 부르세요"
난 놀라서 되물었다.
"심부장이?, 왜?"
"그건 저도 몰라요"
"제가 화장실에 있는데 심부장님이 오셔서 과장님 불러오라고 말하셔서.."
"그... 그래 알았어"
심부장이 왜 나를 불러야 하는지 알아야 했다. 분명 어제와 같은 일이 반복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절대로 오늘 야근은 절대로 안된다고 생각했다. '어제 야근 때문에 잠도 못 자서 피곤한데 오늘도 야근이면....'
이런 생각을 하니 심부장의 의도가 더 궁금했다.
"어제 야근하면서 서류는 전부 올렸잖아"
"오케이 해놓고 왜 부르는 거야"
아무리 생각해봐도 심부장에 부르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짜증이 밀려왔다.
시간 끌다가 또 한소리를 들을까 싶어 심부장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
"똑똑"
"이 과장입니다"
"들어와"
"김대리에게 들었습니다."
"부장님이 절 찾으셨다고요"
심부장은 내 얼굴을 보더니 한 서류를 나에게 넘긴다.
"이 과장 자네가 작성한 서류 보았는데, 몇 번을 보았지만 아니야"
"너무 복잡하단 말이지"
어이가 없었다. 어제는 그리 좋다고 해놓고 이제 와서 말을 바꾸다니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제는 부장님이 좋다고 하셨는데요?"
"그랬지, 그런데 자꾸 보니 너무 복잡하단 생각이 들어"
"좀 더 간단히 보기 편하게 해서 가져와"
"네?"
"다시 해오라고!"
"이것도 제가 어제 야근하면서 했는데요"
"왜 하기 싫어?"
소심한 반항을 해보았지만 심부장의 결정을 바꿀 순 없을 것 같았다.
"아,,,,아닙니다"
"다시 해오겠습니다."
이 서류가 어떤 서류인가?
심부장 동기인 강 부장에게 만년필과 맞바꾼 서류 아닌가.
"강 부장님, 그러니깐 이 파일이 심부장님이 과장 때 쓰던 파일이 정말로 맞는 거죠?"
"글쎄 그렇다니깐, 이 과장, 이 파일로 서류를 작성하면 심부장은 분명 흡족할 거야"
"내 장담함세"
"정말 감사합니다. 부장님"
"내가 뭘 , 만년필 선물까지 준 이 과장이 더 고맙지"
그렇게 까지 해서 얻은 서류인데, 다시 해오라는 심부장에게 짜증이 밀려왔다.
"당신 거라고"
"심부장 이 xxx야"
"당신 파일이 별로라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내 마음속 말을 심부장의 태연한 표정에 내뱉고 싶었다.
아무리 변명을 해보았자 무의미하다는 것을 잘 알았다.
절망스러운 표정을 하고 심부장의 방을 떠나려는데 그가 말했다.
"아참 , 이 과장"
"오늘 최대리가 아파서 병가를 냈어"
"그러니 자네가 거래처 좀 다녀와야겠어"
'심부장이 미쳤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요?"
"그건 최대리가 하는 일인데요"
"과장인 제가 그런 일 까지 한다는 게..."
난 말끝을 흐렸다.
"이 사람아 위아래가 어디 있어?"
"자네가 직속인데 좀 도와주면 최대리도 고마워할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 네가 하든지'라고 말하고 싶었다.
심부장의 얼굴을 보면 정말로 그 말을 할 것 같아 다른 곳을 보았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더는 없으시면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오늘 할 일이 많아서 또 야근해야 할 것 같네요"
은근슬쩍 불만 섞인 말을 해보았다.
하지만 그는 비웃기만 할 뿐이다.
난 자리에 앉자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이미 야근은 확정이다. 이곳에서 머물다간 정말 큰일이 날정도로 마음에 울화가 치솟았다.
차라리 거래처에 먼저 다녀오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외투를 챙기고 회사를 나섰다.
거래처는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인근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지갑을 열고 카드를 살펴보았다. 평소에 지하철을 이용을 하지 않아 카드에 교통카드가 되는 기능을 추가하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지갑을 열어보니 주유 카드 뒷면에 교통카드라고 쓰여있었다.
"오늘 되는 일이 없었는데 너라도 있어 위로가 된다"
개찰구에 주유카드를 찍고 승강장을 내려갔다.
때마침 지하철이 들어오는 방송이 들렸다. 그 소리에 맞추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뛰기 시작했다. 거기 분위기에 휩쓸려 나도 같이 뛰었다. 사람들이 향하는 그곳으로 뛰자 지하철 문이 열였다.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 그 안으로 들어섰다. 조금 뛰었건만 숨이 가빠왔다.
"에고 나도 늙었나 보다, 조금 뛰었는데 힘이 하나도 없네"
지하철 문이 닫히고 천천히 움직였다. 덜컹 덜컹을 몇 번 만에 빠르게 달렸다.
그 리듬감을 느끼는 찰나 방송이 들려왔다.
"이 열차는 신도림행 열차입니다"
"다음 정거장은 교대입니다"
이럴 수가, 사람들의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뛰어 탄 열차가 반대방향이었다.
그럼 그렇지 오늘은 정말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교대에서 다시 나와 반대편 승강장 입구에 열차를 기다렸다.
잠시 후 열차가 도착하고 거래처가 있는 왕십리로 향했다.
회사가 있는 강남역에서 사람들이 제법 많이 내렸다. 그래서 다행히 앉아서 갈 수가 있었다. 내 옆에는 산행 복장을 한 사람이 있는데 계속 코를 만지작거렸다.
지금까지 겪은 일을 생각하면 필히 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최대한 그와 멀어지도록 다리를 오므렸다. 그는 몇 번을 코를 들어마시더니 눈을 질끈 감았다. 아마도 재채기를 할 모양이다. 주위에는 나를 포함해 사람들이 가득했다. 사방팔방으로 틈새가 없었다. 재채기를 하는 것조차 허용을 할 수 없는 공간에 그는 안간힘을 쓰며 참고 있었다. 난 불안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더 이상은 안 되겠는지 그는 자신의 주머니에 손을 넣어 무언가를 찾았다. 하필이면 그 순간에 참지 못할 간지러움에 아저씨는 그만 '에이취'라는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이물질을 튀었다.
내 귀가 축축하다. 분명 여기는 지하철 안이다. 비가 새지도 않고 물이 있을 턱도 없고 오늘 날씨는 화창하다.
아저씨는 재채기 순간 고개를 나를 향해 돌렸다. 아저씨 나름대로 한 손으로 막는다고 했지만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온 이물질은 나의 옆면의 얼굴을 강타했다.
"으악!"
나도 모르게 비명이 나왔다.
그는 미안했는지 자신의 소매로 내 얼굴을 닦아주었다.
난 뿌리치면서 말했다.
"그만하세요, 더 묻잖아요"
난 체념한 듯 가방 안에 휴지를 꺼내 내 얼굴을 닦는다
"미안해요 , 나도 모르게... 정말 미안합니다"
사람들은 나와 그를 쳐다보았다. 난 거기에 더 이상 있을 수 없어 그다음 정거장에서 내렸다. 그리고 화장실에 가서 그의 흔적을 지우고 나서 지하철을 빠져나왔다.
원래는 왕십리까지 가야 했지만 여기서 택시를 타도 거리는 같았다.
지하철 밖으로 나와 택시를 잡으려 길가에 서있었다. 5분을 그 자리에서 서있었지만 택시가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좀 더 택시가 많은 곳으로 걸어갔다. 한 골목을 지나고 다른 골목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난 큰 길가에서 택시가 오는지 보며 걷고 있는 터라 골목에서 오는 오토바이를 보지 못했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내 몸이 붕 떠올랐다. 너무 황홀했다. 내 가방 안에 서류들은 나를 따라 날아올라 펄럭거렸다.
자유가 이런 것인가? 내 몸은 새털처럼 가벼웠고 어쩌면 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갑자기 온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빌딩도 거리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하얀 하늘을 보며 공중에 누워있었다. 잠시 후 하얀 공간이 일그러지며 흐릿한 무언가가 나에게 다가왔다.
마치 무더운 날 아스팔트에 일렁이는 아지랑이처럼 그 흐릿한 형체는 점점 뚜렷한 형제로 바뀌어 갔다.
사람 모양으로 변하더니 나에게 종이 한 장을 건넸다. 하지만 난 팔을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다리를 움직여 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몸을 뒤집으려 해도 소용이 없었다.
종이는 그 형체를 벗어나 펄러이더니 내 눈앞에 멈췄다. 거기에는 글이 적혀 있었는데 다음과 같았다.
너의 영혼은 몸과 분리되었다.
너는 선택을 할 수 있다.
죽음을 택하거나 제삼자로 너의 로봇을 조정할 수도 있다.
어떤 것을 선택하겠느냐?
정확히 내 눈에 종이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것도 소리를 내고서 말이다.
난 꿈이라 확신했다. 왜냐면 이 느낌은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교통사고로 이때와 같이 하얀 세상을 본 적이 있었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은 대도시가 되었지만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는 시골이었다.
초등시절 난 개구쟁이였다. 그날도 친구와 함께 어떤 장난을 칠까 궁리하던 끝에 다리가 보였다.
조그만 다리였는데 위에는 차도였기에 다리 밑으로 사람들이 자주 건너갔다. 나도 학교를 마치면 친구와 함께 다리 밑으로 찻길을 건너곤 했는데 그날 땨라 차도를 가로지르고 싶었다. 지금 말하면 무단횡단이었다.
친구에게 내기를 하자고 말했다.
"야 넌 다리 밑으로 가고 난 찻길 위로 갈 테니 누가 더 빨리 건너가는지 내기하자"
"그래 좋아"
친구와 난 '하나 둘 셋'이라는 구호와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그때는 어려서 주위를 살필겨를도 없었다. 그저 친구를 이기겠다는 마음으로 찻길을 건넜다.
거의 건널 때쯤 달리는 차에 내 몸은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때 처음 하얀 세상을 보았다. 정신을 잠깐 차려 보니 울고 있는 어머니 품에 안겨 있었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잃었다
그때 이후 다시 하얀 세상을 만난 것이다. 꿈이길 바랬다. 종이는 계속해서 선택하라고 내 얼굴 앞에서 말하고 있었다. 선택해야 했다. 순간 아내와 딸 그리고 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 내가 죽으면 안 되지"
종이에게 큰소리로 제삼자의 삶을 선택하겠노라고 소리쳤다.
물론 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내 마음의 소리였다.
그러자 종이는 다른 글을 보여주었다.
너는 제삼자로 너의 로봇을 조정하는 것을 선택했다.
이 선택은 다음과 같은 규칙이 있다.
1. 로봇은 너와 생김새는 물론 감정이나 행동도 똑같다.
2. 너는 그 로봇을 조정할 수 있다.
3. 조정법은 다음과 같다.
하루에 한 가지 행동을 정할 수 있다.
하루 중 중간에 고칠 수 없다
직접적인 조정을 할 수 없다.
(천재가 된다, 문제를 해결해라, 등등)
로봇은 밤에 잠이 들 때만 네가 들어갈 수 있다.
그때 너는 로봇에게 명령할 수 있고 그것이 다음날 로봇은 행동으로 보여준다.
4. 일 년이 지나도 너의 로봇이 지금과 같은 네 모습이면 너는 죽음을 맞이한다.
5. 일 년이 지나 너의 로봇이 지금보다 발전된 로봇이면 너는 다시 내 몸으로 돌아갈 수 있다.
동의한다면 '관찰자로서'라고 말해라
제삼자로써의 선택을 하지 않는다면 난 죽을 것이다.
나에겐 다른 선택권이 없었다.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의 뒤로 한채 말이다. 이미 내가 가야 할 길은 정해져 있었다.
"관찰자로서"
내가 말함과 동시에 종이에 내 이름이 새겨지고 날아간다.
종이는 흐릿한 사람의 형체 속으로 들어가 사라지더니 그 형체마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