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다. 게으름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오늘도 어김없이 4시 30분에 자신의 일은 한다. 나는 휴일이라 늦잠을 자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런 마음을 손은 잘 알기 때문에 알람을 멈춘다.
다시 다른 세계로 여행하려 무의식 순간을 찾기 위해 이불을 뒤집어 썼다. 하지만 이미 다가오는 의식에 눈을 떠야 했다. 이불속에서 몸부림의 치며 안간힘을 써보려 했지만 역부족이다. 하는 수 없이 몸을 일으켰다 침대에 멍하니 앉아서 어두운 방안을 바라보았다. 늦잠 자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아 짜증과 함께 머리를 손으로 휘감았다.
내 머리 위에 누군가 밤새 만든 새둥지를 망가트리고 나서야 침대에서 몸이 빠져나왔다. 방문을 열고 욕실로 가서 텁텁한 입안을 양치질로 씻었다. 찬물로 세수까지 하니 이제야 정신이 맑아진다. 욕실에서 나와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보았다. 5시 10분, 의식과 싸워 미적거린 덕분에 평소보다 20분이 더 걸렸다. 나의 승리라 생각하니 괜히 웃음이 나온다.
나는 어두운 새벽에 밝은 거실에 있다. 바닥에 전기 매트를 켜고 엉덩이를 지진다. 따뜻함이 엉덩이를 타고 몸안에 들어왔다. 기분이 좋아 몸을 좌우로 흔들었다. 그랬더니 좀 전에 사라졌던 무의식이 온다. 거실에 있던 작은 담요를 찾았다. 몸을 끌어 담요를 가져와 둘둘 말았다. 완벽한 베개를 만들고 몸을 눕혀 머리에 가져다 놓았다. 이제는 몸 뒤쪽이 전체가 따뜻하다. 이런 상태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바라던 세계로 갈 것이다. 눈이 점점 무거워진다. 눈 커플이 닫히며 다른 세계의 문이 열린다. 하지만 어둠은 오지 않았다. 이럴 수가!, 거실 불을 끄지 않았다. 눈 위에서 밝은 조명이 빛나는 탓에 길을 찾을 수 없었다.
다시 일어나 스위치를 꺼야 했다. 단 몇 초면 그 문제를 해결하겠지만 난 그럴 의지 따윈 가지지 않았다. 아니 갖고 싶지 않았다. 지금 내 상태에서 스위치는 지구 반대편 외딴섬에 있는 것과 같다. 그곳까지 가려면 귀찮음 비행기를 타고 노곤함의 배를 타야 한다. 무엇보다 무의식이라는 달콤함을 버려야 한다. 가장 힘든 일이다. 바닥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제야 잠에 빠져들었다.
나는 다른 세계에서 하늘을 날고 있었다. 때론 동물도 되고 부자도 되었다. 그러다 늪 속에 갇혔다. 점점 빠져드는 몸에 허우적거렸다, 그랬더니 이번엔 흰 눈이 가득한 세상에 서있다. 잠옷 차림인데 춥지 않다. 걸어가다 갑자기 땅이 갈라진다. 눈들이 미친 듯이 그 속으로 떨어진다. 나는 힘껏 반대 방향으로 뛰었다. 앞을 보니 거대한 눈이 나를 향해 다가온다. 눈을 감지만 소용이 없다. 이 세계는 아무리 눈을 감아도 다 보이기 때문이다. 순간 모든 것들이 사라진다.
잠깐 잔 것 같은데 1시간이 흘렀다. 내가 자고 있는 동안 가족들도 일어났다. 아직 정신이 몽롱하다. 이상태로 있다간 다시 그 세계에 있을 것 같았다. 입속에 텁텁함을 지울 무언가가 필요했다. 다시 욕실로 가서 문제를 해결하고 찬물로 세수를 했다. 집 나간 정신이 상쾌함을 가지고 돌아왔다.
우리 가족은 휴일에 산행을 한다. 아이들은 매번 싫은 눈치다. 하지만 자연의 중요함을 알기에 가급적이면 데려가려 한다.
난 아이들에게 물었다.
"지금 산에 갈 건데 가고 싶으면 가고 집에 있고 싶은 면 있어도 돼"
딸아이는 가고 싶다고 하고 아들 녀석은 집에 있겠다고 한다. 작년 같으면 무조건 간다고 하는 아들 녀석인데, 한 살을 더 먹더니 자기주장이 뚜렷하다. 억지로 끌고 가봤자 힘든 건 나다. 그래서 아들의 결정이 내심 반가웠다. 아내와 딸을 데리고 집을 나섰다. 매번 느끼지만 산행 초반은 이상하게 힘들다. 몸이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마음속에선 계속하기 싫다고 아우성이다. 게다가 마스크를 쓴 탓인지 숨이 가빠 온다.
"오늘은 미세먼지도 많고 휴일이니 중간까지만 가자고 해야지"
생각은 몸을 지배한다. 힘들다고 생각하면 하기도 전에 지친다. 집에서 이런 생각을 가졌으니 매일 하는 산행인데 오늘은 더 힘들다. 산을 오르는 내내 나는 말할 기회를 노렸다.
그때 딸아이가 나를 보며 말했다.
"아빠 오늘 어디까지 갈 거야"
딸아이의 목소리가 아내의 귀에 도달했나 보다. 내가 말하기 전 아내가 짧게 말한다.
"정상까지"
그 한마디에 내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장군의 말에 부하가 거역하면 결과는 뻔하다. 경험은 그 사실을 내게 알려주었다. 모든 걸 체념하니 마음이 편하다.
중간 정도 올라가자 딸이 말했다.
"우리 지름길로 가요"
딸의 의견에 아내가 동조한다. 두 달 전 발견한 지름길이다. 그 길은 가파르다. 돌이 여기저기 튀어나와있다. 그래서 잘못 밟으면 발바닥이 아프다. 아이들은 울퉁불퉁한 길을 더 좋아한다. 오르는 재미가 있고 모험을 하는 것 같아 좋은가보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새로운 길에 즐거움은 느낀다. 예전에 나도 좋아했을 텐데 지금은 잘 닦인 길이 좋다. 빨리 올라가는 건 좋지만 그만큼 힘이 들어 싫다.
어찌어찌해서 산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에 바람이 제법 불어 땀이 빠르게 식었다. 평소 같으면 저 멀리 보이던 풍경도 미세먼지 탓에 흐릿하다. 그래도 그 덕에 해의 주변을 가려 신비스러운 풍경을 보여주었다.
미세먼지도 쓸데가 있다니...
먼저 올라온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다. 나도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얼마 전 물욕에 사로잡혀 산 새 휴대폰이다. 결과물을 보니 사길 잘했다. 사진이 지리산 정상에 찍은 것처럼 보인다. 만약 내 계획대로 중간까지 갔다면 이런 광경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사진 시원시원
해꽃 - 시원시원
혼자 있는 아들 녀석이 걱정되어 서둘러 내려왔다. 집에 문을 열자 열심히 유튜브를 보는 아들 녀석을 보인다. 아내가 아들에게 말했다.
"이제 그만 보고 네 방 정리해"
아내가 식사 준비를 할 동안 나는 청소를 시작했다. 휴일엔 역시 분업화가 최고다. 아침을 먹고 아내에게 말했다.
"카페 갈까?"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전에 설거지를 하고 나갈 준비를 했다. 며칠 전에 우연히 블로그를 보다 집 근처에 새로 생긴 카페를 발견했다. 사진으로는 분위기가 꽤 좋아 보였다. 게다가 건물 전체가 카페였다. 강릉의 카페거리를 가면 쉽게 보지만 도심에서는 찾기 힘들다. 그 만큼 땅값이 비싸니깐 말이다.
아내와 차를 타고 카페로 향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사람들이 적었다. 무엇보다도 주차장도 넓어 좋았다.
1층에는 베이커리가 있다, 많은 종류의 빵이 있는데 가격이 꽤 비쌌다. 예전에 나였다면 주저 없이 나갔을 거다. 하지만 큰 건물과 분위기 있는 인테리어 그리고 도심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에 가격을 받아들였다. 나는 팥이 듬뿍 들어간 만주 빵을, 아내는 좋아하는 스콘 그리고 샌드위치를 골랐다. 음료는 아메리카노와 녹차라테를 시켰는데 점원이 커피는 드립 커피라 했다.
"드립 커피는 맛없는데"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 여기가 그렇다는데 어쩔 수 없다고 애써 마음을 위로한다.
운 좋게 2층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좀 있으니 진동벨이 울린다. 나는 진동벨을 가지고 커피와 빵을 교환을 했다. 빵은 다른 빵집보다 맛있었다. 가격이 비싼 게 조금 걸렸지만 맛이 좋으니 만족했다. 빵 한입에 커피를 마셨다. 따뜻한 커피 향의 물이다. 드립 커피는 나에게는 맛없는 커피다. 먹기도 전에 그런 생각이 든다. 아까도 말했듯이 생각은 몸을 지배한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난 극과 극을 좋아한다. 아주 뜨겁거나 차갑거나 말이다. 진하거나 맹물이거나 말이다. 이도 저도 아닌 것은 싫다. 사람 취향이 제 각각이지만 여기 커피는 내 입맛에 안 맞는다. 그나마 빵 맛은 좋으니 위로가 되었다.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나만의 시간을 가졌다. 책에 집중하는 사이에 귀에 들려오는 음악소리, 가요가 흘러나왔다. 건물 특성인지 사람들의 목소리가 울렸다. 처음엔 분위기가 좋다고 생각했는데 어디서 많이 경험한 분위기였다. 한참을 생각한 끝에 아내에게 말했다.
"여기 휴게소 같아"
아내도 내 말에 공감했다. 눈으로 보이는 건 멋있다. 하지만 감성은 귀로부터 시작한다. 보이는 것에 치중하면 분위기는 한계에 부딪친다. 주인에게 말할까도 생각해 봤다. 역시 오지랖이다. 우리만 그런 느낌일 수 있다. 오래만에 좋은 카페에 왔다고 생각했는데 너무나 아쉬웠다. 우리는 빵만 맛있는 카페에서 나와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자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베란다에 있는 1000피스 퍼즐이었다. 작년 크리스마스 때 꺼내와 시작했는데 아직까지 완성시키지 못했다. 사실 이 퍼즐은 그보다 더 오래되었다. 5년 전에 사다 놓은 퍼즐이었다. 액자가 없어서 미룬 것 치곤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오늘은 기필코 맞추리라 생각하고 집중을 하기 시작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퍼즐의 조각을 찾기 위해 모든 감각을 사용했다. 퍼즐을 맞추다 보면 여러 가지 고비가 온다. 하나는 인내심이고 다른 하나는 집착이다. 인내심은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하지만 집착은 시간을 빠르게 흡수한다. 중간에 비어있는 조각을 찾다 보면 다른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나의 조각 때문에 몇십 분을 허비했다. 아이러니하게 포기하고 다른 것을 맞추다 보면 그 조각을 발견한다. 집착할수록 시야가 좁아지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읽은 트랜 서핑이란 책에서도 말했다.
"중요도를 낮추면 일은 쉽게 풀린다"
퍼즐을 하는데도 적용이 되나 보다.
6시간이라는 긴 시간에 드디어 퍼즐이 완성되었다. 퍼즐을 완성하기까지 5년이라는 시간과 2개월이란 시간이 흘렀다. 가슴 한편에 짐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