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의존하지 마라, 두려움은 마음을 통해 자라난다.
© pradippal, 출처 Pixabay
어둠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빛으로 어둠을 채우는 것이다.
어둠을 파내려고 애를 쓰거나, 어둠과 맞서 싸우려고 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멘탈의 연금술-
개와 늑대의 시간을 아는가?
이는 개와 늑대를 분간할 수 없는 시간을 말한다.
어둑어둑해져 사물이 어렴풋이 보이는 시간에 당신의 앞에 한 형체가 서있다.
당신은 눈을 크게 뜨고 보지만 개인지 늑대인지 알 수가 없다.
두려움이 몰려오고 초조해진다. 심장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올듯한 긴장에 젖어있다.
마음은 말한다.
"저것은 늑대야"
"그러니 빨리 도망가"
뒤를 돌아 달아나기 시작한다.
그때 , 환한 달빛이 비친다.
당신은 곁눈으로 힐끔 쳐다본다.
당신의 눈에 개가 선명하게 보인다.
온몸에 힘이 빠져 당신은 주저앉는다.
방금 전까지 머릿속에 가득했던 두려움이 사라진다.
긴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늑대가 아니라서 다행인지
자신이 무사해서 다행인지
손에 들려있는 손전등을 알아차리지 못한 당신이 다행일까?
두려움은 피하거나 싸워 이길 수 없다.
그 이유는 두려움은 형체가 없기 때문이다.
마음속에서 생기는 감정이기 때문에 두려움을 사라지게 하려면 원인을 해결해야 한다.
당신에 들려있는 손전등으로 어둠을 밝혀 개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처럼 말이다.
두려움은 마음속에서 일어나지만 그 원인을 제공하는 것은 살고 있는 공간에 있다.
특히 매일 보는 뉴스가 그러하다. 뉴스는 사회에 어두운 면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밝은 것보다 어두운 면에 관심을 두기 때문이다. 간혹 미담이라고 하는 선행을 보긴 하지만 대부분의 뉴스는 부정적이다.
금융위기 때 우연히 접한 인터넷 뉴스에서 식량난이 심각해진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었다. 처음엔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보는 뉴스마다 식량에 대해 위기가 닥친다고 했다. 나의 불안은 사실로 인정해버렸다.
그때를 돌이켜보면 뉴스가 보인 게 아니라 그런 뉴스만 찾아봤던 것 같다.
사실로 받아들인 나는 쌀을 사기 시작했다. 그다음은 각종 햄과 통조림을 샀다. 콜라와 사이다도 몇 박스를 사고 즉석식품도 샀다. 마치 내일 전쟁이 일어날 것처럼 말이다. 어느새 방안에는 음식들로 가득 찼다.
예전에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위험에 대비해 지하 벙커를 짓고 거기에 음식을 가득 채운 사람을 보았다. 그때 난 "참 쓸데없는 생각이야" "어디서 저런 발상이 나오는 거야"라며 그 사람을 비웃었다.
그런데 내 집을 벙커로 만들다니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두려움은 전염이 된다. 그 당시 내가 쌀이며 각종 음식을 사는 것은 본 사람이 있었다. 그도 처음엔 나를 비웃었다. 무슨 위험이 오냐며 나를 말렸다. 그에게 내가 본 뉴스를 보여주며 말했다.
"분명히 위기가 닥쳐올 겁니다" 그때 그의 마음은 동요했다. 몇 날 며칠을 음식을 사는 것을 본 그는 마침내 나와 함께 했다. 처음에 완강히 부인하던 그가 내 두려움에 전염된 것이다.
두려움은 오지 않는 위기를 느끼고서야 사라졌다. 사라졌다고 믿었다. 방안에 쌓여 있는 음식들을 보자 다른 걱정이 밀려왔다. 내 행동에 대한 부끄러움과 주변 사람의 비웃음에 두려움이었다.
"분명히 비웃고 할 텐데"
"그나저나 이걸 다 어떻게 하지"
한숨이 길게 나왔다.
우선 가족들에게 쌀과 통조림을 나누어 주었다. 뜬금없는 나의 행동에 다들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대충 얼버무렸다. 한편 내 두려움에 전염된 그는 매일 쌀벌레와 전쟁을 치루웠다. 그가 사다 놓은 음식을 다 먹을 동안 그의 불만을 감내해야 했다. 그렇게 두려움과 걱정은 긴 시간 동안 나를 괴롭혔다.
두려움은 다른 곳에서 오지만 해결하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다.
문제의 원인을 해결해야 한다. 두려움에 누군가에게 의존하거나 마음에 기대면 더 큰 두려움이 오거나 전혀 바라지 않는 결과를 맞이한다. 두려움은 맞서 싸워 이기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확실히 인식하고 그것에 맞게 실행해야 한다.
얼마 전 아내와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여자가 처음 결혼을 해서 갖는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였다. 결혼 전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한 자유가 하고 나니 사라졌다고 말했다. 시댁이 생기고 자신 외에 챙겨야 할 것들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때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조금만 참으면 괜찮아질 거야"
하지만 더 큰 두려움이 찾아왔다. 바로 임신이다.
난생처음 입덧에 우울증까지 걸린 아내는 하루에도 몇 번씩 창밖을 보며 울었다.
그때도 마음의 소리는 말했다.
"조금만 견디면 괜찮아질 거야"
아내는 그 말을 믿고 고통을 참았다. 드디어 출산을 하고 마음의 말처럼 더 이상 고통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두려움은 다른 문제를 계속 만들어 낸다.
얼마 전 눈이 많이 내려 강원도에서 서울로 오는 차량이 고립되었다. 평소 여행을 많이 가는 것을 안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뉴스를 보시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전화를 하신 것이다. 어머니는 우리가 집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안심하셨다.
우리는 살면서 두려움과 걱정을 끊임없이 겪는다. 두려움과 걱정은 피할 수도 맞설 수도 없다.
마음에 의존하지 마라. 두려움은 마음을 통해 자라난다.
내가 두렵다면 왜 두려운가?
원인을 찾고 문제를 해결해야 두려움은 사라진다.
두려움을 실행해라!
다른 방법은 없다. 이것마저도 잠시 두려움을 사라지게 만들 뿐이다.
단지 그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