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사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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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감정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는 말했다.
"선행을 실천할 때는 모호한 원칙이라도 문제 될 것 없다"
"그 원칙들이 보편적이지 않고 나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독특한 원칙이어도 상관없다"
나는 그가 말한 의미를 되새겨 보았다.
그리고 선행이란 자기 만족감이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선행은 예외의 경우가 존재하여 딱 잘라 규정하기 어렵다. 그래서 선행을 실천할 때에는 자기만의 원칙이 필요하다. 선행을 하면서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거나 의심이 든다면 하지 않는 것이 낫다. 이런 생각은 선행의 긍정을 부정적인 방향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나의 도움이 정말로 절실한 이들에게 도움이 되었을까?라는 의심을 하는 순간 선행을 지속하기 어렵다.
연말이 되면 나의 매장에 꽤 많은 불우이웃을 모금하는 사람들이 방문한다. 가끔은 휴지를 팔러 오거나 볼펜을 팔러 오고 스님도 온다. 각자의 이유를 대며 도움을 원하지만 내가 주로 도움을 주는 이들은 개인이 아니라 단체의 이름을 걸고 방문한 이들이다. 결식아동, 독거노인 같은 단체를 통하면 믿음이 가기 때문이다.
몇 달 전 일이다.
퇴근 무렵 한 남자가 매장에 왔다.
그는 매우 다급해 보였다.
"제 아들이 화상을 입었는데 병원비가 없습니다"
"실례인 줄 알면서도 도움을 부탁드립니다"
"혹 3만 원의 여유가 있으시다면 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의 말은 꽤 진실해 보였다. 게다가 비슷한 또래의 아들이 있어 그의 말에 동화되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선뜻 3만 원을 그에게 주었다. 그는 그 돈을 받아 들고
"정말 감사합니다. 내일 꼭 와서 드리겠습니다"
그는 서둘러 매장 문을 열었다.
그때 나는 그를 다시 불렀다.
"저기요"
"잠시만요"
나는 그에게 더 도움이 주고 싶어 전화번호를 물어봤다.
"혹시 전화번호 좀 알 수 있을까요?"
그는 흠칫 놀라며 말했다.
"010-0000-0000"
그의 미세한 떨림을 본 나는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설마 거짓이겠어"
멀어 저가는 그의 뒷모습에 그렇게 내 행동에 잘함을 부여했다.
그는 다음날 오지 않았다. 그가 알려준 전화번호 역시 다른 사람의 번호였다.
어제 그의 행색으로 보아 내가 준 돈으로 술을 사 먹었을 것이다.
자식을 핑계 삶아 거짓말을 하는 아빠는 없기에 결혼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며칠 뒤 우연히 길에서 그를 마주쳤다. 50m 앞쪽에서 그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래서 나는 큰소리로 그를 부르며 손짓을 했다.
"이봐요"
그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뒤를 돌아 도망쳤다. 도망가는 그를 보니 화보다는 안쓰러웠다.
이제 그는 한동안 길을 걸을 때 주의를 살필 것이다. 자신의 거짓말에 마주칠지도 모른 다른 불안감을 가질 것이다.
나는 자영업을 20년을 해오고 있다.
배신도 당하고 사기도 당하길 여러 번 있었다.
그 덕에 사람을 쉽게 믿지 않고 무슨 말이든 의심부터 한다.
지금 생각하면 참 허술한 거짓말이었다.
그런데 그때는 왜 그러지 않았을까?
나의 감정이 그가 말한 자식의 슬픔에 동화되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화를 내지 않는 건 내 선행의 만족감 때문이었다.
내가 하고 싶었고 그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런 마음이 드는 거짓말임에도 그가 안쓰러웠다.
선행은 자기 만족감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잘못된 결과를 가져오더라도 선행으로 남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