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사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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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부터 왼쪽 어깨와 팔꿈치가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팔을 올릴 수도 없지만 가만히 내려놓는 순간에도 통증이 왔습니다. 급한 대로 편의점에서 파스를 사 왔습니다. 어깨에 한 장을 붙이고 팔꿈치에 한 장을 붙였습니다. 통증을 일으키는 부분이 시원해졌습니다. 조금 있으니 통증과 차가움이 섞여 어느 것이 진짜 통증인지 모르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조금 나아진 것 같아 하루 지나면 괜찮을 거라 생각하며 서둘러 잠을 청했습니다. 하지만 통증에 다시 깼습니다. 그날 통증과 함께 새벽을 맞이했습니다.
어제의 바람대로 나아지길 바랬지만 오늘 역시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괜찮은 오른팔로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았습니다. 한쪽 팔을 못쓴다는 게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습니다. 남아있는 파스를 붙이고 다시 통증과 시원함의 경계가 없어질 때 문득 예전의 감사함이 떠올랐습니다. 주말이면 가족과 함께 새벽 운동에 늘 가던 카페에서의 여유가 감사했습니다. 러닝을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했고, 3개월부터 시작한 근육 키우기에 감사했습니다. 평생 복근 가진 남자들을 부러워하며 지금이 기회라며 열심히 운동을 하던 것에 감사했습니다. 참으로 이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평소에 할 수 있을 때는 몰랐지만 할 수 없을 때가 되니 감사함을 느낍니다. 제 마음의 간사함이죠. 코로나로 인해 일상의 불편함이 계속되니 그전의 일상이 매우 그립고 이제야 소중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고 보면 저는 자신에게 감사함이 인색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의 매장에 찾아온 손님에게는 감사하다는 말을 수없이 하는데 말입니다. 남에게는 감사하는데 정작 자신에게는 감사할 줄 몰랐습니다. 이렇게 아프고 나니 몸에게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코로나로 인해 자영업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제 주위의 사장님들은 한결같이 말합니다. "너무 힘들어" 언제 끝날지도 모를 코로나 상황에 한숨만 밀려옵니다. 어느덧 온통 코로나 탓을 하고 있는 저를 보게 됩니다. 같은 자영업이라도 업종에 따라 피해의 차이가 있는데도 말입니다.
습관을 고치는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매일 감사 3줄을 쓰는 것이 숙제였습니다. 첫날에는 3줄 감사를 쓰지 못했습니다. 자신에게 감사를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감사가 어색하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감사를 도움을 받아야지만 쓰는 특별한 언어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정작 일상의 감사보다 더 소중한 감사는 없습니다. 그런데 일상의 익숙함이 감사함을 잃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 시대에 건강을 유지하는 것에 감사하고 하루를 상쾌하게 시작하는 것에 감사합니다. 삼시세끼 밥을 먹는 것에 감사하고 매장에 문을 열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먹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합니다.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매장에 화사함을 주는 꽃에게 물을 주는 것에 감사합니다. 내가 하는 것에 감사하고 할 것에 감사합니다. 그리고,,,,이 모든 일을 하는 나에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