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JT명-극도의 실용주의자 되기 1. 가방편

나의 평생 취향을 찾아가는 과정

by cynthia

집을 어떤 물건으로 채울까?옷장을 어떤 옷들로 채울까? 화장실 선반은 어떤 제품들로 채울까?

하는 의문에서 시작된 프로젝트이다

2016년 한창 '미니멀리즘'이 유명세를 떨치고 있던 시절 여러 관련 서적들을 읽게 되었다. 일명 '단사리'를 실천하는 일본저자들의 책이 쏟아져 나왔고, 책을 좋아하니만큼 그런 류의 책들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다.


아마 그때부터였던것 같다. '극도의 실용주의자'로 가기 위한 첫걸음이. 극단적으로 침대와 옷가지 몇개, 수건 등을 제외한 다른 물건들을 집에 두지 않았던 어떤 일본 저자의 삶에 굉장히 크게 감명을 받았다. 당시 나는 각종 '굿즈'들로 집안을 가득 채웠으며, 몇년째 읽지 않는 책들을 '책벌레'라는 타이틀을 증명하기 위해 어디서 주워온 책장에 가득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 책들의 대부분은 아직 버리지 못한 상태다. (버리는 과정 중에 있다고 말하는 게 좀 더 자기변호가 될까?)


하물며 옷은 어떤가, 일년에 몇 번 입을 수 없던, 대학 졸업사진을 찍을 때 사두었던 원피스(는 몇년 뒤에 살이 쪄서 허리끈을 묶을 수 없었다.), 지하상가에서 예쁘다고 충동구매한 의상들, 물건이 몇개 들어가지 않지만 예뻐보인다는 이유로 즐겨 들었던 '복조리' 스타일 가방이라든지...내가 들고 착용하기에 편했던 것들보다 예뻐보이기 위한 소품들에 마음과 돈을 뺏겼던 시절도 있다. 지금처럼 봉급생활자가 아니라, 학업과 아르바이트 생활을 병행하면서 매우 가난하게 살던 시절부터 말이다!(당시 아버지는 은퇴 후 자영업자로 전환하여 나에게 돈을 한푼도 줄 수 없었던 상황이었던데다, 나는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공부하며 생활해야 했기에 지하철비도 없어서 걸어다니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그 복조리가방은 일명 '레쟈'로 만들어져 부들부들하면서도 매우 얇고 연약한 외피로 만들어져 있었기에 산 지 얼마 되지 않아 겉이 뜯어졌지만, 명품도 아닌 그저그런 4만원짜리 가방이었기에 수선할 생각도 못하고 그런 채로 몇년간을 들고 다녔던 기억이 생생하다.


직장에 들어가고도 한동안은 그렇게 살아왔다. 쇼핑을 할때도 내 눈에는 실용적인 것보다 예쁜 것들이 많이 들어왔으니. 그러나 여중여고여대 생활을 해왔던 삶에서 벗어나 남성들이 많은 직장을 다니다보니, 자연히 남성들의 가방이나 의상을 많이 지켜보게 되었고, 원피스나 복조리가방 같이 여성들이 주로 착용하는 아이템들만큼이나 남성 동료들이 입는 심플한 옷들이나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서류가방 같은 것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실 회사를 다닌다는 것은 매일매일 전투를 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매일매일 누군가와 의견충돌이 일어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개발만 잘 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다. 매일 아침마다 전투를 나가는데 굽있는 신발과 원피스와 짙은 화장은 일하는 에너지를 소모시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냥 그것을 장착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에너지를 일정 부분 뺏기는 느낌이 분명히 들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느끼지 못할 수도, 그런 아이템들을 사랑하여 즐겨 착용하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입사 3년 정도 지나자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느끼고 그런 것들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기가 보너스를 받아 구매한 가방을 자랑했다. 180만원짜리 모 유명패션브랜드 핸드백이었다. 180만원을 주고 가방을 산다면 당신은 어떤 가치를 보고 구매하겠는가? 당연히 사람마다 다른 답을 내놓을 질문이겠지만 적어도 나는 '넉넉한 수납공간과 손과 어깨의 편안함'이라는 답을 내놓을 것이다. 그러나 친구가 샀던 그 가방은 그와 정 반대의 지점을 가리키고 있었다. 핸드폰과 파우치만 넣으면 끝날 것 같은 아주 작은 사이즈에 아주 얇은 스트랩 끈. 물론 예쁘기는 아주 예뻤다만. 그렇지만 친구가 지불한 180만원의 가치에는 당연히 '친구들의 칭찬'이 어느 정도는 포함되어 있을 것이므로 거기서 그런 답을 하면 안되었었다. '귀엽고 예쁘다'는 답을 주었다. 이것이 바로 여성들의 대화 법칙이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백화점에 가서 30만원 가량을 주고 내가 좋아하 복조리 스타일에, 굵은 스트랩이 동봉되어 있고, 수납공간도 넉넉한, 나름대로 실용적인 핸드백을 구입했다. 친구가 지불했던 180만원의 1/5밖에 되지 않는 가격으로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가방을 장만했다는 뿌듯함도 있었다. 이 가방을 굳이 언급하는 이유는, 이 가방이 일종의 과도기적인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 가방도 실용성의 입장에서 봤을 때 아주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굵어서 유용할 것이라 생각했던 스트랩은 무거운 가방의 무게 때문에 어깨를 짓누르는 압력으로 작용했으며, 복조리 스타일은 아무리 개선해도 유용성과는 정 반대편에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그 가방도 매일매일 전투를 하러 나가는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가방이었던 것이다. 아 물론 내가 그 가방을 무척 좋아했다는 사실은 틀림없다. 2017년 상반기에는 그 가방만 들고 다녔다.


2017년은 '메신저백'이 지배했던 해로 기억한다. 우리 동네는 아파트 단지가 많은 전형적인 주거지역이라, 어린 학생들이 많이 지나다닌다. 그래서 나는 유행의 척도를 우리 동네 중학생 여자아이들이 매고 다니는 가방으로 파악하는데 2017년에는 메신저백을 매고 다니는 학생들이 급격히 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도 그 유행에 휩쓸려 메신저백이 예쁘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다. 때마침 자주 방문하던 사이트에서 '남성전용' 까만 메신저백을 팔길래, 가방이 필요한 참에 하나 장만했다.


그 가방을 먼저 구입한 사람들의 후기를 읽어보았는데 역시 대부분이 남성들이었고, 여성들의 후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간혹 있는 여성 구매자들의 후기는 '저에겐 좀 크네요~'하는 평이 있어서 가뜩이나 작은 체구의 내가 들고 다니기에는 좀 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러나 그 걱정이 무색하게, 그 가방은 현재 나의 훼이보릿이 되었다. 이외에도 나름 실용적인, '검은 색', '깔끔한' 디자인의 가방을 몇개 더 갖게 되었다. 검은 색이 다수인 이유는 당연히 무난하게 그 어떤 스타일에 잘 매칭되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까진 완벽하고 모든 면에서 맘에 드는 가방은 없지만, 어쨌든 가방 분야에 있어서는 나의 취향을 어느 정도 찾았다고 할 수 있겠다. <극도의 실용주의자 되기 프로젝트>의 가방편은 이 정도에서 정리할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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