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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ynthia Jan 09. 2019

비혼여성의 소비에 대하여

내가 가진 힘을 인식하고 키워가는 것

학부 시절 원래 전공과는 일절 관계가 없는 소비자학을 복수전공했다. 원래 전공이 교육 관련과여서 아예 교육에 몸을 담고자 타 교육과를 전공할까 고민을 많이했었다. 그러나 지금와서 보니 아무래도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없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안하길 잘한것같다. 이 이야기도 너무너무 할말이 많은데 다음에 써야지(다음에 하겠다는 글 다 모으면 올해 내에 안끝날듯)

많은 사람들의 의문의 눈길을 받으며 소비자학과 복수전공을 시작했다. 소비자학이 뭐냐는 질문부터 거기서 뭘 배우냐, 그런걸 왜 하느냐는 의문까지. 소비자학 전공수업을 들으러 간 강의실에서도 출석부의 이름 옆에 과를 보고 굳이 나를 찾으시는 교수님들도 꽤 많으셨다.

소비자학을 복수전공한 이유를 많이 물어봤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재밌어 보여서". 이런 정신머리로 진로를 바꾸어 놓을수도 있는 기회인 복수전공을 고르다니 정말이지 여자는 커도 애다.


복수전공을 이수하려면 12과목을 들었어야 했다. 12과목이 적다면 적겠지만 그래도 소비자학이라는 생소한 분야에 대해 알아가고, 나름대로 흥미를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 그 당시에 했던 모든 것이나 모든 과목이 지금 아주 생생하게 남아있지는 않지만 실제로 경험해보니 생각보다 다양한 분야와 접점을 이루고 있었다. 재무설계/통계/사회조사방법/심리/트렌드 등등 심지어 원래 전공이었던 교육까지. 어느 순간부터 본 전공이 잘 안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그나마 대학생활을 견딜 수 있게 해준게 소비자학이었던 것 같다.


그후로 기나긴 세월이 흘러 지금은 두 전공 어느것과도 관련없는 일을 하고 있지만 소비자학은 내 삶에 있어 나름대로 중요한 작용을 하고 있다. 그 중 하나는 소비생활에 대해 자체적으로 분석하고 관리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학에서는 모든 개별 인간을 '합리적'인 사람으로 간주한다. 모든 제품/모든 구매시점에서 가장 낮은 가격으로 가장 높은 효율을 가진 물건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의 소비자는 그렇지 않다. 때로는 정말 의외의 분야에 어마무시한 돈을 투자하기도 하고 이로 인해 투자를 넘어선 투기 광풍이 불기도 한다. 혹은 좋은 제품이 시장의 빛을 못보고 사라지기도 한다. 만약 경제학의 이론이 현실에 실제로 맞아떨어진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설명할 수가 없다. 그래서 다양한 경제모델이 등장하고 경제학의 이론은 계속해서 수정되고 있다. 그 대안 중 하나가 소비자의 심리와 행동을 연구하는 소비자학의 대두라 할 수 있다.


소비자학이 말하는 소비자는 정말 종잡을 수가 없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충동구매를 많이 하고 저런걸 왜 사 싶은 것도 많이 산다. 물론 이렇게 글을 쓰는 나도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


소비란 필요에 의해서 나오는 것이다. 소비자가 소비행동을 하려면 '구매력'이라는 걸 갖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소비자가 원하는 물건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구매력을 갖고 있는 소비자가 모두 그것을 사지는 않는다. 가능성에 불과한 구매력이라는 힘을 실제로 작용시키려면, 소비자가 '나는 저것이 필요하다'라는 것을 느끼게 해야 한다.


한 명의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많은 것이 필요하다. 정말 많은 것이 필요하다. 우리집에는 전자제품만해도 냉장고/세탁기/건조기/전기포트/노트북/핸드폰/오븐/공기청정기/제습기 등이 있다. 고작 한명 사는데!!!그리고 이외에 수많은 물건들이 있다. 버린다고 엄청 버렸는데도 아직 많다. 가끔씩 집에 누워있다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사람 한명 하는데 무슨 전자제품이 이렇게 많이 필요하냐...'. 그렇다. 그냥 한명 사는 것에도 이렇게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내가 어쩌다 이 많은 물건들을 사게 된 것일까.


돌아보면 이 중에서 '정말 필요해서 산' 물건들은 과연 몇개나 될까. 아마 몇개 되지 않을 것이다. 돈을 써서 무엇인가를 사는 것은 나의 돈, 즉 어떤 것이든 살 수 있는 가능성인 구매력의 일부를 할애하여 장만한 것들이다. 인간의 기본적인 의식주 외에도 책의 경우에는 정신적인, 음료같은 경우에는 정서적인 니즈까지 충족시켜주는 면도 있다. 당연히 이런 비물질적 가치들 또한 인간의 삶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고 '필요'의 범위에서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우려하는 바는, 정말 정서적인 부분을 충족시켜줄 아름다운 음악이나 좋은 사진 그림 등의 수준이 아니라 반짝반짝하게 꾸며진 카페라든지, 네온사인만이 어두운 공간을 반짝이는 전시회를 돌아다닌다든지, 상업적 공간에서 내 구매력을 깎아먹는, 외적인 부분에만 치중며 순간순간의 쾌락만을 좆는 것들을 소비하게 된다면 이를 건강한 소비라 할 수 없다. 정말로 내 정신과 감정을 맑게 해줄 공간이나 물건들을 갖고 싶다. 아니, 이제는 물건을 넘어 좋은 경험을 사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매년 가는 해외여행이 내 인생에 정말 좋은 영향을 주고 있다.)




소비자학에도 물론 여성혐오적 시각이 깃들어 있다. 대학시절 꽤 오랫동안 도서관에서 알바를 하다보니 자연스레 다양한 분야들을 접하게 되었는데 지금 돌아보니 여성혐오가 깃들지 않은 학문이 단 하나도 없었다. 특히 사회학이나 생활과학으로 분류되는 소비자학도 이를 절대 피할 수 없다. 소비자학에서는 소비자의 나이/성별/수입/지역 등 여러 요인에 따라 소비자층을 분류하는데, 보통 '미혼'(비혼이라는 개념자체가 존재하지않음)여성으로 분류되는 집단은 단연 '된장녀'로 대표되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남성소비자는 돈을 잘 쓰지 않으며, 여성소비자는 자신을 위한 소비보다 가족을 위한 소비가 많이 한다고 여겨진다. 정말 한국 사회에서 티피컬하게 말하는 여성 이미지에 부합한다. 학문이라는 것 자체가 사회적인 분위기의 영향을 안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즉 현재까지 소비자학에서 정립된 개념들 중에 '비혼여성'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다른 사회적 계층을 가진 겹겹이 계단사이에 싸여 어딘가에 위치해있긴 할것이나, 보이지를 않는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비혼여성은 구매력이 없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이다. 이 말은, 크게 두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1. 이 계층은 돈을 많이 벌지 못한다. 2. 이 계층이 돈을 벌고 있으나, 이들의 구매력은 시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현재 상황에 있어서는, 슬프게도 우리사회 비혼여성은 두가지 요인 모두를 갖고 있는 것 같다. 일단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성별 임금격차를 보이고 있기에 일반적으로 임금수준이 높지 않으며, 결정적이게도 그 수가 매우 적다. 그렇기 때문에 버는 돈도, 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미미하다고 할 수 있다. 즉 여기서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으면 비혼여성의 존재는 묻혀서 사라져버릴 것이다. 이때까지 그래왔듯이. 이런 상황에서 비혼여성이 자신의 정체성과 신념을 지키며 소비를 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이다. 잇다른 여성혐오 논란으로 도저히 무엇을 사야할지 모르겠다는 탄식들이 곳곳에서 비어나온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 일단은 돈을 최대한 쓰지 않고 모으는 것이 우선이다. 내 돈을 '써버려야 할 것'에서 '힘'으로 바꾸어 생각하는 것이다. 내 돈은 바로 힘이다. 이 힘을 아무생각없이, 아무렇게나 써버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갖고 있는 힘을 어떻게 내 존재를 사회에서 알릴지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써야 한다.


앞으로 이런 측면에서 비혼여성의 소비를 (나 자신도 비혼여성으로서) 논해나갈 것이다. 힘을 기르고, 힘을 모아서 나를 위한 곳에 적재적소에 써야 한다. 수가 적다고, 힘이 약하다고 마냥 슬퍼할 것도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힘을 정말 순수하게 우리를 위해서만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학에서 말하는 '여성은 자신보다 가족을 위한 소비를 많이 한다'는 명제를 정면으로 반박하여, 더이상 당연하지 많게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진 집단기도 하다. 나자신도 소비자로서 수없이 행하는 소비활동을 고찰하고 이를 기록함으로써, 가치가 있는 소비 그리고 그렇지 않았던 소비를 돌아보고 이 경험을 다른 비혼여성들과 함께 나눌 것이다.


소비자학과 수업 몇개를 들었다고, 대학졸업장에 소비자학사가 찍혀있다고 나은 것은 하나도 없다. 그 과정을 통해 느끼고 배웠던 것을 실천할 수 있어야 진정으로 그 학문을 알고 행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어차피 신생학문이기에 타 분야와의 접점이 용이하므로, 이 분야를 비혼여성이 주도하여 연구하고 결과물을 창출해낼 여지도 굉장히 많다. 이를 통해 비혼여성의 입지를 사회에 다져가야 할 것이다. 힘을 기르고, 힘을 모으자, 그리고 그것을 사회에 보여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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