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블럭 진짜 최고
이글은 지난 10년간 내 머리의 역사이기도 하고 내 정신의 역사이기도 하다.
단백질로 이루어진, 두피의 끝에서 자라는 터럭들. 태어날때부터 달려있었고, 나를 드러내는 도구로 쓰기도 하고, 사회적으로 억압받는 위치를 상징하기도 했던 지극히 개인적이자 사회적인 신체부위. 가위를 통해 쉽게 잘라낼 수도 있고, 화학물질을 통해 물을 들이기도, 빼기도, 어떠한 부피를 지닌 어떠한 형태를 만들기도 한다. 살갗이나 팔다리를 변형할 수는 없으니 가장 쉽고 빠르게 변형할 수 있는 신체부위가 바로 머리칼이다.
중고등학생 시절에는 당연히 두발 제한이 있었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억압받는 나를 표상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는 머리에 신경을 쓸 여지 자체가 없었다.
#1. 대학에 왔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유학생이었으므로 당연히 머리에 뭘 할 생각을 못했었다. 하숙집 룸메이트로 지냈던 언니는 동아리 선배였다. 그 당시 거의 1년여를 미용실을 가지 않았기 때문에 머리가 거의 허리 가까이 왔다. 어느 날 언니가 머리를 잘라주겠다고 했고 긴머리가 답답했던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방에서 머리를 자르며 한결 가벼워진 기분을 만끽했다. 그리고 1년이 흘렀다. 또 머리가 너무 길어졌고 언니는 먼 곳으로 이사를 갔다. 더 이상 머리를 잘라줄 사람이 없었던 나는 또 머리를 길렀고, 묶고 다녔다. 너무나 무거운 느낌이 들어 머리를 둘둘 감아다녔다. 그러면서 고무줄은 또 몇개를 끊어먹고 몇개를 늘려먹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2. 그리고 또 1년이 지났다. 머리는 허리까지 내려왔다. 당시 나는 출판사 인턴을 하고 있었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회사를, 그것도 여름철에 다녔기에 나는 뭔가 답답하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잘랐다. 그러자 회사 선배가 '머리가 되게 더워보였는데 이제 시원해 보인다'는 말을 했다. 대학생때까지는 머리에 손을 거의 안댔었다. 염색도 파마도 하지 않았다. 그저 기르지만 했을 뿐이다. 거의 방치나 다름없는 수준이었던것 같다. 그냥 염색이나 파마에 관심이 없었다.
#3. 고향에 내려갔을 때 엄마랑 같이 교회 집사님네 미용실에서 파마를 했는데 그 파마가 생각보다 오래 가서 대학 졸업때까지 유지되었다. 3만원주고 가볍게 한건데 컬이 풀리지도 않고 꽤 오래 유지되어서 따로 손이 안가고 추가로 안 건드려도 되고 편했던 기억이 난다. 컬을 유지하기 위해 머리를 자르지 않았고 나중에는 그 컬을 잘라냈다.
#4. 그러다 취직을 했는데, 뭔가 연수원에 들어가기 전에 변화를 주고 싶어서 미용실을 찾았다. 파마를 하고 싶다고 했는데 염색을 권해서 염색을 처음으로 했다. 그런데 염색을 해보니 뿌리염색이란 걸 해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때 깨달았다. 염색이란 건 정말 끝없는 윤회의 고리라는 것. 한번 색깔을 맞춰놓으면 그거에 맞게 한두달에 한번 미용실을 가서 꾸준히 색을 맞춰주어야 한다는 걸. 갑자기 염색을 한 것이 후회가 되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5. 한번은 매직과 염색을 같이 하고 서비스로 영양까지 같이 받았던 날이 있었는데 그날은 거의 4시간 30분이 걸렸다. 다 하고 나니 주말 하루가 다 끝나고 진이 빠져버린 기억이 난다. 그 미용실에서는 50만원 선결재를 권했고 그 돈이 내가 미용실에서 쓴 역대 가장 큰 금액이었다.
#6. 그후로도 머리는 계속 길었고, 바쁜 일정 떄문에 주말에 시간을 내기 어려워 관리할 수가 없었다. 매일 아침 머리를 말리는데 머리가 너무 엉켜서 비싼 빗을 샀다. 빗을 아무리 빗어도 엉켜버린 머리는 도저히 풀어낼 수가 없어서 매일 아침 화가 났다. 엉켜버린 머리처럼 내 인생도 엉켜버린 것만 같았다. 당시에는 우울증을 굉장히 심하게 앓고 있었다.
#7. 그러다 재작년쯤 머리가 크게 망해서 도저히 두고 볼수가 없어서 머리를 칼단발로 잘랐다. 비싼 돈 주고 한 머린데. 몇십만원을 땅에 버린 기분이었다. 막상 짧게 자르니 너무 편해서 머리를 더이상 기를 수가 없었다. 그러고보니 머리를 왜 길렀었지?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냥 죽을때까지 이렇게 짧은 머리 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
#8. 그렇게 계속 단발을 유지하다가 처음으로 투블럭을 접했다.
작년 여름 낙태합법화 시위를 갔다가 투블럭을 한 분들을 보았다. 당시까지도 단발이었던 나는 찌는듯한 더위에 뒤통수에서 땀이 계속 흘러내려 참을 수가 없었다. 시위가 끝나자마자 미용실로 달려가 아묻따 투블럭으로 잘라달라고 했다. 와 그런데 세상에 왜 이런 걸 진작 안했지, 신세계가 그 다음부터 펼쳐졌다.
머리카락에 관해 생각나는 장면들을 하나하나 그려보았다. 엄청난 지출에 대한 기억도, 그 당시의 감정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7번까지의 장면들을 돌아볼 때, 단 한번도 좋았던 적이 없다. 머리를 새로 바꿔서 즐거웠던 것은 며칠 가지 않았다. 나를 꾸미고 표현한다고 생각했던 그 머리칼들이 오히려 족쇄가 되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미용실 의자에 앉아 연예인 사진이 가득 담긴 파일집을 보면서 이 머리가 예쁠까, 저 머리가 어울릴까 하는 고민을 수십분씩 했다. 때로는 오지 않는 차례를 기다리며 멍하니 앉아서 날려버린 시간들도 있었다. 그때의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그냥 밀어 뭘 고민해..
자르고 나니 머리를 감고 말리는 데 10분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가장 좋은 것은 겨울이나 새벽에 수영을 가도 춥지 않다는 점이다. 겨울이면 머리 말리는 것 때문에 수영을 못갔었다. 그러나 이젠 가고싶은 대로 맘껏 수영을 할 수 있다. 이제 누가 나에게 머리를 왜 잘랐냐고 물어보면(근데 6개월 다되가니까 이제 아무도 안물어봄...)수영장 다니느라 잘랐다고 말할 것이다. 사실은 인과관계가 반대이지만 말이다.
지금의 나는 좀 더 '사람다워졌다'. 이 글을 쓰기위해 N드라이브 사진을 보고 왔는데 무릎 갈리는 줄 알았다. 셀카 화폭의 반이 머리칼일정도로 머리에 파묻혀있는 수준이었다. 저 긴머리를 달고 매일매일을 감고 말리고 다녔던 세월이 무상해졌다.
지금의 나는 남들에게 보이는 모습보다 나 자신의 생각과 그걸 표현하는 것과 수영자세와 내 일에 더욱 관심이 많다. 만약 내가 스무살때부터 머리를 자르고 공부에 집중했더라면, 신입사원때부터 우울감 겪지 않고 업무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면 지금의 나는 얼마나 더 무서운 퍼포먼스를 낼 수 있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지금의 나는, 만약 '외모관리'를 해야 한다면 그냥 나를 인간답게 보이게 하는 정도에서 그치고 싶다. 피부와 다른 속성을 지닌 터럭에 돈과 시간을 투자하여 '나를 표현한다'는 핑계로 지켜야 할 소중한 자원을 더이상 낭비하고 싶지 않다.
돌아보면, 머리를 잘랐을 때 은연중에 느꼈던 '해방감'들은 지금의 홀가분함을 느끼게 해준 작은 신호가 아니었을까. 길었던 머리가 좋았던 적이 없었다. 특히나 머리숱이 많은 나로서는 절대절대 나에게 자유의 상징이 될 수가 없었다. 긴 머리때문에 두피가 짓눌리고, 두피 뾰루지가 나서 따끔거리는 일. 커다란 샴푸통을 한달에 한번씩 비우던 일들도 모두 바이바이다.
지금은 닥터브로노스(수영장 갈때)와 도브뷰티바(집에서)만 있으면 만사 오케이이다. 예전처럼 샴푸/트리트먼트/바디워시/폼클렌징 바리바리 싸짊어지고 다니던 고생도 이젠 없다. 나같은 사람에게는 머리칼을 자른다는 것이 해방이나 다름 없었음을.
이제 머리칼에 돈 쏟아부을 필요도, 덜마른 머리로 아침길을 나설 일도, 헤어 제품을 짊어지고 다닐 일도 없이 홀가분하게 아침 수영을 해보고자 한다. 얼마가 갈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