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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렇듯 시간은 흘러가고 그 흐름에 맞게 시대 또한 흘러간다. 강물이 흘러가고바람이 부는 것처럼.
이 시점에서, 시대의 변화를 민감하게 예견한 한 여성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사실 이 영화는 영화의 서사로서나 흥미가 있는 편은 아니었다. 날카로운 설전이 오가는 법정 드라마도 아니었고, 모든 일이 척척 맞아 돌아가 통쾌함을 주지도 않았다.오히려 영화 내내 주인공인 루스는 수없는 좌절을 겪는다.
신입학으로 들어간 하버드 로스쿨 내에 여성 화장실이 없었던 것부터 변호사로서의 구직, 50년 전쟁의 포문을 열 변호 케이스를 위해 시민단체 동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들까지. 단 한번도 순탄한 일이 없었다. 오직 그의 '성별에 근거하여'.
그가 서있었던 시대는 참으로 역동적으로 변화했다. 1950년대 하버드의 풍경을 묘사한 장면으로부터 시작하는 이 영화는, 갑갑하고 칙칙한 색채로부터 출발한다. 우렁차게 울려퍼지는 하버드 교가는 <만명의 하버드의 남성들이여>라는 제목을 갖고 있다. 제목은 썩 유쾌하진 않지만 노래 자체는 경쾌하고 좋아서 링크 한번 가져와봄.
하버드대학 밴드 창립 90주년 기념 하버드 악단의 풀 연주 영상. 전통 명문의 부심이 절로 느껴진다.
학교 다닐 때 채플 시간에 어느날 총장이 나타나(흔한 일은 아님) 요즘 애들은 교가를 몰라서 안되겠다고 선배들이 혀쯧쯧찬다고 갑자기 교가를 학습당했던 기억이 아련하게 스쳐가면서,,,
많은 미국 영화에서 그러지듯, 1950년대 미국은 2차세계대전 이후 여성들을 다시 가정으로 돌려보내고, 전후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바로잡기 위해 이상적 가족상을 강화하는 분위기가 휩쓸었다. 그토록 악명높은 '스탠포드 와이프'도 이런 시대배경 속에서 탄생한 개념이다.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 '만 명의 하버드 남성들' 사이에서 불과 9명에 불과한 로스쿨 여성 신입생들이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
이 글은 그가 당했던 차별이나 부조리에 대한 자세한 설명에 대한 글은 아니며 자세한 건 다른 글에도 많을 테니 일단 넘어가도록 합니다. 남편의 투병이나 육아 등 개인사에 대한 것도 이 글에서 딱히 다룰 소재는 아니다.
우여곡절 끝에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 자격을 얻게 되지만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였고, 남편은 승승장구하는 로펌 변호사로, 그는 법학 교수로 커리어를 쌓게 된다.
약 10여년이 지난 이후, 그들의 집은 교양과 품격을 갖춘 '뉴욕 중산층'의 면모를 강하게 풍긴다. 집에서는 늘 오페라 아리아가 흘러나오고, 벽에는 오페라 포스터가 붙어있다. 여기서, 시대의 변화는 도서관이나 책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예술과 문화적인 것에서도 기인하며 이런 문화 컨텐츠들을 통해서도 감지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뉴욕이라는 도시는, 긴즈버그 부부가 학창시절을 보냈던 보스턴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뉴욕은 뉴욕 그 자체로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지니는 공간이다. 그들의 딸 제인은 뉴욕의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나름대로의 생각을 키우며 지적인 면모와 행동력을 함께 갖춘 청소년으로 성장한다. 일반적인 부모들의 눈에는 그들이 한낱 반항 피우는 딸로 보일 수 있었겠지만, 놀랍게도 루스는 제인에게서 '시대의 변화'를 감지한다. 딸은 반전시위에 참여하기도 하고, '의식화 모임'에도 참여하며 새로운 시대에 근본을 둔 지식인으로 성장한다.
(의식화 모임: 1970년 미국 래디컬 페미니스트 집단에서 서로간 의식을 고양시키고 경험을 나누었던 활동)
흥미로웠던 장면은, 럿거스대 법학교수 자리를 제안받은 날 집안에 흐르는 음악을 바꾸는 것이었다. 이것이 이 영화가 말하는 주제 의식과도 연결되어 있기에 설명을 한번 해봅니다.
남편 마틴이 귀가한 후 집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루살카> 중 '달에게 부치는 노래'였다. <루살카>라는 오페라는 체코 민족주의 음악과 교향곡으로 유명한 드보르작의 오페라이다. 오페라 자체보다는 이 아리아가 특히 유명한데, 낭만주의 시대의 몽환적인 감성을 그대로 담고 있는 수작이다. 노래 자체는 좋지만 가사는 물의 요정이 인간을 사랑하게 되면서 달에게 자신의 애절한 마음을 담아 부르는 내용이다. 동화 <인어공주>의 원형이 되는 전설로, 이종(異種)의 존재인 인간을 사랑하게 되는 물의 요정은 사랑을 얻는 대가로 목소리를 잃게 된다. 가정이라는 테두리 내에서 남편과 자녀를 보살피는 것으로 여생을 보냈던 구 시대 여성들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건 아닐까.
그리고 루스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LP 중에서 <피가로의 결혼>을 찾아 재생한다. 심지어 이 때, "그래...피가로의 결혼...!"하면서 오페라 제목까지 따로 한번 언급한다.
피가로의 결혼은 고전주의 시대를 살았던 모차르트의 대표 오페라로, 지혜로운 하인이 기지를 발휘해 귀족을 골려먹으면서 자신의 결혼을 방해하려는 주인에게 따끔한 교훈을 주는 내용이다. 극본은 로렌초 다 폰테 라는 사람이 썼는데 그는 변화하는 시대정신을 풍자를 통해 표현하는 데 특기가 있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조선후기 유행했던 탈춤이라는 극 장르가 이런 작품들과 유사한 역할을 했다.
그 당시 음악은 지금처럼 자신의 돈을 지불해가면서 공연장에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한 연주의 비율보다 왕족이나 귀족의 요청에 의해 연주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을 생각하면, 굉장히 도발적이고 반항적인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그토록 천재성을 인정받었던 모차르트조차 귀족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빈이라는 거대 예술 도시에서 자유음악가로 독립하는데 실패했다). 대부분의 귀족들은 주제의식을 이해하지 못하고 재미있는 유희거리로 웃어 넘겼지만, 일부 똑똑한 귀족들은 이것은 자신들에 대한 저항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오페라가 상연되지 못하게 금지하기도 했다. 그만큼 이 작품은 시대의 변화를 이끌어낸 원동력으로 간주되며, 프랑스 혁명을 예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물론 왕정 붕괴 과정 중 엄청난 여성혐오가 자행되었다는 사실과, 혁명의 결과는 결국 나폴레옹 제정이라는 다소 허무한 결말로 마무리 지어지긴 하지만).
항상 1등만을 도맡아오던 루스에게 수십개의 로펌에서 퇴짜를 놓았다는 현실은, 그야말로 <피가로의 결혼>에서 피가로와 수잔나가 처한 상황이나 마찬가지이다. 법적 지식을 무기로 거대한 벽 그리고 기득권과 맞서 싸우는 도전에 감히 발을 들인 것이다. 이 음악을 틀었다는 것은 빌어먹을 세상에 대한 선전포고격이자 승리를 예견한 것이나 다름없다.
사실 국세청을 비롯한 행정부나 판사를 비롯한 사법집단이 절대악의 위치에 있다거나 나쁜 생각에서 비롯하여 공제 요청을 거부하고, 즉각적인 법안 개정이 아닌 재판이라는 과정까지 이르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그들의 시대정신에 의해 충실히 직무를 수행한 것일 뿐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감히' 도전한다고 여겨지는 한낱 중산계층 지식인 부부가 하찮아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진짜 대박 키워드 하나 더 발견해서 오밤중에 갑작스런 글 수정**************
루스가 딸 제인을 데리고(일전에는 학교 빼먹었다고 그렇게 혼을 내시더니...) 그의 선배 세대 인권변호사인 '도로시 캐년'을 찾아가는 장면이 있다. 재개발 구역의 매우 허름한 사무실에서 나오는 그를 마주친 루스는 이 전쟁에 대한 조언과 도움을 요청하지만, 그는 앞선 세대에서 싸움에 지쳐 이미 현실에 타협한 듯한 냉소적인 태도를 보인다. 오히려 루스가 그에게 '시대는 변하고 있다'는 메세지를 남긴다. 그런데 이 도로시 할머니가 대화를 마무리 지으면서 남기는 대사가 의미심장하다.
"재개발 관련 분쟁이 있어 이만 가 봐야해. 마을을 새로 짓는다나 뭐라나....소호라고!"
배우님의 천연덕스러운 연기톤 때문인지 영화관 내 사람들이 다 터졌다. 지금은 유명 관광지가 된 소호지구가 그 당시에는 마치 천덕꾸러지처럼 여겨졌기 때문일까. 알고보니 이 장면에도 의미가 있었다.
지금은 소호가 뉴욕을 찾는 누구나 찾고싶은 매력적인 지역이 되었지만, 사실은 1960~70년대를 거치며 재개발로 인해 영영 없어질 운명에 처해 있었다. 모제스라는 당대 최고의 도시기획 브로커가 맨해튼을 가로지르는 거대 고속도로를 기획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명 'LOMEX'(Low Mantattan Expressway). 그러나 이 대형 토목 프로젝트에 감히 어깃장을 놓는 용자가 등장했으니, 그의 이름은 제인 제이콥스. 기자 출신의 대안 도시기획자로서, 이 구역에는 거대 토목 프로젝트가 아니라 골목 중심 미시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미심장한 대안을 내놓는다. 치열한 공방 끝에 제이콥스의 의견이 승리하게 되고, 이는 국책토목사업에서 시민단체의 의견이 강화되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전까지는 국책 사업에 대해 그 누구도 이래라저래라 토를 달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소호'라는 지구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한편 현재의 소호는 홍대나 상수지구처럼 젠트리피케이션을 겪고 대형 프랜차이즈 및 고급 로드샵 등이 입점하는 등, 상업주의 중심의 분위기로 변해가고 있다고 한다. 씁쓸한 결말이지만, 어쨌든 소호를 시민들의 것으로 남겨둘 수 있었던 데에는 이 용감한 여성 도시기획자의 역할이 굉장히 컸다. 이 또한 영화에서 말하는 '변화하는 시대정신'의 퍼즐판 중 한 조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법정과 교단에서는 루스가, 도시기획 분야에서는 제이콥스가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 출처: <건축으로 본 뉴욕 이야기>, 사람의 무늬, 이중원 저)
법정에서 루스가 판결문에 남기고자 했던 것은 결국 '시대는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루스의 손녀뻘 되는 지금의 청년세대 그리고 지금 청소년들에게서도 시대의 변화는 계속해서 감지되고 있다. 루스가 그 후 계속해서 철폐해왔던 '성별에 근거한' 법조항들이 대부분 사라졌다고 해서 차별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교묘한 방법으로 차별은 있어왔다.
그러나 변화하는 시대를 감지한 많은 사람들이 묵묵하게 이 변화의 흐름을 이어갈 것이다. 한 가지가 아닌, 자신만의 방식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이러한 사람들이 일으키는 힘으로 사회는 변증법적으로 변화해 나갈 것이다. 곳곳에서 켜지는 작은 불들이 조용하지만 거대한 물살이 되어. 이 대열에 서기 위해서는 시대의 변화를 예민하게 읽고 감지하여 이를 현실로 이끌어내는 안목과 에너지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