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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루나 Feb 10. 2023

#2 오지은 <인생론>

나로 태어났으니까 나로 살아가야 해.

"

모르겠으니까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자

어차피 완벽히는 할 수 없으니 요만큼만

뻥튀기는 하지 말자 그냥 나의 몸집대로

아는 만큼만 말하고 모르는 건 배우면 되지

최선을 다하면은 화창한 아침

도망만 다닌다면 어두운 아침

응원가는 싫지만 응원을 해주길 바래

나같이 작고도 하찮은게 혹시나 도움이 된다면

그 이상 기쁨이 없겠어요

어차피 한가한 나니까 당신과 함께 있는 때라면

최대한 상냥하게 있겠어요

"


여기까지가 1절이다. 가사만 보면 좀 진지하고 심각할 수 있지만, 음악을 직접 들어보면 말랑말랑하고 귀여운 느낌의 명랑한 곡이다. 듣다 보면 '가벼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만큼씩만 해봐'라는 노래의 메시지와도 잘 어울리는 편곡인 것 같다. 아마 이 노래를 만들면서 오지은씨 자신도 스스로에게 가사를 되뇌인 말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어릴 때부터 매사 걱정과 불안이 많은 편이었다. 뭔가 하고 싶은 게 생겼는데, 막상 하려고 할 때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회의감은 항상 나를 주저하고 망설이게 했다. 'what if~(~하면 어쩌지?)'에 무수히 따라붙는 비관적인 내용의 걱정들, 파국적(최악의 결과를 예상하는) 사고들. 그 이면에는 완벽주의, 흑백논리적 사고(성공 아니면 실패), 더 깊은 이면에는 낮은 자존감이 내재되어 있었던 것 같다.


완벽주의는 '완벽하게 하고 싶다'는 열망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어떤 일을 시작하거나 끝맺음하는 것을 미루는 행동을 유발시킨다. 전자를 '착수지연', 후자를 '완수지연'이라고도 부르는데,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강박적인 생각이 오히려 그 일을 시작조차 못하게 하거나 완결짓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완벽하게 못할 거면, 실수할 거면 차라리 안 하는 게 낫지.'와 같이 말이다.


20대 중반 법륜 스님이 운영하는 정토회에서 주최한 선재수련 프로그램으로 몽골에 3주 간 다녀온 적이 있었다. 매일 함께 읽고 되뇌는 기도문(전혀 종교적이지 않은)이 있었는데, '일단 해 봅니다' 였다. 다른 사람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일이 아니라면, 걱정만 하고 망설이다가 속으로 삼키기 보다는 일단 행해보자는 취지였다. 나는 자의식이 높아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 굉장히 신경쓰고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걸거나 다가가는 것을 어려워하던 시기였는데, 매일 반복하는 저 기도문이 나 스스로를 조금씩 행동하게끔 이끌었던 것 같다. 그래서 서툴지만, 사람들에게 먼저 안부를 묻거나 인사를 하기도 하고, 어떤 일거리에 대한 지원자를 모집할 때 걱정들이 난입하기 전에 일단 손부터 들어올리기도 했다. 비포장 도로를 달리던 짐과 사람들로 가득차 있는 버스 바닥에서 기타를 치라면 쳤고 주방 당번 지원하라고 할 때 망설임없이 자원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일단 해보면, 내가 생각하는 걱정들이 대부분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돌이켜보면 노랫말에서처럼 나는 일종의 '뻥튀기'를 하려고 무진장 노력해 온 게 아닌가 싶다. 아는 건 50인데 100만큼 아는 것처럼 말하려 하다 보니 어투와 내용이 현학적이고 피상적이며 부자연스럽게 흘렀다. 실제 생김새보다 더 멋지게 보이려고 하다 보니, 어울리지도 않는 옷을 입고 악세사리를 달고 다닌 시기도 있다. 내가 실제 느낄 수 있는 것보다 더 공감적이고 따뜻하게 보이려 하다보니 타인에게 마음에도 없는 연민과 공감의 말들을 쏟아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 한 켠에는 '이봐, 이건 진짜 내가 아니잖아'하는 목소리가 함께 했던 것 같다.


(이것과 관련해서는 <마음가면>의 저자 브레네 브라운의 TED 영상이나 넷플릭스 강연을 강력히 추천한다)


이 '일단 해 보기' 철학(?)은 내 삶을 많이 바꾼 것 같다. 이성에게 고백해서 차여보기도 하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의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친구와 길거리에서 프리허그를 해보기도 하고, 궁금했던 나라인 인도에 혼자서 훌쩍 떠나 한달간 배낭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배운 것은 머릿속의 걱정들이 만들어내는 가상의 고통이 실제의 고통보다 더 나쁘다는 거였고, 내가 선택해서 행동했을 때 따라오는 변수나 고통은 이내 극복해낼 수 있다는 점이었던 것 같다. 변수나 위기를 직접 겪을 때 사람은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적 외적 자원들을 동원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역량'이라는 게 키워지는 것 같다. 어느 심리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이 죽음에 이르렀을 때 자신이 한 일에 대한 후회보다는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가 훨씬 더 크다고 한다.


"

나로 태어났으니까 나로 살아가야만 해

자학에 사용하는 에너지는 절약합시다

어른이 되어가는건 지혜가 생겨나는 것

변명에 사용하는 에너지는 절약합시다

사랑을 해보니까 힘이 들구나

하지만 조금은 더 꿈꾸고싶네

사랑가는 싫지만 사랑은 좋아하니까

착한 사람이 되고싶어 매일 내가 되고싶어

웃을때 이빨이 8개가 보이도록

친구가 되어 준 너에게 나를 좋아라 해 준 너에게

연락은 자주 못하더라도 사랑해요

우울한 모던락 소년소녀 고독한 고양이과 사람들도

혼자가 좋을리는 없어요

모두가 힘들고 사실은 외롭고

새침은 더 이상 떨지말고

"


2절 첫 소절이 사실 나에게 가장 큰 '킬링 포인트'였다. 1절에서 빌드업을 하고 2절 첫마디에 결정적 한방! ^^ 사실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때 눈물이 찔끔 났던 기억이 있다. 이렇게 명랑하고 귀여운 멜로디가 사람을 울리기도 한다. '매일 내가 되고 싶어'라니. 내가 그냥 나로 살아도 되는구나. 이 말은 참 큰 위안이 되었고 용기를 주었다.


어릴 땐 내가 언젠가는 굉장히 대단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착각하며 살았던 것 같은데, 그게 어떤 점에서 큰 독이었던 것 같다. 내가 꿈꾸는 ideal self(내가 이상적으로 꿈꾸는 내 모습)는 사람들 앞에서 말도 잘하고, 유머감각도 풍부하고, 인기도 많고, 자기 분야에서 능력도 출중한 그런 모습이었다. 그렇게 되려고 노력도 많이 했지만, real self(실제 내 모습)와의 차이를 지각할 때마다 때로는 자학하기도 때로는 변명하느라 바빴다.


역설적이게도, 내가 아닌 누군가가 되려고 노력할 때 사람은 변화되기 어려운 것 같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수용할 때 마침내 사람은 변하기 시작한다. 나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도 그렇고 상담에서 만났던 내담자들과 동행할 때도 무수히 목격했던 현상인 것 같다. 내가 아닌 누군가가 되려고 노력할 때 자학과 변명에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된다. 다른 사람과 있을 때 떳떳하지 못하고 부자연스러워진다. 즐겁거나 슬플 때 있는 그대로 그 감정을 드러내지 못한다. 이빨이 8개가 보이도록 웃지 못한다.


그러니 이 노래의 제목을 '인생론'이라고 다소 거창하게 지은 이유도 조금은 알 것 같다. 왜냐하면 이런 태도는 정말 인생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난 매사에 이렇게 살아보려고 해. 너도 한번 동참해 볼래?' 하고 초대하는 화자. 우리 함께 "일단 해 봅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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