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접시에 담긴 건강한 음식
얼마 전까진 벚꽃이 만개하더니, 갑자기 눈이 올 건 또 뭐람. 조처럼 종잡을 수 없는 날씨에 넣으려던 두꺼운 외투들을 넣을까, 말까 몇 주째 고민만 하고 있다. 오늘은 괜스레 날이 또 후덥지근해져 입맛까지 떨어지는 기분이다. '뭔가 배가 든든하며 새콤한 음식 없을까?' 하다 갑자기 할머니가 해준 도토리묵이 생각난다. 아직까지 도토리묵을 직접 쑤어주는 할머니는 가을만 되면 어디서 도토리를 이렇게 많이 주울 수 있을까 궁금할 정도로 한가득 보내주신다. 탱글탱글한 묵을 한 입 베어 물면 부드러운 식감과 고소한 맛이 입맛을 채운다.
사실 도토리묵은 어느 요리에서든 주연은 아니지만, 묘하게, 주어진 그 자리를 지키며 마음을 끌어당기는 맛이 있다. 고소하면서 부드러운 식감은 젓가락이 한번 더 가게 만든다. 담백하면서 깊은 맛을 내는 특유의 매력이 있다. 마치 주변에 조용하고 묵묵한 친구에게 눈길이 한번 더 가게 되는 마음이랄까.
집 앞 마트에 가 도토리묵이랑 이것저것 야채들을 담아본다. 양심상 야채를 먹을 겸 도토리묵무침을 해보기로 한다. 도토리묵을 무칠 땐 천천히 무쳐가며 맛을 만들어준다. 싱싱한 상추를 한입 크기로 뜯어내고, 오이와 양파, 당근은 채 썬 뒤 찬물에 담가 아삭함을 더해준다. 모양은 상관없다. 도토리묵이 주인공이니 도토리묵보다 작게만 썰어낸다.
도토리묵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새콤달콤한 양념이다. 식초, 설탕, 고춧가루, 간장에 마지막으로 참기름의 고소한 풍미까지 더하면 완성이다. 양념을 재료들에 부은 뒤 슥슥 섞기만 하면 된다. 괜히 허전해 보이는 것 같을 땐 깨를 뿌려 완성한다.
자리에 앉아 한 입 먹어본다. 탱글한 도토리묵과 아삭한 야채들, 새콤달콤한 양념들이 입 안에서 조화를 이룬다. 자칫 삼삼할 수 있는 도토리묵이 양념과 만나니 조화를 이룬다. 도토리묵무침은 각자의 재료가 각자의 자리에서 빛을 발하는 요리이다. 각 재료가 않지만 뚜렷한 개성으로 조화를 이룬다. 마트 묵도 충분히 맛있지만, 더 쫀쫀한 할머니 묵이 떠오른다. 다음엔 할머니표 도토리묵에 막걸리 한 잔 해야지- 하며 한 젓가락을 더 들어 올린다.
도토리묵은 가을의 풍성함을 담고 있다. 그 풍미는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묵직하게 다가오며, 한 입 먹으면 가을의 기운이 입 안에 퍼지는 듯한 느낌이다. 도토리묵의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은 그 자체로 계절의 변화를 내게 전해준다. 계절이 바뀌는 무렵, 도토리묵 한 그릇이 주는 위로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따뜻하다.
마트에서 고른 상추는 물처럼 싱그럽고, 오이와 당근은 아삭한 식감을 더해준다. 이 작은 재료들이 모여 한 끼 식사가 되며, 더 맛있고 건강한 느낌이 든다. 상추, 오이, 당근 등 야채는 각기 다른 맛과 식감을 가지고 있지만, 도토리묵의 부드럽고 고소한 맛을 돋보이게 해 주며 이 모든 재료가 한 접시에 담길 때, 마치 작은 소풍처럼 기분 좋은 느낌을 준다.
건강하게 부른 배로 기분 좋은 포만감을 느낀다. 한 젓가락을 더 집어 들며, ‘이 맛이 바로 할머니의 따뜻한 손맛이구나’ 하고 문득 느낀다. 어쩌면 도토리묵은 그저 하나의 요리가 아니라, 기억 속에서 여전히 내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는 맛이다. 오늘도 여전히 할머니의 손맛을 떠올리며, 그 한 접시에 차가운 요리에서 담긴 따스함을 마음껏 음미한다.
도토리묵 1팩
상추 3~4장
양파 1/4개
오이 1/3개
당근 약간
홍고추 1개 (선택)
고춧가루 2큰술
간장 3큰술
식초 2큰술
설탕 1.5큰술
다진 마늘 1큰술
참기름 약간
통깨 약간
1. 도토리묵은 흐르는 물에 가볍게 헹군 뒤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준비합니다.
2. 상추는 손으로 한입 크기로 뜯어주세요.
3. 양파, 오이, 당근은 곱게 채 썰어 찬물에 담가 아린 맛을 빼고, 아삭함을 살립니다.
4. 볼에 양념장 재료를 넣고 골고루 섞어 준비합니다.
5. 채소의 물기를 제거한 후 양념장을 넣고 조물조물 무쳐줍니다.
6. 접시에 도토리묵을 담고, 무친 채소를 곁들입니다.
7. 마지막에 통깨를 톡톡 뿌려 마무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