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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식 카레 수프

포근하고 따뜻한 카레 수프 한 그릇.

by 미죠떼

어느 겨울, 일본의 거리를 배경으로 카레 수프를 먹는 사람들의 영상을 우연히 봤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따끈한 국물을 들고 행복하게 웃는 모습이 이상하리만치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그때부터였다. 언젠가 삿포로의 겨울을 온몸으로 느끼며, 그런 따뜻한 한 그릇을 마주하고 싶다는 바람이 생긴 건.


내가 꿈꾸는 일본의 겨울은 선명하다. 첫눈이 쌓인 골목 어귀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라멘을 호호 불며 먹고, 해가 질 무렵 하얀 눈길을 걸어 아무 골목의 작은 가게에 들어가 카레 수프 한 그릇을 마주하는 것. 따뜻한 국물에 마음까지 녹아드는 그 순간을 상상만 해도 웃음이 난다.


스프카레.png


카레 수프는 일반적인 일본식 카레와는 조금 다르다. 진득한 카레 대신, 육수 베이스로 묽고 깊은 국물 속에 고기와 채소가 듬뿍 들어간 형태. 홋카이도 삿포로에서 시작된 이 요리는 동남아의 묽은 카레(소토아얌)에서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고 한다. 특히 볶거나 튀긴 채소를 따로 올려주는 방식이 독특하다. 하나하나 손이 많이 가지만, 그래서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


지역 특성상 날씨가 춥다 보니 야채들이 웅추고 더 달면서 아삭하다 한다. 가게마다 토마토 베이스의 육수를 만들거나, 레몬을 짜서 먹기도 하고, 닭다리를 삶기도 튀기기도, 어떤 향신료의 배합이 달리지기도 가게마다 특징과 맛이 다른 것이 특징이다.


가끔, 못 가는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눈을 감고 삿포로의 겨울을 상상해 본다. 하얀 설원이 끝없이 펼쳐지고, 그 위로 나무 한 그루가 덩그러니 서 있다. 그 나무는 세월을 온전히 담고 있는 듯 고요하다. 그곳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내 코는 빨개지고, 손끝은 차가워지지만, 속은 따뜻해지길 기다린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눈을 채우다 이제 배를 채울 때가 왔다.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눈에 띄는 작은 가게로 들어간다. 가게엔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져 나온다., 메뉴는 손으로 써 놓은 두어 가지뿐이다. 왠지 그게 나를 더 기대하게 만든다.


그중, 카레 수프를 시킨다. 조금 기다리니, 카레의 맛있는 향이 가게 가득 퍼진다.

기다리던 수프를 한입. 부드럽게 구운 단호박과 고소한 구운 피망, 버섯, 그리고 포슬포슬한 감자와 윤기 흐르는 잘 구운 닭고기가 담겨 있다. 한 숟가락을 떠서 입에 넣으면, 국물은 따뜻하고 진한 맛을 품고 있으며,

야채들의 고소하고 감칠맛 나는 향이 입안을 채운다. 한 번에 여러 가지 맛이 어우러지는 그 풍부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따뜻한 위로처럼 느껴진다.


포슬한 감자, 달콤한 단호박, 노릇노릇하게 구운 피망과 버섯, 그리고 윤기 흐르는 닭다리.

따로 또 같이,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맛이다. 이제 밥에 국물을 적셔 한 입.

‘역시 카레엔 밥이지’ 하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특히 야채들 그 하나하나가 맛의 특성이 살아 있다. 구운 피망의 달콤함, 단호박의 부드러움, 그리고 감자의 포근한 맛.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카레 국물에 묻혀 더 깊은 맛을 낸다.

마치 그때 그곳에서 느낄 수 있는 따뜻함이 다시 한번 떠오르는 기분이다.

그리고 그 순간,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며,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언젠가는, 꼭 삿포로의 겨울 거리에서 내 로망을 하나씩 채워가고 싶다.

포장마차 라멘부터, 눈 쌓인 골목 끝 작은 가게의 카레 수프까지.

차가운 공기와 따뜻한 국물 사이에서 진짜 겨울을, 그리고 진짜 나만의 순간을 마주하고 싶다.


오늘 저녁은 카레 수프를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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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식 카레 수프


재료 (1~2인분 기준)

닭다리살 200g

감자 1개

단호박 3 슬라이스

연근 3조각

가지 1/3개

새송이버섯 1개

당근 1/4개

마늘 2개

버터 약간

카레가루 4큰술

닭육수 500ml

치킨스톡 1작은술

소금, 후추 약간

올리브유 약간

드라이 바질 2g

토마토 퓌레 50g(생략 가능)


만드는 법

1. 닭다리살은 껍질 쪽에 칼집을 낸 뒤, 소금과 후추로 밑간해 둔다.

2. 감자, 단호박, 연근, 가지, 새송이버섯, 당근은 먹기 좋은 한입 크기로 썰어준다.

3. 카레가루를 물에 풀어 준비한다.

4. 냄비에 식용유를 소량 두르고 다진 마늘, 토마토 퓌레, 드라이 바질을 넣고 2~3분간 볶아준다.

5. 닭육수 500ml와 치킨스톡, 카레물을 넣고 끓인다.

6. 위의 국물에 감자와 당근을 먼저 넣어 익혀준다.

7. 손질한 야채들과 밑간 해둔 닭다리살을 올리브유를 두른 팬에 노릇하게 구워낸다.

8. 완성된 카레 수프에 구운 재료들을 올려 마무리한다. 기호에 따라 밥과 함께 곁들여 먹으면 더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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