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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사서가 되기까지 - ①

사서가 뭐 하는 사람인지 아시나요

by 뉴욕사서

"안녕하세요 000입니다."

"혹시 무슨 일 하세요?"

"사서예요"

"예? 사서요?"

"네.. 도서관 사서요"

"아아~ 도서관 사서어어어~~ 좋은 일 하시네요. 책 많이 읽으시겠어요"


지금은 하도 떠들도 다녀서 내 주변에 이렇게 물어보는 사람은 이젠 거의 없다. 하지만 2015년에 처음 매사추세츠 우스터 지역에서 기적같이 사서로 채용된 후 마음이 설렘으로 한껏 부풀어 있던 시절, 내가 하는 일을 소개할 때 적잖은 사람들이 이런 반응을 보였었다.


그때부터였나. 사서라는 직업이 뭔지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게.


실은 나의 꿈도 처음부터 사서는 아니었다. 어릴 때는 막연하게 화가, 건축가, 외교관이 되고 싶었고, 어렴풋이 현실을 파악해야 하는 나이가 되고 나서는 영문과에 진학해서 좋아하는 영어를 마음껏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영문과가 영어만 배우는 과가 아니라건 대학에 와서 알았다. (나는 영어영문을 전공하지 않았다)


어쩌다 보니 대학에 들어갈 때의 전공과는 다른 문헌정보를 공부하게 되었고, 그 씨앗을 심어준 계기가 되었던 건 어느 전공과목에 대학사서분이 오셔서 학교 도서관 사용법과 데이터베이스 사용법을 알려주는 강의였다. 도서관은 그냥 공부하고 책 빌리러 가는 곳인 줄로만 알았던 나에게 충격이었다.


공부를 더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대학원을 진학했다. 그 당시에 나는 기록관리에 관심이 많았었는데 막상 수업을 들으니 나와는 조금 안 맞는다고 느끼던 차에 미국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있어서 지원하게 되었다. 그 당시 내 나이 스물일곱. 영어를 좋아만 했지 내가 배웠던 영어는 실생활에서 사용하기에는 너무 초라한 영어였다는 걸 토플 점수를 통해서 알았다. 그리고 턱걸이 었는지 학교에서 와서 영어수업 들으면서 다니라고 했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어쨌거나 나는 미국을 가게 되었다.


보스턴의 대학원 생활은 꿈만 같았다. 정말 꿈만 같았다. 아직도 내가 그 어려운 영어로 하는 수업을 어떻게 들었는지 모르겠다. 어느 날 팀 프로젝트를 하는 팀원에게서 언어장벽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는 피드백을 받고 나서 내가 얼마나 무모했었는지 깨달았다.


나는 생각보다 용감한가. 무식하니 용감했었다고 해야 하나.


그렇게 나는 꿈만 같았던 보스턴에서의 유학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왔다가 지금의 남편을 페이스북에서 만나 미국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법적 신분이 외국인 노동자의 배우자면 공부도 못하고, 일도 못한다. 한국에서 아무리 공부를 많이 했어도 외국인 노동자는 할 수 있는 일이 이런 거밖에 없나 하는 현타가 오면 아르바이트하면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러다 남편이 영주권 스폰을 받아 진행될 때 나도 같이 들어가서 영주권을 받게 되었다. 영주권 신청을 하고 승인이 나면 이제 미국 밖으로 출국을 해도 된다는 여행 허가증과 일을 할 수 있는 워크 퍼밋이 나온다.


이때부터였다. 남편의 외조? 나의 커리어를 위한 등 떠밀기가 시작된 때가.


이제 떳떳하게 일할 수 있으니 동네 도서관에서 가서 자원봉사라도 해보라는 등쌀에 못 이겨 동네 도서관에 발론티어 신청서를 넣었다. 그랬더니 면접을 보러 오란다.


'아니 발론티어가 무슨 면접까지'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떨리는 마음으로 레쥬메를 가지고 면접을 보러 갔다. 도서관 공부를 한 걸 알아보고 왜 도서관에서 발론티어를 하려고 하냐, 학교 도서관이 지역 사회에 미치는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냐 등등 예상치 못했던 심층 면접 질문에 영혼이 탈탈 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난 안됐갰구나 하고 있는데 며칠 후 언제 언제 나오라는 연락을 받고 그때부터 도서관에 출근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동네 메인 공공 도서관에 분관으로 딸려 있는 작은 학교에 있는 도서관에서 일을 했다. 학교 수업이 끝나기 전에 가서 책 정리를 하고, 학교 수업이 끝나면 몇 명의 아이들이 도서관으로 와서 좋아하는 책도 읽고 가끔 프로그램을 하면 내가 보조 역할도 했다. 사실 도서관에서 필요로 하는 발론티어는 책 정리가 주 업무라서 영어를 거의 사용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자연스레 책 정리에 쓸데없이 나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 내고 있었다. '단 하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겠다'라는 지금 생각하면 우스꽝스러운 생각으로 책 정리에 진심이었다.


그걸 좋게 보았는지 슈퍼바이저가 "너 메인 도서관에서 사서 뽑는데 지원해 볼 생각 없어?"라고 물어왔다. 아직도 기억난다. 나의 리액션


"내가? 나 영어도 못하는데 나를 누가 뽑아줄까?"

"그건 모르는 거지, 지원해 봐"


그렇게 어이없어하며 집으로 돌아와서 남편에게 말하니 '이건 놓치면 안 되는 기회라 일단 넣어보기라고 해라' 하는 응원(?)에 발론티어 때 사용한 레쥬메를 부랴부랴 수정해서 지원했는데 '어라? 면접을 보러 오라고?' 원래는 풀타임 Reference Librarian을 뽑은 자리었는데 면접을 본 후에 HR에서 연락이 왔다.


"면접에 와줘서 정말 고마워, 안타깝지만 우리는 다른 지원자를 채용하기로 했어"라고 하길래. "응, 알았어 연락 줘서 고마워."라고 하려는 순간 "그런데 우리는 너에게 파트타임 Reference Librarian 자리를 제안하려고 해"라고 하는 거였다!


오 마이 갓.


그게 어디야. 그야말로 감지덕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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