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왕국으로 입국신고.
맨해튼 아일랜드의 첫 글은 공교롭게도, 맨해튼을 떠나던 날의 여행기로부터 시작해야겠다.
기말고사를 마치고 떠나는 여행은 언제나 힘이 들었다. 시험 직전까지는 목숨줄처럼 다루던 서류뭉치를 허무하게 쓰레기통에 집어넣고, 학기 내내 날 무겁게 짓눌렀던 케이스북을 꽂아둘 자리를 책장에 마련한다. 시험기간이라 어지럽혀진 방을 정리하고, 침대 시트를 갈고, 잔뜩 밀린 빨래를 하고, 냉장고에서 수명이 다한 음식들을 골라 버리거나, 냉동실에 쑤셔 넣는다. 그렇게 하루, 혹은 반나절 정도 기운을 쏙 빼는 작업을 거친 후에야 길을 떠날 수 있다.
새벽 네시의 공기를 가르며 뉴왁공항으로 향했다. 뉴욕과 뉴저지를 잇는 링컨터널, 그토록 복잡하던 그곳도 새벽에는 텅텅 비어서 이십 분 만에 공항에 도착해 버렸다. 체크인과 시큐리티의 시간이 끝나고, 한참의 기다림 끝에 이코노미석 중에서 그나마 다리를 뻗을 수 있는 'preferred seat'에 앉아 잠시나마 편안함을 느껴보지만 그것도 잠깐. 비상구 옆이라 이것저것 잔소리가 많은 자리였을 줄이야.
작은 비행기 안에 짐이 다 실리지 않아서 출발은 한 시간 가까이 지연되었고, 기대했던 맨해튼의 전경은 동쪽으로 떠오른 태양 탓에 눈이 부셔 제대로 눈을 뜨지도 못하고 잠깐, 환영처럼 보일 뿐이었다. 맑지 않은 하늘이지만 그렇다고 탁하지도 않은, 연한 하늘색과 구름과 안개가 뒤섞인 스카이라인 뒤로, 월드트레이드센터가 비현실적인 크기로 우뚝, 홀로 솟아 있는 장면이었다. 안녕, 맨해튼. 다시 돌아올 무렵에는 나, 지금 느끼는 피곤함과는 다른 기분이기를.
하늘과 땅의 경계가 모호한 장면을 바라보다 까무룩 잠이 들고 깨기를 반복했다. 국적기임에도 기내식을 '판매'하는 에어캐나다에서는 아침식사용 샌드위치를 팔고 있었다. 어차피 먹자 못했을 메뉴들, 돈 아끼길 잘했다 싶다가, 비행기 티켓 가격이 그리 싸지도 않았던 것에 생각이 미쳐 갸우뚱했던 것도 같다.
캐나다로 접어드니 세상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빙하와 산맥을 감상하며, 밴쿠버에서 비행기로 세 시간 거리의 캐나다의 화이트호스에 도착했다.
북쪽으로, 더 북쪽으로. 알래스카 앵커리지까지 차로 갈 수 있는 "Alaska Highway"가 이어지는, 북극에 가까운 동네다. 평생 기억에 남을 겨울여행을 하겠다며 천지가 눈으로 가득한 이곳을 택한 것이다.
겨울왕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