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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라를 기다리는 시간 (1)

겨울왕국에서, Day 1 to 5.

by 여행작가 제이민

북극의 1월. 화이트호스 근처를 지나는 비행기 창 밖으로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비현실적인 풍경을 마주한다. 눈 덮인 산맥과 광활한 호수의 파노라마는 여행자의 심장을 요동치게 했다. 여전히 눈발이 흩날리는 활주로 위를 미끄러지듯 착륙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고 말았다. 단순히 TV에서 보았거나 상상했던 광경을 초월하는 ‘경외심’. 그것이 북극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의 느낌이다. 묘한 불안감과 두려움을 동반하는 경외심은 숙소로 향하는 내내 떨쳐낼 수가 없었다.

여름에는 낚시꾼이, 겨울에는 오로라 여행객이 주로 묵는다는 우리의 별채 오두막은 본채에서 200m 이상 떨어진 호숫가에 있었다. 전기와 난방이 들어오지 않는 오두막에서는 중앙에 놓인 화목난로가 유일한 난방 수단이기에 밤이고 낮이고, 두 시간에 한 번씩 장작을 새로 갈아 넣어야 했다. 전기가 없으니 당연히 인터넷도 안되고, 카메라 같은 전자제품 충전도 할 수 없어 낮에는 주인집 오두막으로 걸어가 충전을 하고, 숙소 주변을 잠시 산책하다 돌아와 저녁 무렵에는 작은 가스등 아래서 책을 읽는 것이 소일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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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의 시계는 사람을 배려해주지 않는다. 여행 중이니 평소보다 부지런해 보겠다며 눈을 제아무리 일찍 떠 봐야 밖은 캄캄하다. 오전 10 시가 되어서야 해가 뜨고 오후 3시면 해가 진다. 밖이 어두워 저녁을 먹어야 할 것 같아 시계를 보면 기껏해야 다섯 시 즈음이다. 멀리 일본으로부터 온 다른 여행객들도 시차 적응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는다. 낮에는 실컷 자 두고 밤에는 오로라를 기다리며 하늘을 본다. 긴 거리를 날아온 여행자의 마음은 하나같이 간절했지만, 오로라는 쉽게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숲 속 오두막에 파묻혀 오로라를 기다린다는 것은... 잊고 지낸 삶의 방식을 되찾아가는 시간이기도 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에는 긴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걱정했는데, 우리에게는 의외로 할 일이 많았고, 기억해내야 할 것들도 많았다. 가장 먼저, 모닥불을 피우는 방법을 되찾았다. 공기가 조금 통하도록 장작은 서로 비스듬하게 기대어 놓고, 나무는 눈에 젖지 않은 바싹 마른 것으로, 불쏘시개로는 신문지나 지푸라기 같은 것을 사용하기. 계획하며 사는 방법도 익혔다. 지나치게 모든 것이 과잉공급인 상태, 필요한 것이 있으면 곧바로 사러 가거나, 멀리 있는 물건은 배달시키면서 당장의 욕구에 충실하던 도시의 삶에서 벗어나야 했다. 이곳에서는 앞으로 일주일 동안 내가 먹고 쓰게 될 음식과 물건에 대한 계획을 미리 세워 장을 봐야 했고, 부족하거나 넘치는 것이 있더라도 알아서 배분하고 소화해내야 했다. 다소 서툴렀지만 하루하루, 오늘 할 일과 내일 해야 할 일, 아침과 점심과 저녁에 먹을 것들을 분류하는 것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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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빡이는 가스등을 끄고 나면 난로의 희미한 불빛만 남았다. 오두막의 문을 닫고 밖으로 나서면 바로 숲이었고, 인공의 불빛이 미치지 못하는 하늘은 별로 가득했다. 어린 시절 시골에 놀러 가 사촌동생들과 돗자리를 깔고 누워 별자리를 하나씩 알아맞히며 즐거워하던 기억. 우리가 떠드는 소리에 동네 강아지들도 덩달아 한 마리씩 늑대울음 울던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밤하늘을 이고 서서, 처음 왔지만 낯설지 않은 이곳에 오래도록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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