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왕국에서, Day 10
여행 열흘째. 구름 걷혀가는 하늘을 보면 찾아와 줄 법도 한데, 아직도 오로라를 보지 못했다. 북극과 가까운 곳으로 가기만 한다면 언제든 볼 수 있을 줄 알았던 북극의 빛을 목격하는 데에는 간절한 기다림이 필요한 것임을, 이곳에 와서야 깨달았다. 한 달이면 충분하겠지, 하루 이틀쯤 밤을 새우면 볼 수 있겠지, 쉽게 생각했던 마음에는 과연 이번 여행이 끝나기 전에 내게 그런 행운이 한 번이라도 찾아와 줄까.라는 의문이 깃들었다. 변화라면 변화다. 내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노력해서 뭐든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던 자만심을 버리는 과정이다. 내가 지금 기다리는 것은 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닌, 자연의 섭리에 따른 것임을 깨닫는다. 매일 기다리고 있고, 또 매일 밤 실망하면서도 이 시간이 싫지는 않다. 이번이든, 혹은 다음번이 되든... 언젠가 오로라를 보는 순간이 온다면, 그 경험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행복함을 느낄 수 있게 될 테니.
또 한 번의 이른 밤이 찾아왔다. 안락의자에 앉아 발받침을 놓고, 담요를 덮었다. 바로 옆 식탁에는 미지근한 커피 한 잔, 마트에서 샀는데도 의외로 촉촉하고 맛있는 초코 마블 케이크, 책 읽을 때 독서등 대용으로 사용 중인 플래시 하나가 놓여 있다. 수시로 일어나 난로의 화력을 확인하고 뜨거운 물을 끓여 몸을 덥힐 핫팩을 준비해야 하는데도 귀찮지 않은 것이 신기하다.
오래된 나무 오두막에서는 여기저기 소리가 난다. 타닥타닥 타오르다 부서져 내리는 장작 소리가 가끔 들리고, 난로의 그을음이 통을 지나가는 소리, 지붕에 쌓인 눈이나 바깥의 습기가 안의 따듯한 공기와 만나 물이 맺혀 툭툭 떨어지는 빗방울 같은 소리라든지, 열기와 냉기가 부딪히고 있어서인지 간간이 삐걱대는 마룻바닥 소리까지. 도시의 소음과는 완전히 다른 자연의 소리들에 귀기울이다 보면 몇 시간쯤은 금방이다. 난로의 온기를 느끼면서 책을 읽다가 은은하게 일렁이는 프로판 불빛을 바라보다, 어두운 창 밖을 내다보기를 반복했다.
창 밖은 캄캄하지만 어둠이 눈에 익으면 빼곡하게 빛나고 있는 별이 보인다. 밖은 춥지만, 옷을 든든히 입고 플래시 들고 나가면 또 마법같은 밤하늘이 펼쳐지리라는 것도 알게 되어 든든하다. 오로라를 기다리다가, 별과 사랑에 빠졌다. 길지 않은 이곳에서의 시간은 아주 오래 기억 속에 남을 것이고, 세상 살기 지칠 때마다 끊임없이 떠오르며 그리울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