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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민 Jan 08. 2016

설원을 달리다

겨울왕국, 화이트호스의 개썰매.

화이트호스는 유콘 준주의 수도이자 가장 큰 도시다. 즉, 오로라를 관측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사람 살만한 곳'이라는 뜻. 추울 때는 지독하게 춥지만 12월 말부터 1월 초까지의 체류기간 동안 낮 기온이 영하 5~15도 사이까지 오르기도 했던 걸 보면 겨울철 영하 3-40도가 기본이라는 옐로나이프나 도슨 시티에 비해 훨씬 나은 편이다. 이 정도면 다양한 겨울 액티비티를 '고통스럽지 않게' 즐길 수 있을 법한 날씨. 그래서 화이트호스의 사람들은 말한다. 화이트호스에 오면 겨울을 만끽하라고, 오로라는 '하늘의 선물'로 여기라고.

개썰매 체험을 위해 아침 일찍 길을 떠났다. 시퍼런 밤의 기운이 가시지 않은 시각, 썰매견들의 거처에 도착했다. 알래스카에서 유콘까지, 장장 1,600km를 개썰매로 달리는 유콘 퀘스트(Yukon Quest) 대회에 무려 24회나 참가하고 우승 경력까지 보유한 전문가 프랭크 터너가 운영하는 Muktuk Adventures에는 백여 마리의 썰매견이 산다. 작은 집 하나에 개 한 마리씩. 눈구덩이를 파고 들어간 녀석도, 낯선 인기척에 호기심이 동해 지붕 위에  올라앉은 녀석도 있다. 밖에서 자는 아이들은 건강한 현역들이고, 은퇴한 노견들은 집 이곳저곳을 어슬렁대며 여생을 보낸다.

종일 눈밭을 누벼도 끄떡없을 복장으로 갈아입고 오늘 함께 여행을 떠날 썰매견을 만나러 갔다. 2인 1조의 썰매를 끄는 썰매견은 여섯 마리. 이름이 적힌 종이를 받아 들고  하나하나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나눴다. 우리 썰매의 대장은 오드아이를 가진 제이콥이라는 이름의 용맹한 허스키였다. 대장 역할은 힘이 가장 세고 집중력이 강한 시베리안 허스키의 몫이다. 제이콥은 오른쪽 맨 앞에, 그 옆에는 유순한 성격의 견종을, 중간 지점에는 다소 산만한 녀석들을, 맨 뒤에는 성실하게 뒷받침을 해줄 허스키로 한 팀이 꾸려졌다.

산책을 나가기 직전의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썰매에 묶인 개들이 요동 칠 때마다 썰매가 들썩거렸다. 시베리안 허스키로만 무리를 이루면 일반인은 도저히 그 힘을 감당할 수 없어 대열에 서너 마리의 다른 견종을 섞어놓았음에도 통제가 어렵다.

여행 초반부는 서로에게 적응해가는 시간이다. 나의 발구름이 시원치 않다거나 불필요한 움직임이 감지되면 개들은 달리다가도 뒤돌아보며 따가운 눈초리를 보낸다. 서투르게 썰매에 매달려 있는 초보 파트너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신호다. 그럴 때에는 더 힘차게 썰매를 밀어주고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집중력이 강한 대장견은 한 눈 한 번 팔지 않고 앞을 향해 나아가는데, 장난꾸러기 녀석들은 다른 방향으로 달리거나 교묘한 꼼수를 쓰기 마련이다. 이럴 때에도 사람의 개입이 필요하다. 한눈파는 녀석의 이름을 불러 집중시키고 대장견이 달리는 속도에 맞춰 강하게 발을 구르다 보면 영하 15도의 날씨에도 온몸에 열기가 후끈하다.

개썰매는 타는 것이 아니라 함께 달리는 것임을, 단순히 개에게 의지해 내달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제 7의 썰매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우치는 순간, 무섭게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유콘 퀘스트의 일부인 타키니 강(TakhiniRiver) 루트를 따라 달려나가는 우리. 어느덧 개와 인간 사이에는 끈끈한 유대감이 형성되어 있었다.

반환점에서 간단한 요기를 하고 휴식을 취했다. 아이들은 열기를 식히려 눈밭에 뒹굴며 장난을 치는데 대장견 제이콥만큼은 썰매 옆에 가만히 앉아 요지부동이다. 팀을 혼자 이끌다시피 한 제이콥의 목을 몇 번이나 끌어안고 눈을 마주치며 이름을 불러준다. 제가 태운 사람이 자신을 신뢰한다는 것을 아는 대장견은 몇 배의 기운을 내는 법이라며, 스텝이 엄지를 치켜세우고 지나갔다.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간다. 팀워크도 맞아가고 서로의 특성을 파악하고 나니 썰매가 더욱 빨라졌다. 앞 썰매를 추월할듯한 기세로 달려가는 녀석들을 적당히 달래 가며 나아가는데 갑자기 눈이 내리며 날이 어두워졌다. 묘한 두려움이 엄습하고 코스는 이내 숲길로  접어들었다. 썰매견을 부르는 목소리도 다급해진다. "제이콥 런! 런! 제이콥!" 녀석은 이런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동료들을 확실하게 이끌었다.

썰매 캠프에 도착하자 스텝이 달려와 개줄을 풀어준다. 순간 안도감과 성취감이 밀려오며 나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달려갔다. 고작 몇 시간의 동행이었지만 마치 수년을 알아온 친구처럼 깊은 교감을 나눈 우리다. 한놈 한놈 안아주고 마지막으로 제이콥을 힘껏  끌어안았다. "정말 고마워."


화이트호스를 떠나온 후에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든든한 제이콥, 성실한 나믹, 말썽쟁이 스프루스, 곁에서 고생 많았던 에르부스, 요령쟁이 카제, 순둥이 고보. 홈페이지를 보니 다들 아직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 안심이다.

겨울여행으로 문을 연 맨해튼 아일랜드 매거진. 이제 본격적인 뉴욕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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