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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민 Jan 15. 2016

난공불락의 요새

[뉴욕여행 에세이] 뉴욕 플랫아이언 빌딩

Flatiron

시간이 날 때마다 매디슨 스퀘어 파크로 간다. 그곳에는 언제나 역광에 걸리는 건물이 하나 있다. 자전과 공전 주기가 일치해 절대 뒷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달처럼, 순광의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색감 좋은 사진은 허락하지 않는 난공불락의 요새. 수없이 다양한 구도와 화각으로 촬영을 시도했지만 좀처럼 만족스러운 사진을 얻지 못했다.

Rudy Burckhardt, 1948 | Flatiron in Summer |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매디슨 스퀘어 파크에서 유니언 스퀘어로 가는 길목. 대각선으로 남북을 가로지르는 브로드웨이와 뉴욕의 상징 5번가가 교차하는 삼각형 공간에 정확하게 들어맞는 삼각형 단면을 가진 건물이 그 주인공이다. 원래 풀러(Fuller)라는 이름이었으나 다리미(Flatiron)를 닮았다고 해서 플랫아이언 빌딩으로 더욱 널리 알려졌다. 1902년 건축 당시 뉴욕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으며, 삼각지에 건축해야 한다는 핸디캡을 예술적인 디자인으로 승화시켜 미국의 국립 역사 지표(National Historic Landmark)로 지정되어 그 보존가치를 인정받았다.


도심의 건물을 촬영하는 것이 대개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다. 높은 건물 전체를 담으려면 멀리서 찍고, 이쪽 방향에 해가 떠 역광에 걸리면 반대 방향에 가서 찍으면 된다. 그런데 플랫아이언은 각도가 바뀌는 순간 다른 모습이 되어버려 시도 자체가 불가능하다. 건물의 균형미를 담으려 멀리서 촬영을 하다 보면 전후좌우로 장애물들이 막고 있어 그조차 쉽지가 않다.

후면과 측면에서 바라본 플랫아이언.

그러니까, 삼각형 건물의 디자인이 가장 균형적으로 보이는 장소는 바로 건물 정면의 플랫아이언 플라자인데 공교롭게도 건물 뒤에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 동안 해가 떠 있다. 빌딩 왼편으로 떠오른 해는 정오에 잠시 머리 꼭대기에 머무르다가 빌딩 오른편으로 진다. 새파란 하늘도 뿌옇게 보이게 하는 역광이다. 이도 저도 안되면 화사한 조명이 한껏 건물을 꾸며주는 야경사진에 도전해 볼 텐데, 밤에 조명을 켜지 않는 플랫아이언은 어두운 밤에는 함께 잠들어버리는 철옹성 같다. 플랫아이언이 뉴욕에서 가장 촬영하기 어려운 건물로 남은 이유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노신사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조심스레 클로즈 업.

묵묵히 선  그분의 손 끝에서 플랫아이언 빌딩이 흔들림 없이 새겨져 나왔다. 사람들이 바삐 오가는 번화한 거리, 관광객들은 너무 쉽게 셔터를 누르고 "이 정도면 됐다!"며 자리를 뜨고 마는데,  느릿느릿 움직이는 그의 펜은 건물의 디테일을 정교하게 묘사하고 있었다. 나도 조금 더 노력해본다. 저 열정을 완전히 닮을 수는 없어도,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아서.

 그렇게 얻은 사진들이다.

그 후로도 수십 번 플랫아이언 앞에 섰고, 바라보고, 찍고, 아쉬워하며 돌아섰다. 아마 앞으로도 플랫아이언은 나에게 난공불락의 요새로 남아 있겠지만 그 덕에 삼각대를 들고 언제든 가야 할 곳이 생긴 셈이니 그걸로 좋지 않은가.


주소: 175 5th Ave, New York, NY 10010

지하철: N, R노선 23 St역 하차하여 바로.

주변 명소: 매디슨 스퀘어 파크와, 공원 안의 쉑쉑 버거 본점.

글/사진 [미식의 도시 뉴욕] [프렌즈 뉴욕] 여행작가 제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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