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가득 사랑하는 당신에게
엄마를 따라 외갓집 결혼식에 따라갔다.
사실 궁금한 것보다는 곁을 지키고 싶은 탓이지. 어느 순간부터 외가는 밀리고 밀려 미안하기만 한 장소였으니까.
더 이상 당신이 미안하다며 움츠려 들기를 바라지 않아서 기어이 양복을 차려입고 당신과 함께 식장을 향했다. 첫째 이모는 엄마를 빼다 닮았더라고. 한복을 입고서 거니시는 모습이 얼마 지나지 않을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오래 눈에 담아보았다. 아마 그때 한 눈 팔려 제대로 마음을 기울이지 못할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야.
아, 오랜만에 외가 쪽 사람들을 만났다. 마지막으로 본 게 10년 전인 것 같은데, 시간이 오래되면 희미해진 기억에 자신도 되레 조심스러워져 처음 본 사람보다 애매한 모습만 그려버리고 말았다. 암만 가까운 혈육이라 해도 서로의 온기가 닿아야 그 마음에 생기가 돌지. 가깝다는 이유로 조금 멀어져도 이해할 거라는 핑계를 목으로 연신 삼켜 보냈던 시간이었다.
결혼하는 누나는 10년 동안 남편될 사람이랑 동거를 했단다. 그 말은 즉은 집을 나와 10년 동안 살았다는 건데. 엄마와 아빠에게 홀로 설 준비를 너무 오랫동안 한 게 아닐까. 시원섭섭하다는 이모부의 말 어느 한 구석에 말 못 했지만 누구나 감히 알았던 미안함이 드러난 듯했다. 어쩌겠어, 자신이 눈에 담기지 않는 순간마저 감히 잘될 것이라 애써 다짐하며 웃어 보이는 게 부모님인걸, 가장 기쁜 날에, 가장 소중한 선물을 어디 보냈던 첫째 이모였다.
떠나는 길에 첫째 이모가 돈을 쥐여 보냈다. 10만 원인데 현금이 충분하다는 말로 성을 내며 엄마에게 쥐여주고 왔다. 나보다 더 값있게 쓸 당신이잖아요. 한창을 구시렁대며 엄마마음을 긁어놓다가 기차시간이 다되었다는 말로 발걸음을 돌려 미끄러졌다. 내가 들어가는 걸 보고 간다데. 난 먼저 떠난 모습 보는 게 마음이 편한데. 어느새 훌쩍 커버린 마음을 따라 걱정도 커졌나 보다.
혹시를 빌미 삼아 자주 돌아보고 많이 웃었다. 사랑한다는 말도 하고 말이지. 매 순간이 두려운 아이라 오늘도 솔직해질 수밖에 없었다.
가는 중에 종종 전화를 하라고 했다. 모르는 일이나 걱정 있다면 난 괜찮으니 언제든 전화하시라고.
퉁명스러운 척 했지만 내심 한 시간마다 당신의 전화를 기다렸고, 그다음이 빨리 오길 기대했던 나 자신이었는 걸.
방금에서야 이제 엄마가 집에 도착했다는 말을 들었다. 이제 눈을 붙이고 자도 괜찮겠지 않을까.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