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웨딩 스토리

프롤로그

by Henry Hong

영화감독 지망생에서 비디오 맨으로


축복된 경험


신부의 집 앞에 도착해 초인종을 눌렀다. 긴장된 마음으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린다.

뜻밖에, 여자 아이가 문 밖으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더니 문을 연다.

하얀 드레스를 차려입은..

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는 내 얼굴과 내 어깨 위의 카메라를 번갈아 쳐다본다.

그 잠깐 사이, 아이에게 나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 고민하는데

아이가 냅다 뒤쪽의 사람들에게 소리를 지른다.

“맘! 비디오 맨 이즈 히어!” MOM! VIDEO MAN IS HERE!

그리고 다시 나와 눈을 마주친다.

갑자기 알게 된 나의 정체성. 나는 비디오 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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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면 뉴욕시립대에서 영화 공부를 마치고 결혼식 비디오를 찍는다는 건,

너무도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영화감독이 될 사람이 남의 결혼식이나 찍고 있을 순 없다고 자기 최면을 걸고 있었다.

하지만 부족한 것뿐인 유학생에게 별 다른 선택권은 없었다. 영화과를 다니며 찍었던, 단편 영화 덕분에

카메라에 익숙해져 있었고, 민생고 해결을 위해 웨딩 스튜디오에 전화를 하게 됐다.


중앙대 사진학과를 나오신 사장님과 너무도 편한 면접을 마치고 갖게 된 알바 자리.

주말과 방학 때만 하려던 알바 계획은 그 후로 20여 년을 더하게 된다.


파나소닉 슈퍼 VHS 테이프로 시작했던 촬영은 디지털 테이프의 과도기를 거치게 되고, 100% 디지털화된 캐논 카메라로 끝을 맺었다.

자존심(?) 접고 시작한 일이었지만, 매주 다른 문화의 사람들을 만나, 관찰하며 느낄 수 있는

이야기의 힘이 그저 좋았다.

많은 이야기를 접하다 보면 시나리오 쓰는데 도움이 될 것이고, 뷰파인더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카메라 훈련도 된다는 동기 부여가 있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 결혼 시즌에는 금, 토, 일, 세 번을 남의 집으로 가, 카메라 렌즈를 들이 밀고 리코딩 버튼을

누르는 삶이 시작됐다.


어느 집이 건 집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다른 공기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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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 촬영의 특성상 뷰파인더에 얼굴을 숨긴 채, 분위기에 스며들어 있는 듯, 없는 듯 촬영을 한다.

그들의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며, 클로즈업으로 롱샷으로 화면에 담는 직업.


지난 20여 년의 촬영 중 기억에 남는 뉴욕 웨딩과 그들의 문화를 이야기하고 싶다.


사진은 글의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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