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라는 이름의 괴물

제4화 도대체 왜?

by Henry Hong


Bridezilla


미국에는 브라이드질라 라는 말이 있다. 신부를 뜻하는 Bride와 일본 영화 고질라 Godzilla의 합성어로 Bridezilla라고 쓴다. 뜻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나 요구를 일삼는 무서운 신부.


선을 넘는 히스테릭 반응.


결혼식 전, 스트레스받는 신부가 얼마나 많기에 그런 단어가 생겼고,

그들을 주인공으로 한 방송프로 까지 생겼는지 의아스럽지만, 사실 브라이드질라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어느 신부건 갑자기 헐크처럼 변할 수 있다.


평생을 꿈꿔 왔던 날. 모든 것에 민감해지고 주변 사람들에게 짜증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디에서 건 상상 이상의 일은 벌어진다.


그중에서 내가 겪은 최악의 신부. 브라이드질라를 소개해 보겠다.

Y-D&M-3593.jpg


롱 아일랜드 휴양지에서의 결혼이었다. 휴양지 가까이에는 대서양을 바라볼 수 있는 해변이 있고 스포츠 레저 시설과 스파가 갖춰져 있는 뉴욕의 중산층이 주로 이용하는 곳이었다.

촬영 스텝은 호텔의 스위트룸으로 안내되었다. 신부와 처음 대면했을 때, 신부의 부모는 신부 곁에 시종처럼 서 있었고 메이크업 담당자가 화장을 막 시작한 순간이었다. 간단히 인사를 하고 촬영을 시작했다.

신부의 유난스러움은 바로 알 수 있었다. 눈으로도 구별이 수월치 않은 파운데이션 칼라를 얼굴에 발라 보고는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고 일일이 비교를 하는 것이었다. 사실, 카메라의 작은 스크린을 보며 미묘한 칼라 차이를 구별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별 의미 없는.... 찍어 달라고 하는 사진은 많고,

찍어야 할 사진은 못 찍고.... 시간마저 별로 없어 사진사가 난처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별수 있나! 공주가 원하면 시종들은 따를 수밖에.. 한정된 샷 밖에 찍을 수 없었던 나도 조급한 마음이 되어갔다. 그러나 깡마른 체형에 하이톤으로 찡얼거리며 얘기하는 신부의 명령에 누구도 토를 다는 사람은 없었다. 헤어나 메이크업, 웨딩 플래너까지 입을 다물고 있는데, 비디오 찍는 동양인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나는 비슷비슷한 클로즈 업 샷만 찍을 수 있었다.

왠지 불편한 자리에 앉아 있는 기분으로 촬영을 하고 있는데 올 것이 온 모양으로 사고가 터졌다.


신부가 드레스를 입었는데 가슴 부위가 늘어져 맞지를 않았다. 아름답게 가슴선을 보여 줘야 할 드레스가 헐렁한 고무장갑의 모습이었다. 드레스가 신부에게 너무 큰 거였다. 사이즈 첵을 최소 두 번은 했을 테고 아마도 심한 다이어트 때문에 생긴 일 이거나 신부가 가슴 사이즈를 크게 잡아 그런 거 같은데, 그 누구도 신부와 눈 마주칠 생각을 못했다. 나 또한 멀찌감치 떨어져서 줌으로 신부의 얼굴을 살피는데 신부의 눈에서 정말이지 완두콩 만한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신부는 소리쳤다.


“다 나가! 이 방에서 다 나가라고!”


신부 부모는 물론이고 방에 있던 스텝들, 들러리들, 신부의 사촌들 까지도 방 밖으로 쫓겨나 문 앞에 쭈욱 서 있는 모양새가 됐다. 촬영을 열심히 해도 모자랄 판국에 멍하니 밖으로 쫓겨나 있었다.

이제는 할 일 끝나 돈 받고 집에 가야 할 헤어, 메이크 업 스탭도 벌서듯 고개 숙인 채 서 있었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라는 생각을 하며 20여분이 흐르고 나서야, 신부는 방문을 한 뼘 정도 열더니 문 틈으로 웨딩 플래너를 불렀다. 그리고 조금 후, 쫓겨났던 모두를 방으로 불렀다.


눈물 자국이 번진 신부의 얼굴은 화장을 다시 해야 했고.. 드레스 입었다 벗었다 하며 엉클어진 머리도 다시 다듬어야 했다.


사진을 찍을 때마다 신부에게 보여주며 아양을 떨던 사진사 때문인지 촬영 스텝에게는 별 말이 없었다. 후배 사진사가 처음으로 이뻐 보이는 순간이었다.

조마조마해 가며 신부의 준비 과정 촬영을 마치고 촬영팀은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어 먼저 예식 장소로 이동했다. 아직 많은 촬영이 남아있었지만, 그저 신부의 시야에서 멀어지는 게 기분 좋았다.


결혼식이 치러질 장소는 골프장이 발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 가제보(Gazebo)였다. 날씨는 신부의 궂은 얼굴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쾌청함 그 자체였다. 바람도 별로 없어 야외 결혼식으로는 완벽한 컨디션이었다.

예의 바른 신랑과 인사를 나누는데 신랑이 신부의 상태를 물어 왔다. 방안에 혼자 있던 신부가 울면서 전화를 걸어왔단다. 그런데 신랑은 늘 겪는 일인 듯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신부의 부모는 신부가 12살 때 이혼을 했다는 말도 신랑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신부 옆에서 공손히 시중을 들던 부모가 아주 예전부터 신부의 눈치를 봐와서 그랬나? 이혼의 죄책감?.. 신부는 무남독녀. 유아독존. 이런저런 신부의 심리 상태를 상상해봤다.

신부가 식장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촬영팀은 분주해졌다. 신랑이 신부의 드레스 입은 모습을 처음 보는 건 예식 시작 바로 전이고, 신부의 미흡했던 준비과정 촬영을 보충하기 위해 신부만 따로 야외 촬영을 할 계획이었다. 신부의 눈에 안 띄도록 신랑을 실내에 숨기고 웨딩 플래너가 신부를 데리고 나왔다.

화사한 날씨 때문인지 신부의 얼굴은 조금 밝아져 있었다.

가슴 부분이 펑퍼짐했던 신부의 드레스는 초대형 뽕이라도 넣었는지 비교적 양호해 보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촬영은 쉽지 않았다.


야외 결혼식이 거행될 장소를 둘러본 신부가 노발대발 화가 나 소리를 지르고 신부 대기실로 들어가 버린 거였다. 이번에도 대기실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었다.


식이 거행되며 이용하려 했던 양초의 크기가 마음에 안 들어서....

꽃 색깔이 진한 빨강이 아니고 연한 빨강이어서....

하객들이 앉을 의자의 커버 리본이 원하는 매듭이 아니어서....


예식 장소의 데코(Decoration)를 맡았던 업체는 비상이 걸렸고 2백여 개 의자에 걸려 있던 매듭은

모두 풀어야 했다.

이미 신랑, 신부의 이름이 새겨진 양초와 준비가 끝난 꽃들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모두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30 여분이 흘렀다.

그 후, 부모가 신부 대기실로 들어가고, 몇몇의 관계자가 불려 간 후에야 예식을 치를 수 있었다.

예정보다 1시간 이상 지체된 시간이었다.

아무리 날씨가 좋았어도 이유도 모른 채 모기떼의 제물이 되었던 하객들은 무슨 죄?


안 되는 날은 어쩔 도리가 없나 보다.


식이 끝나고 신부의 비위 맞춰가며..

곧 떨어질 해를 걱정하며..

살얼음판 걷듯이 야외 촬영을 끝마치고 연회장으로 들어갔다.

KN-C&R-3571.JPG
T-S&G-1276.jpg


이건 무슨 일? 멀쩡하던 케이크가 한쪽으로 조금 기울어져 있었다.

신부는 말없이 케이크를 노려 보다가는, 울면서 신부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긴 웨딩드레스를 끌며 뛰어가는 신부, 그 뒤를 뒤쫓는 신랑.

다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던 그 외의 모든 사람들.


촬영이고 뭐고 그냥 집에 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후의 일을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신부는 연회 참석 시간보다 신부 방에 있었던 시간이 더 많았다.

하객들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건 부모의 몫이었고, 신랑은 신부와 같이 방에 갇혀 있어야 했다.


신부는 사사건건 트집을 잡아 뭔가를 얻어 내려는 사람이 아니었다.

갑질은 갑질인데 원하는 게 없었던 갑질.

이렇게 까지 해서 자신의 존재감을 알려야 했을까?

어차피 오늘의 주인공은 신부 자신인데....

도대체 이해가 안 되고 무엇을 찍었는지도 모르겠는 결혼이었다.

결혼 비디오 찍으려면 행동 심리학 책이라도 몇 권 읽어야 하나?!


신랑의 그림자가 유난히 무거워 보였던 그날의 기억.

다행이었다 나는 집에 갈 수 있어서....


사진은 글의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