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본다는 것

제3화 촬영자의 한계

by Henry Hong
보이지 않는 걸 표현하고 싶었다



신부가 헤어와 메이크업 준비를 호텔에서 한다고 해, 맨해튼의 어느 호텔로 갔다. 로비에서 신부의 방 번호를 확인 후, 사진사와 같이 신부가 준비 중이라는 방으로 갔다.

방문을 두드리자 어느 여자가 문을 열어 준다. 자신을 헤어 디자이너라고 소개했다. 신부는 화장을 받느라 한참 바빴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호텔방을 둘러본다. 보통 크기의 스탠더드 방. 사진사와 나를 제외하고 신부, 메이크업과 헤어 디자이너 밖에 없었다. 크지 않은 방이 작게 느껴지지 않았다. 가족이 없는 것이 이상했지만, 더 신경 쓰이는 것은 굳게 닫혀있는 창의 커튼이었다. 화장을 위해서라도 방을 좀 더 밝게 하는 게 편할 텐데 호텔의 노란색 스탠드 조명 말고는 별다른 조명이 없었다. 카메라 조명을 꺼내 카메라에 부착하며 기회를 봐 커튼을 열어젖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방안의 모든 공기가 바닥 카펫에 들어붙은 듯한 분위기. 음악 소리 조차 없는 엄숙함. 나와 사진사는 신부와 가장 먼 곳에 자리를 잡고 귓속말을 나눴다. 신부가 자연광을 싫어할 수도 있다. 얼굴은 이쁘지만 친구가 없는 외톨이로 자랐을 수도 있고 성질 더러울 수 있으니 조심하자, 정도의 얘기였다. 촬영은 조심조심 이뤄졌다. 카메라를 보세요! 웃어주세요! 같은 말도 속삭이듯 했다.

이게 세상에 결혼식 촬영인지 장례식 촬영인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때 적막을 깨고 울리는 신경질적인 호텔방의 전화벨 소리. 화장을 받고 있던 신부는 전화를 받을 수 없었고 신부의 수신호에 의해 전화기에서 가장 가까이 있던 사진사가 얼떨결에 전화를 받았다. 호텔 로비에서 걸려 온 전화였고 신부의 부모가 도착했다는 연락이었다. 방 번호를 알려주고, 올라오면 된다는 말을 사진사는 전했다.

조금 후 노크 소리가 들리고 문 앞에 있던 내가 문을 열었다.

'앗 이건 무슨 경우일까?' 덩치가 산 만한 흑인이 문 앞에 버티고 서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문 뒤로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사이 고맙다고 소리치는 내 등 뒤의 신부.

덩치가 옆으로 물러나고 서야 나는 아담한 노 부부를 볼 수 있었다. 두 손으로 남편의 한 팔을 잡고 있는 부인 그리고 맹인용 지팡이를 들고 있는 남자. 나는 그때까지도 멍하니 문 앞을 가로막고 있었고 덩치와 눈이 마주친 다음에야 급히 문 옆으로 비켜섰다. 갑작스러운 일에 당황했는데 신부의 부모님은 두 분 모두가 맹인이셨다. 얼굴에 큰 웃음을 띠며 신부의 목소리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노부부. 나는 그제야 카메라의 리코딩 버튼을 누른다. 험상궂었던 덩치는 아기 같은 웃음을 흘리며 신부에게 손을 흔들고 떠나갔다.


신부의 목소리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화장이 거의 끝났는지 신부가 일어나 부모님을 포옹하고, 어머니에게 웨딩드레스를 보여 주겠다며 드레스 쪽으로 이끌었다. 조심스럽게 걸어, 드레스 앞으로 간 신부의 어머니가 세심히 드레스를 매만졌다. 가슴 쪽의 장식과, 등 뒤의 레이스를 일일이 느껴가며, 만지는 손을 나는 클로즈업 했다.

드레스를 손으로 느끼는 어머니는 말없이 미소만 지으며 신부가 서 있을 거라고 짐작되는 곳으로 고개를 조금 돌렸을 뿐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진사의 셔터가 뒤늦게 고요함을 깨트렸다.


신부가 드레스를 입고 뒷 마무리를 해야 할 때는 놀랍게도 신부의 어머니가 능숙하게 신부를 도와주기까지 했다. 아는 사람은 알 테지만 드레스 끈 매는 것은 눈 뜨고도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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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도 신부의 모습을 볼 수 없었던 신부의 부모, 그 모습에 익숙해 보였던 신부.



마음으로 보는 것이 그들의 일상이었을 모습. 탄생, 학예회, 프롬 파티, 여러 졸업식....

항상 마음으로만 대면했을 그들의 추억에 경외심이 생겼다.


결혼식과 파티 장소는 같은 곳에서 거행됐다. 짐작컨대 이동하는데 제약이 따르는 신부의 부모 때문이지 않았을까?

신부의 준비 과정 촬영을 마치고 식장에 도착해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자주 가는 글랜 아일랜드라는 연회장이었는데 식장을 이리 크게 꾸며놓은 건 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뉴욕 웨딩은 신랑, 신부가 최소 6개월 전에 선별된 하객들에게 초대장을 보내고 미리 참석 의사를 알려 온 사람들만 결혼 당일에 참석할 수 있는 특성이 있다.

그런 절차상의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선택된 손님들만 새 신랑, 신부와 축하 자리를 같이 할 수 있고, 결혼의 하객수는 보통 120명에서 150명 정도가 평균이다. 그에 비해 그날의 웨딩 하객수는 놀랄 정도로 많았다.

얼핏 봐도 40개가 넘어 보이는 테이블. 한 테이블에는 보통 8명에서 10명이 앉게 돼있다.

신부는 외톨이가 아니었다.

텅 빈 호텔방의 모습은, 너무 많은 친구들이 신부의 준비 과정을 돕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고민하던 신부가 아예 아무도 오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누구는 부르고 누구는 부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 신부의 마음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조용히 진행된 예식이 끝나고 파티가 시작되어서도 차분한 분위기는 바뀌지 않았다. 신부는 파티를 즐기는 방법이 달랐다. 그녀가 파티를 즐기는 방법은 모든 하객을 찾아다니며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묻고 고마움을 전하는 것이었다. 크게 소리 내어 웃거나 경박하지 않고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해주는 눈 맞춤.

그녀의 행동이 그녀를 더욱 아름다운 신부로, 우아한 신부로 만들어줬다.

하객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인사를 하던 신부에 반해, 자리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던 신부의 부모. 그들에게는 모든 하객들이 자리로 찾아와 인사를 건네주었다. 한 사람 한 사람 노부부의 손을 만지며 인사를 나누고 포옹을 했다.

노부부와 인사를 나누는 줄이 따로 생길 정도였고 춤을 춰야 할 스테이지는 한산했다.

말이 필요 없는 감동적인 파티 모습이었다. 신부는 하객들로부터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었던 자리를 그동안 고마웠던 사람들을 위한 자리로 만든 것이었다. 그에 보답하듯 진심 어린 축복을 보내는 하객들.

파티의 모든 이가 멋있어 보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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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과 사진 찍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스태프들과도 기념사진을 찍기 원했던 신부.

신부는 자신의 가장 행복한 날에 같이했던 이들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고 했다.

나도 기쁜 마음으로 신랑, 신부와 사진을 찍었고 그들의 마음에 남을 사진에 감사했다.

밤늦게 촬영이 끝나고 집으로 향하며 '오늘 나는 마음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을 카메라로 잘 담은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촬영자가 한없이 작아지는 밤이었다.


사진은 글의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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