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그래도 한국 사람
뉴욕 시내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롱 아일랜드의 서폭 카운티가 신부의 집이었다. 평소처럼 신부의 집 앞에서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심호흡 후, 집의 문을 두드린다. 신부와의 만남, 언제나 첫인상이 중요하기에 주의를 기울이고 긴장되는 순간이다. 인륜지대사의 기록을 책임지고 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긴장감이다.
문을 두드리고 조금 있자 동양 여자가 문을 열어준다. 그리고 버터 냄새 풍기는 발음으로 “안뇽하쎄요?” 얼떨결에 나도 안녕하세요? 를 따라 한다. 신부의 친구인가? 저는 헨리고요, 비디오 담당입니다. 여자가 크게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본인이 아는 한국말은 안녕하세요 뿐이라는 대답. 그리고 자신을 제시카라고 소개했다.
오늘 신부 이름이 제시카였는데…. 제시카 와이즈먼? 아유 더 브라이드?
예스. 아 엠 더 브라이드. 신부를 알아보지 못한 나는 바로 사과하고, 성이 동양인 같지 않았다는 말을 굳이 한다. 신부는 괜찮다며 좀 전보다 큰 손사래를 치며 자기는 어릴 적에 입양되었다고 한다. 자연스러운 표현이 왠지 고맙게 느껴졌다.
잠깐의 대화가 오가고 집 안으로 들어가니 영화에서 늘 보던 백인 중산층의 모습이 펼쳐져 있었다. 커다란 창문, 베이지 색 소파, 밝은 색 위주의 가구들, 플라스틱 블라인드가 아닌 이중의 커튼 그리고 인상 좋게 생긴 백인 중년 부부. 신부의 부모님이었다. 왼손을 아내의 어깨에 감싼 채, 오른손으로 악수를 청하는 신부의 아버지. 이분도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청했다. 그 옆 미소를 곱게 지으며 부드럽게 손을 내미는 어머니. 조금은 어수선해 보이며 넥타이와 셔츠를 들고 이 방에서 저 방으로 급히 뛰어가는 신부의 두 오빠. 그래도 잊지 않고 왓츠 업! 이라며 인사를 건넨다. 한눈에 봐도 두 남자는 호남형의 잘 생긴 얼굴이었다.
왜 일까? 신부의 얼굴을 바라보며 든 안도감. 마음씨 좋아 보이는 입양인 가족 때문에?
갑자기 용솟음치는 동포애.
좀 더 이쁘게 찍어주고 싶은 마음이 앞서고 평소보다 훨씬 많이 움직이며 다양한 샷을 시도해 본다. 하지만 이쁘게 찍고 싶은 건 마음뿐이었다. 두 시간이 넘게 걸린 화장은 비포, 에프터가 별 차이 없었다. 아무래도 백인 손님에 익숙한 백인 메이크 업 아티스트가 화장을 입체적으로 못 한 탓 같았다.
사실 태어나기를 입체적으로 태어 난 오뚝한 코에 커다란 눈, 서양인들을 주로 찍다가 오랜만에 동양인을 촬영하려니 나도 생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카메라 방향을 되도록이면 정면에서 찍고, 옆모습의 눈이나 코는 익스트림 클로즈 업 샷으로 신부의 준비 과정 촬영을 마쳤다.
식장으로 이동해 처음 본 신랑은 머리를 올백으로 넘긴 모습이 금융업에 종사하는 냉혈안 같아 보였다. 그새 정든 한국 처자가 못돼 먹어 보이는 사내에게 시집가는 거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가톨릭으로 진행된 결혼식이 끝나고 리셉션 파티 장소로 이동했다. 연회 장소에 도착해서는 그곳 매니저와 파티 순서에 대해 의논을 했다.
간단한 순서 정도는 숙지하고 있어야 실수 없이 촬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뒤늦게 도착한 신랑과 신부가 음악을 맡은 밴드 멤버들과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서로 아는 사이인가 보다 하고 지나가려는데, 이게 웬걸 신랑은 그 음악 밴드에서 기타를 맡고 있는 기타리스트였다. 누구나 아는 유명 밴드는 아니지만 앨범 발표도 있었던 밴드이고 뉴욕의 재즈바에서는 제법 알려진 밴드라고 했다. 신랑의 결혼을 맞아 신랑의 밴드가 음악을 맡아 주기로 했다는 얘기를 신부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신랑은 파티 중에 노래라도 부르려는지 기타를 들고 마이크 테스트를 진행했다. 바로 전까지 냉혈안으로 보였던 모습은 간데없고 턱시도에 전자 기타가 잘 어울리는 아티스트의 모습을 나는 물끄러미 쳐다봤다.
관상을 이렇게 못 봐요! 하는 나의 자괴감은 어쩌라고!
이후, 시작된 파티는 조용하면서도 개성 있게 진행됐다. 과하지 않게 시냇물 흐르듯 유려한 진행이었다. 귀에 익은 노래가 재즈풍으로 불려지고, 신나는 음악이 나와도 과하지 않게 절제된 춤을 추는 젊은이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며 옛 생각을 하는듯한 윗 세대들의 시선이 여유로워 보였다.
과하지 않은 파티 분위기 덕분에 촬영은 순조로웠다.
차분하게 순서대로 음식이 나오고 파티의 끝 순서로 다다르고 있을 때였다.
예정대로 신부와 신부 아버지의 댄스 순서였고 신랑이 기타를 들고 마이크 앞에 섰다. 재즈풍으로 변형을 시켰지만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왓 어 원더풀 월드'(What a Wonderful World)의 전주가 시작되었다. 무대 한가운데의 신부와 그녀의 아버지가 수줍은 듯 마주 보았다. 하객들의 큰 박수 소리와 함께 시작된 그들의 어설픈 스텝. 그게 우스워 보여 스텝을 클로즈 업 했다가 카메라를 서서히 올려 신부 얼굴 쪽으로 가져갔다. 하지만 웃음도 잠시. 뷰 파인더에 비친 신부의 눈은 그렁그렁 매친 눈물로 가득 차 있었다. 금방이라도 굴어 떨어질 눈물방울.
신부의 입은 안간힘을 쓰는 듯 꽉 닫혀 있었고, 눈물을 참으려고 억지웃음을 지으려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윽한 눈으로 내려다보던 백인 아버지가 신부 얼굴을 다 덮을 정도의 큰 손으로 신부의 눈물을 훔쳐 주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서도 흐르는 눈물은 그도 어쩔 수 없었다. 슬쩍 하객들을 보니 많은 이들이 두 부녀를 지켜보며 눈물을 닦아 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신부의 어머니 얼굴은 많은걸 얘기하는 듯 보였다. 연신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 내면서도 입가에는 웃음의 주름이 깊게 파였다. 춤을 추던 부녀는 이제 그냥 서로를 안고 서 있을 뿐이었다. 이때 백인 오빠 중의 한 명이 어머니의 손을 잡고 무대로 나갔다. 못 이기는 척 끌려 나간 어머니까지 네 사람이 된 무대는 서로를 포옹한 채 눈물 흘리며, 웃으며.. 신랑의 노래에 맞춰 몸을 맡겼다.
덩치 큰 세 사람에게 둘러싸인 작은 신부. 그 세 사람이 신부를 끝없이 보호해주는 느낌이었다.
이제는 앉아 있는 하객은 아무도 없었고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이 아름다운 가족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 주었다.
뷰 파인더로 바라보는 신부의 눈은 더 이상 작아 보이지 않았고 빨갛게 달아 오른 콧방울은 이뻐만 보였다.
단, 하루의 촬영으로 신부의 지난 세월을 가늠할 수는 없겠지만 그들의 언행을 카메라에 담으며 느낄 수 있는 단어는 사랑이었다.
오늘 하루 종일 촬영을 하며 한국 아기였을 이 신부가 백인 가정에서 어떤 대우를 받으며 살았을까?라는 호기심과 우려가 있었다.
그 우려는 당연히도 신부에게서 들은 안녕하세요?라는 반가운 첫마디 때문이었다. 그래도 한국 사람이니까.
나도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눈물 때문에 습기가 찬 뷰 파인더에 얼굴을 숨기며 다행이다.. 다행..이라고 읊조렸다. 신부가 사랑받고 자랄 수 있어서.. 카메라로 내 얼굴을 숨길 수 있어서..
그런데 건너편 사진사를 보니 코까지 빨개져서 눈물을 흘리고 있네.. 이런 아마추어 같으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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