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요, 언어마저 틀려요
결혼을 해서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낸 커플이라 해도 그 언젠가 첫 만남은 있었을 것이다. 첫 만남의 설렘도 잠시, 서로를 알아 가는 시간이 흐르고... 신뢰의 바탕 위에, 결혼이라는 인생 최대의 결정을 하지 않았을까?
뉴욕에서는 과거를 전혀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Where are you from?" 이 인사말이 되었을까?
뉴욕은 워낙 타국 출신이나 타주 출신이 많기 때문에 과거를 모르는 사람들 천지다.
서로의 과거를 모르다 보니 신뢰의 탑을 모래 위에 쌓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나의 경우도 혼자 유학을 왔으니 나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세상천지에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니? 한국은 지구 반대편에 자리하고 있으니 누구를 통해 알아보기도 힘든 상황이다.
어쩌면 사기를 치거나, 당하기 딱 좋은 상황.
뉴욕에 결혼사기 많습니다.
결혼 촬영 스케줄을 이메일로 받았다. 한눈에 봐도 특이해 보이는 일정이었다. 신부의 준비. 예식, 연회가 모두 한 장소 교회로 기입되어 있었다.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겨울에 하는 소규모 웨딩이라 그렇겠지 하는 마음으로 당일 촬영에 나섰다. 오후 4시에 시작해 9시에 끝나는 5시간짜리 촬영이었다.
장소는 범죄율이 높기로 소문난 뉴저지의 뉴왁이었다. 슬럼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결혼식이 열리는 곳이니 별일이야.. 하는 마음은 하이웨이를 벗어나자마자 바뀌었다.
길가에는 버려진 타이어들이 널려 있었고 공사가 중단된 것으로 보이는 낮은 건물들이 즐비했다. 블록의 코너 마나 몰려 있는 부랑자들은 내 차가 신호에 멈추면 다가와 필요한 게 없냐고 물었다. 동양인 보기가 힘든 곳이다 보니 당연히 마약을 사러 온 사람으로 생각했던 거 같다.
유쾌하지 못한 마음으로 약속 장소에 도착한 곳은 팻말 없는 교회 앞이었다. 예전에 하얀색이었을 누런 십자가가 교회라는 걸 말해 주고 있었다. 교회 앞 철문은 거대한 쇠사슬과 자물통으로 잠겨 있었다. 주차장도 없었고 울타리가 쳐진 공터만이 교회 옆에 버티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사진사를 만났으니 장소는 제대로 찾은 듯했다. 보기 힘든 동양인이 동네에 나타나서 인지 지나가는 사람들은 힐끗힐끗 나와 사진사를 쳐다봤다. 몇 번이고 오늘 결혼을 할 신랑과 신부에게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신변에 위협을 느낀 나와 사진사는 차 안에서 조금 기다려 보기로 했다. 신변도 신변이지만 비싼 장비가 걱정이 되었다. 무척 길게 느껴진 10여분의 시간이 흐르고 신부에게서 전화가 왔다. 알아듣기 힘든 스패니쉬 억양이었다. 겨우 알아들은 말은 지금 가고 있다는 얘기였다. 전화를 끊고 조금 있으니 어느 나이 든 흑인이 철문의 자물쇠를 열었다.
다시 한번 장소를 확인하고자 무거운 발걸음으로 차에서 내려, 그에게 오늘 결혼식이 열리는 게 맞냐고 물으니 그렇단다.
나와 사진사는 장비를 챙겨 교회 안으로 들어가 촬영 준비를 했다. 시간이 좀 더 흐른 후에, 하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한 둘씩 들어와 자리를 차지했다. 그런데 교회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하객뿐만이 아니었다. 동네의 부랑자와 홈리스로 보이는 사람들도 교회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이 처음에는 뒷 좌석에 조용히 앉아 있더니 교회가 하객들로 조금 채워지자 그들은 하객들에게 구걸을 시작했다. 어떻게 이런 상황이 벌어질 수 있지를 생각하다가 나의 걱정은 내 차와 장비에 미쳤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신랑, 신부를 기다리며 바깥을 기웃거리는데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해 짧은 겨울을 원망하며 시작하지도 않은 촬영이 빨리 끝나기를 바랐다.
정해진 시각보다 1 시간여 늦게 신랑, 신부가 몇 사람과 나타났다. 그리고 바로 결혼식 시작.
결혼식 주례자는 철문을 열어 주던 분이었다. 그분이 그 교회의 목사님이었다는 건 그때서야 알았다.
하객은 20여 명이 전부였고 좀 전까지 구걸을 하던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어 촬영이 쉽지 않았다. 카메라를 하객 쪽으로 돌리면 거지분들이 카메라에 잡히게 되고, 내 머릿속은 바깥에 세워 둔 자동차가 걱정되고.. 괜한 걱정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우범지역에 차를 잘못 세웠다가는 타이어나 실내 용품을 바로 도둑맞는다. 도대체 촬영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무척 길게 느껴진 30분의 예식이 끝나고서야 신랑, 신부와 제대로 된 통성명을 할 수 있었다.
다소 민망한 상황에서 신랑에게 연회는 어디서 하냐고 물으니 교회의 지하에서 할 거란다. 촬영 장비를 챙겨 지하로 내려가 보니 기껏해야 소규모 모임을 할 정도의 공간이 있었다. 페인트가 벗겨진 곳곳의 벽을 가리려는 듯, 어느 틈엔가 친구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풍선 장식을 해놓았고 몇 사람은 음식을 나르고 있었다. 친지들이 가져온 음식들에는 피자 박스도 있었고, 할아버지 얼굴이 그려진 업체의 치킨 박스도 보였다. 대충 연회 준비가
끝나고 자리에 앉은 사람들을 보니 20명도 안되었다.
생각보다 많은 거지들이 결혼식에 참석했었나 보다 라는 생각을 했다.
그때까지도 나는 신부와 나눈 대화가 별게 없었다. 신부가 영어에 서툴렀고 사진이나 비디오에 관심도 없어서였다. 그리고 모든 행사 진행은 신랑이 알아서 해 나갔다. 나는 어떡해서든 촬영분을 만들어야 했기에 억지로 뭐든 시킬 수밖에 없었다. 별 관심 없어 보이는 신랑, 신부를 붙잡고 억지로 포즈 취하게 하고 하객들과
사진 찍게 하며 어렵게 촬영을 이어 갔다.
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은, 남미 에콰도르에서 온 신부의 가족은 삼촌 부부가 전부였고 몇 안 되는 하객들은 모두 일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이었다.
그렇다면 나이 든 존 레넌 같이 생긴 신랑 쪽은? 희한하게도 신랑의 가족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신랑, 신부, 하객들이 살고 있는 브루클린에서 먼 이곳 뉴저지 뉴왁에서 결혼식을 하는 이유는 뭘까?
물론 다니던 교회나 목사님도 아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결혼 그 자체였다.
신랑, 신부, 결혼식이 이상하든 말든 나는 촬영을 해야 했고 최소한의 편집 거리라도 만들어야 하는데 촬영 분량이 너무 없어 고민이 되었다. 뭔가라도 해야 했기에 하객들 한 명 한 명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가 않았다. 축하 인사말을 해달라고 하니 할 말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결국 나는 한 마디씩만 해달라고 애걸하는 모습이 되었고 불쌍해 보였는지, 몇 사람이 인터뷰에 한 마디씩을 보탰다. 인터뷰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신랑 신부가 슈퍼마켓에서 일하며 알게 됐고 놀랍게도 이제 만난 지, 두 달째라는 것이었다.
신부의 가족 모두는 에콰도르에 살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도 신랑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다. 뭔가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있을 것 같기도 했지만 더 이상 물을 수는 없었다. 솔직히 촬영 빨리 끝내고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심정이었다. 억지로 사람들 붙잡고 인터뷰를 했지만 내용이 만족스럽지 않아서 신랑 신부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다. 미래 계획 같은 거라도 얘기하면 편집 시 유용하게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랑, 신부의 인터뷰를 끝으로, 대충 촬영 마무리하고 Good bye 할 생각이었다.
영어가 서툰 신부가 인터뷰가 싫다고 해 잠깐의 실랑이 아닌 실랑이가 있다가 합의(?)를 본 것은 스패니쉬로
얘기해도 되고 오늘 결혼식에 못 온 신부의 부모에게 몇 마디 하는 것으로 정했다.
흥미로웠던 점은 나와 신부가 영어 소통에 어려움이 있었는데 신랑도 신부와 소통이 어려웠다는 거다. 내가 영어로 말한 걸 스패니쉬로 통역을 해줄 줄 알았던 신랑이 영어로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건 통역이 아니잖아요!
이상한 결혼. 맞다.
아무튼 어렵게 신랑 신부를 한쪽 구석으로 불러다 앉히고 나는 맞은편에 자리를 했다. 그냥 편하게 얘기 하라며 카메라의 리코딩 버튼을 눌렀다. 신랑은 본인에게 얘기하는 덕담 투로, 앞으로 잘 살자고 아이는 셋 정도 낳겠다는 말을 내 머리 뒤, 액자의 어느 부분을 불안하게 보며 얘기했다. 나는 그저 길지 않은 인터뷰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신부의 차례
신부는 카메라를 보며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넉넉하게 편하게 미디엄숏으로 신랑을 찍던 것과 달리
신부의 얼굴로 클로즈 업 해 들어갔다.
신부가 카메라를 보며 마미! 빠삐!라고 하는 동시에 신부의 울음보가 터지며 바로 오열이 돼버렸다.
카메라 뷰 파인더에 눈을 바짝 붙이고 있던 나는 뷰 파인더가 습기로 가득 차 오르는 걸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신부의 울음에는 묘한 전염성이 있었다.
교회로 들어설 때부터 위태 위태했던 신부가 드디어 터져 버린 것이었다.
신부는 어떤 말 못 할 사연을 오열로 대신하는 듯했다.
뷰 파인더를 바라보던 눈이 젖어가며 이미 초점을 맞출 수 없게 되었고, 신랑을 바라보다 멀뚱멀뚱
신부를 쳐다보던 신랑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왼손으로 신부를 감싸라는 시늉을 했다. 신랑이 신부의 어깨를 감쌌다. 하지만 신부의 울음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어깨까지 들썩이며 울던 신부가 벌떡 일어나 화장실 쪽으로 뛰어갔다. 웨딩드레스가 의자에 걸려 신부는 넘어질 뻔했다. 이제 신랑과 내가 마주 보고 앉아 있는 상황이 돼 버렸다.
갑자기 일어난 상황이 우리와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앉아 있는 두 남자.
이 날 촬영은 이렇게 종료되었다.
엄마! 아빠! 를 부르고 끝난 내 경험상 가장 짧았던 인터뷰, 하지만 아직까지도 가장 많은 이야기를 상상케 한
인터뷰였다.
말도 안 통하는 이 두 사람이 진짜 사랑하는 사이였다면? 이상하게 보였던 모든 것이 이상한 게 아니었다면?
사진은 글의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