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의 참을 수 없는 부담감

제6화 증명해야 하는 삶

by Henry Hong


신랑은 인도계와 중국계 사이에서 태어났고, 신부는 아이리쉬계의 백인이었다.
나를 증명해야 한다.


이틀에 걸쳐 촬영이 이뤄진 제법 큰 규모의 결혼이었고, 결혼식 전 날에는 50여 명의 가족 친지가 모여 디너 모임을 따로 갖었다. 디너 모임이라는 것이 유난히 많은 신랑의 가족들 중 이모, 고모, 삼촌들이 마이크를 돌려 가며 신랑의 어릴 적 이야기를 하는 거였다. 어떤 이모 말이 신랑은 6살부터 경제관념이 있었다고 했다.

이에 질세라 신부 측 가족 중 몇 사람이 마이크를 받아 들기도 했지만 남미의 트리니다드라는 작은 섬나라에서 태어나 하버드를 졸업하고 의사가 된 신랑 쪽과 대적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신랑의 어릴 적 에피소드를 얘기하던 가족들은 점점 신랑 찬양으로 흐르며 연설 시간은 길어져만 갔다. 비디오카메라를 잡고 있던 손에서 경련이 날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진부함 속에서 누가 중요인물인지 몰라 촬영을 컷 하지 못하며 이어갔다.

만에 하나 중요 인물의 이야기를 빼먹기라도 한다면 나중에 들을 컴플레인은 불 보듯 뻔하다.


디너 모임의 모든 사람이 마이크를 잡는 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고, 예정된 시간이 훨씬 지난 후에야 촬영을 끝마칠 수 있었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오는 촬영이었다.


늦은 밤 시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일 있을 메인이벤트의 촬영이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다음날, 결혼식은 롱아일랜드 햄튼의 컨츄리 클럽에서 거행됐다. 그림 같이 아름다운 바닷가 전경에 돛을 단 요트가 야외 결혼식의 배경이 되는 곳이었다. 날씨도 축복받은 양, 습도가 낮아 공기가 바삭하게 느껴질 정도의 맑은 날씨였다.


N-C&E-0436.jpg


야외 결혼식 장소가 서서히 하객들로 채워지는 걸 바라보는데 어제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제의 가족 친지들을 보면서, 당연히 인도계, 중국계 하객들이 많을 걸로 예상했는데 200여 명이 넘는 하객들 중 대부분은 백인이었다. 심지어 어제 봤던 신랑의 친지 중 안 보이는 사람도 꽤 있었다. 백인 하객들은 세련된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 남자들은 유행 중인 밝은 색깔의 타잇 한 정장 차림이거나 햄튼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는 카키색 또는 엷은 푸른색 계열의 캐주얼 정장이었다. 쾌 창한 하늘과 잘 어울리는 옷차림들이었다. 몇몇 남자들은 잡지 광고면을 찢고 나온 듯 멋있어 보이기도 했다. 여자들은 대부분 챙 넓은 모자로 멋을 냈고, 밝고 다채로운 원색의 원피스가 그들의 스킨톤과 잘 어울렸다. 그들이 착용하고 있는 액세서리가 태양에 반사되며 화려하게 반짝였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데도 싸한 느낌은 뭘까?


이유는 자주 사라지는 신랑이었다. 가족사진을 찍다가도 사라지고, 하객들과 인사 나누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찍고 있다가도 없어지고.. 나는 참 이상한 방법으로 촬영자를 괴롭히네 라는 생각까지 했다.

멋져 보이던 바닷가 웨딩 장소가 뙤약볕으로 바뀌며 예식 시간이 가까워졌다. 신부는 더운 날씨 때문에 화장이 뭉개질까 봐 에어컨이 나오는 방에 꼼짝없이 머물렀고, 안보이던 신랑을 겨우 찾아 결혼서약 녹음을 위한 무선 마이크를 신랑의 가슴에 채웠다. 그리고 나는 신랑과 거리를 두고 밖으로 나와 마이크 테스트를 했다.

헤드폰을 끼고 신랑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신랑은 파티에서 할 인사말 연습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신랑이 사라지던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나? 인사말을 맹연습? 신랑이나 신부면 누구나 하는 인사말인데 얼마나 대단한 스피치를 하려고 이리 열심히 연습을 할까? 조금은 의아했다.


그때 신랑이 다급하게 뛰어가는 소리가 헤드폰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원인을 알 수 없는 괴성.. 갑자기 토악질 같은 소리가 들렸다. 누군지는 모르겠고 어떤 남자가 신랑 근처에서 ‘아 유 오케이?’ ‘아 유 오케이?’를 연발했다. 상황을 전혀 알 수 없어 나는 신랑이 있던 실내로 뛰어 들어갔다. 그러나 신랑이 시야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돌아 서 버렸다. 신랑이 고개 숙여 구토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뒤이어 들리는 신랑 형의 목소리. 오늘 도대체 몇 번을 토하는 거야! 나는 거기까지 듣고 헤드폰을 벗어 버렸다.


곧이어 시작된 예식은 더위에 지치기 전인 20여분 만에 끝났다.

그 후 1시간 정도 야외 칵테일파티가 진행됐다. 보통 칵테일파티 중간부터는 신랑, 신부가 칵테일파티에 동참해 하객들에게 인사를 전하는데, 오늘은 그런 행사 없이 신랑은 연설 연습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 신랑의 모습을 신부는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신랑이 이제는 아주 실전 연습을 하듯 파티가 열릴 스테이지에서 무선 마이크를 잡고 연습을 했다. 그는 무대 위의 배우처럼 스텝과 시선까지 리허설을 하는 것이었다. 이쯤 되니 나까지도 연설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감이 들었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오디오 사고 방지를 위해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평소에는 잘 사용치 않던 오디오 리코더를 따로 설치까지 했다.

보통은 신랑의 베스트 맨과 신부의 들러리 대표가 건배사 겸 간단한 스피치를 하고 신랑과 신부는 몇 마디 인사 정도만 하는 것이 관례인데 이 신랑은 도대체 어떤 연설을 하려는 걸까? 나의 호기심은 커져만 갔다.


드디어 파티가 시작돼 신랑 신부의 첫 댄스가 끝나고 스테이지에 나와 있던 모든 하객들이 제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리고 바로 시작된 신랑의 스피치.

따로 건배사도 없었던 의외의 시작이었다. 신랑의 연설 중에는 모두가 동작 그만이라는 특별 요청이 있었다. 그리고 진행된 40여 분간의 연설.

음식 오더를 받아야 하는 웨이터들도 한쪽으로 물러나 물끄러미 신랑을 쳐다보고 있어야 했다. 처음에는 간혹 섞여 들어 간 유머에 호응해주던 하객들의 웃음소리가 뒤로 갈수록 작아져 갔다.

40여분이 넘는 신랑의 스피치는 세계 기록이 아니었을까?라는 상상을 하며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간단히 연설을 요약하자면 신랑의 자서전 같은 것이었다. 고국 트리니다드에서 인도계, 중국계로 자란 이야기. 부모의 이혼, 고등학교 크로켓 챔피언십 우승을 했던 기억, 영국 유학 경험, 하버드의 학창 시절.. 그리고 간단히 끝난 신부와의 만남 얘기.

신랑은 자신의 고난 극복 사례를 하객들에게 나열했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긴 연설 속에서 인간미는 찾아볼 수 없었다. 신랑의 스피치가 길어질수록 안타까움만 커져갔다. 지루하고 답답한 표정의 하객들 모습이 긴장된 신랑의 눈에는 안 보이는 듯했다.


신랑은 집안의 자랑이자, 신랑의 모든 경험이 집안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챔피언십도 처음, 대학도 처음, 의사도 처음, 애 없이 결혼한 사람도 처음. 모든 가족 친지에게 본보기가 되어야 했던 사람의 부담감. 신랑의 부담감이 내 어깨까지 전해지는 것 같았다.


KN-T&R-3070.JPG


사실 그는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이민자의 태생적 한계와 같이 한다.

고급 영어를 쓰며 무던히 고치려고 애썼지만 못 고친 억양처럼....


태어난 트리니다드에서도, 앞으로 살 미국이라는 곳에서도.. 신랑은 어떤 성취를 이룰수록 콤플렉스에 시달린 건 아닐까?

콤플렉스를 이기는 방법이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한건 아닐까? 만인 앞에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삶.


여러 번 구토를 할 정도로 긴장되었다면, 본인도 속 편히 사는 것 같지 않았고 안쓰러운 인간을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앞으로 평생을 같이 할 신부는 어떤 마음으로 신랑을 바라볼까?


신랑 본인도 감당하기 힘들었을 부담감. 미래에는 신부와 그 부담감을 나누어가며 살기를 바란다.


꼼짝없이 신랑의 인사말을 지켜보다가, 뒤늦게 식사 서비스를 하게 된 웨이터들과 파티 매니저는 저마다

한 마디씩 신랑 욕을 했다. 음식 주문과 조리가 한 시간 가량 늦어진 키친은 난장판 그 자체였다.


사진은 글의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