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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Hong May 13. 2022

정글 속 오아시스

어쩌다 맥주집

금요일 오후, 볼 일을 끝내고 아내와 집으로 오려던 계획을 바꿨다.

날씨가 좋은 김에 브루클린의 파크 슬로프 일대를 걷기로 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좋은 날씨와 육체의 피로도는 연관성이 없는지, 슬슬 피곤해지고 어딘가에 주저앉고 싶어졌다.


식당? 카페? 바?

점심을 먹은 지 얼마 안 된 시간이라 어느 곳도 당기는 곳이 없었다.

괜히 잘못 들어 가 돈 낭비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20년쯤 같이 산 부부는 안다.

이럴 때 처신 잘해야 한다. 잘못하면 바로 언쟁 그리고 거북한 침묵..

서로 말 한마디 없이 집으로 돌아가는 수가 있다.

돌아가는 길은 찬바람만 불 것이고 그 길은 멀게만 느껴질 것이다.. 생각만 해도 오한이 든다. 


딱! 맥주 한 잔이 적당한 상황


곁눈질로 아내의 눈치를 살피다가 묻는다.


"맥주나 한 잔 할까?"


"어디서?"


"그건 나도 모르지...."


방향 잃은 걸음이 계속된다. 거리의 사람들은 어디로 향하는 걸까?

어슬렁거리며 걷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오아시스를 찾았다.

사람 많은 거리를 피해 샛길을 걷고 있을 때였다.


비어 위치(Beer Witch) 맥주 마녀?


수많은 세계 맥주가 있다고 행인을 유혹한다.


별 다른 수가 없다. 일단 직진하고 생각한다.



깔끔한 실내..  그것보다 마음에 드는 건.. 마시고 싶은 맥주를 냉장고에서

그냥 꺼내 오면 된다. 어중간한 시간 때문인지 손님도 없다.

계산하고 맥주에 맞는 잔을 건네받아, 바로 마시면 된다.

우리나라의 편의점 문화가 미국 상륙? (그저 기쁘다는 말이다.)

세계 각국의 맥주가 냉장고를 가득 채우고 있다. 



20여 가지의 생맥주 메뉴도 마음에 든다.

향, 맛, 도수가 다양하다. 특별한 건 생맥주의 라인을 언제 청소했는지 알려주고 있다.

연결 호스의 청결 상태가 이슈가 되는 현실에 재빨리 대응한 행동 같다.



6불로 시작하는 맥주의 가격도 훌륭하다. 별다른 안주가 없다는 게 흠이 될 수 있겠지만

어차피 맥주 몇 잔 마시는데 가벼운 스낵 정도면 만족스럽다.


생맥주 꼭지에서 찔끔찔끔 술을 따라 마시는 종업원이 친절히 맥주 설명도 잘해줬다.

그런데 이 사람은 근무 중에 술을 마셔? 전혀 사장 같아 보이지 않는데..

아무튼 친절한 청년은 맥주잔 교환도 잘해준다. 맥주에 따라 잔이 조금씩 틀려진다.

뭐, 솔직히 맛에 영향을 주는지는 모르겠다. 그 맛이 그 맛이다. 세상 어렵게 살고 싶지 않다.




시원한 맥주 덕분이겠지.. 이유를 알 것 같은 긴장감에서 벗어나 부부는 기분 좋은 대화를 이어갔다.


맥주를 몇 잔 마시고 밖으로 나오니 세상이 아름다워 보였다. 한결 가벼워진 여인들의 옷차림이

나비의 날갯짓 마냥 나불거리고, 어린아이와 산책을 나온 젊은 부부의 모습은 평화롭기만 하다.

해맑게 웃는 아이의 얼굴이 우리의 미래 같기를 바랐다. 코로나의 우울함이 없어지길 바라는 마음.


집으로 오는 길, 지하철에 오르니 이제는 오아시스를 떠나 정글로 향하는 기분이 들었다.


사막이 아닌 정글?


뉴욕의 지하철은 아무래도 정글이 어울리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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