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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Hong Jul 16. 2022

아들과의 헤어짐

못난 아빠

자식을 키우며 숫하게 많은 곳에 아이를 데려다주고 데려 오 건 했다.

맞벌이 생활이다 보니 아들을 처음으로

데려다준 곳은 유아원이었다.

아들이 생후 9개월 때의 일이다.

말도 못 하는 아이를 유아원에 맡기고 돌아서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아내나 나나 일이 먼저 끝나는 사람이, 유아원으로 달려 가 아이를 데려왔다.

문을 열고 아이들 방에 들어 서 이름을 부르면

무릎이 닳도록 기어 오는

아이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엄마, 아빠를 알아보는 아기가 신기하고

대견스러웠다.



그 아기가 17살이 되었다. 제 갈길을 서서히 찾아야 할 나이다.

세 식구 뉴욕에서 6시간 정도 거리의 워싱턴으로 향했다.

여름 캠프가 시작될 죠지타운 대학에 아이를 데려다 주기 위한 여정이었다.

출발할 때부터 잔뜩 흐리던 날씨는 워싱턴에 가까워지며 비로 바뀌었다.

운전 속도는 느려졌고 교통 체증은 심해졌다.

호텔 도착 전 식당에 들르려던 계획은 아무 패스트푸드나 픽업해 호텔방에서 해결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호텔방에 머리를 맞댄 세 식구가 햄버거를 꾸역꾸역 입 속으로 밀어 넣었다.

운전은 나 혼자 했는데 피곤하기는 모두가 마찬가지였나 보다.

아이는 다음 날 오후까지 데려다주면 되었기에 여유 있는 스케줄에 안심이 되었다.

침대에 누워 안정이 되어가는 아빠의 심리 상태와 달리 아들은 점점 생기가 돌며

흥분되어갔다.

엄마, 아빠를 떠나 생활해보는 게 소원이었단다.


다음날이 되어 죠지타운 대학 근처의 유명하다는

핫도그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오바마 대통령도 들렸었다는 'Ben's Chili Bowl'..

맛이 없었다. 아이를 떠나보내야 하는 마음에

입맛을 잃었나?

고작 자식을 여름학교에 보내며? 아빠가 참 못났다.

자식을 군대에 보내는 부모 마음을 헤아려봤다.

감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군대를 가봤기에 안다.

가는 놈은 어차피 아무 생각 없다.

보내는 부모 마음만 아프지


아빠 마음 아는지 모르는지, 제 핫도그에 감자튀김, 양파링까지 입에

털어 넣는 아들을 보자니 피식 웃음이 났다.

'이 애는 아직도 입에 뭘 그리 많이 묻히는지..'


식당을 나와 십 여분을 운전해 학교로 갔다.

학교가 보이고 캠퍼스로 진입을 하자 아이는

엉덩이를 들썩였다.

한시라도 빨리 아빠, 엄마와 헤어지고 싶어 하는

모습에 복잡한 심정이 되었다.

이제 많이 컸구나라는 기쁜 마음과 아들이 도망갈 궁리만 하는 거 같아

섭섭함이 밀려왔다.

30년 전쯤, 유학 간다고 부모님 앞에서 기뻐

날 뛰던 내가 떠올랐다.

참 못된 아들이었다. 최소한 날뛰지는 말았어야지.




멀어져 가는 아들의 뒷모습이 건물 안으로

사라질 때까지 바라봤다.

뉴욕으로 돌아오는 차 안이 텅 빈 느낌이었다.

셋이 있다가 하나가 줄었다. 아들의 빈자리가

크기만 했다.

갑자기 아내에게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이 떠나고 아빠가 철이 드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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