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또 다른 부자
한국에 도착하고 날이 밝자마자 아빠와 단 둘이
산소를 찾았다.
아빠의 아버지 산소.. 나에겐 할아버지..
아들을 하나 갖게 되니.. 나의 할아버지보다는
내 아빠의 아버지로 감정이입이 더 쉽다.
손자의 할아버지 이전에 자식들의
아버지 셨던 분에게 인사를 갔다.
지하철을 타고 어떤 좌석버스로 갈아타고 가야 하는 성묘 길이었다.
새벽에 한국에 도착해 시차 적응이 전혀 안 됐지만, 일찍 찾아뵙는 게
좋을 거 같아 정한 첫 스케줄이었다.
아빠와 단 둘이 어딘가를 가본 게 얼마만인가?
퍽퍽한 기억을 짜내 듯해보니 1986년 여름 단성사 극장에 가본 게
마지막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든다.
성룡의 프로젝트 A를 같이 본 거 같은데..
정말? 그때가 마지막? 기억은 희미하기만 하다.
그동안 성묘를 갈 때는 동생의 차로 가거나 친척의 차로 다녀서
대중교통을 이용한 산소행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막걸리, 북어포, 떡 종류가 담긴 비닐봉지를 손에
쥐고 아빠의 뒤를 따른다.
길도 모르고 차편도 모르며 누군가를 따라나선 건 또 얼마만인가?
아빠의 뒤를 쫓으며 연신 묻는다.
아직 멀었어요?
거의 다 왔다.
아까부터 거의 다 왔다고 하셨잖아요!
50넘은 아들과 80 가까운 아빠의 대화 치고
참 없어 보인다.
어릴 적 아들이 집만 나서면 묻던 이야기잖아..
Are we there yet?
Almost!
버스에서 내려보니 공원묘지만 뻘쭘하게 보였다.
고개 들어 산소 입구를 쳐다봤다.
이제는 걸어야 할 타이밍이다. 날씨는 사막인데
오아시스가 있을 리 없다.
산소는 언덕을 넘어야 했다. 자가용으로 왔을 때는 언덕인 줄도 몰랐던 곳이
산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화는 좀 전과 비슷하다.
산소는 어디예요?
바로 저기!
저기 어디요?
거의 다 왔어!
하나마나 한 질문이란 걸 알았을 때쯤,
산소에 도착했다.
뙤약볕 밑에서 주섬주섬 사온 걸 꺼내 놓았다.
아무리 약식으로 인사를 드린다고 해도
너무 날림인가?
제가요.. 지금 시차도 안 맞고요..
일단 너무 덥잖아요..
손주 좀 이해해 주세요..
어정쩡하게 음식과 술을 올리고 절을 했다.
메마른 잔디가 무릎을 찔러왔다.
아주 조금 아팠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이다.
땀에 젖은 셔츠가 몸에서
떨어질 줄 모른다.
아빠와 어색하게 서 있다가 돌아가기로 한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또다시 아빠가 앞장을 서고 나는 뒤를 따른다.
느린 걸음을 따르며
답답했던 마음이 이제는 걱정으로 바뀐다.
내리막 길의 걸음걸이가 영 시원치 않으시다.
앞으로 쏠린 등이 불안하기만 하다.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연신 뒤를 돌아보신다. 아빠 얼굴에 스치듯 아빠 미소가 번진다.
어릴 적 아들이 내 뒤를 따를 때가 생각났다.
"요놈이 제대로는 쫓아오는 건 가?"
아들을 확인하고는 참을 수 없는 미소가
쑥스러웠던 기억.
간혹 내 얼굴에서 아빠 얼굴이 보였던 것처럼,
아빠 얼굴에서 내 얼굴이 보였다.
짧았던 성묘를 마치고, 에어컨 펑펑 나오는
버스에 올랐다.
녹았던 뇌가 시스템 점검을 한다.
부자(父子)는 말이 없다.
산소에서,
아빠는 아빠의 아버지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을까?
나는 아빠의 아버지에게 내 아들 원하는 대학에
보내 달라고 졸랐다.
저는 제 아들부터 챙기겠습니다 라는 마음이었다.
왠지 아빠도 당신의 아들부터 챙기셨을 것 같다.
할아버지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