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nry Hong Aug 20. 2022

나의 아저씨들

그립기만 한 얼굴들

오랜만에 어릴 적 친구들을 만났다.

같은 나라에 살며 가끔이라도 만났다면 당황스럽지는 않았을 거다.


가장 근래에 본 친구가 3년 반 전쯤, 그중에는 거의 10년 만에 얼굴을 본 친구도 있었다.

갑자기 눈앞으로 훅 들어온 친구들

외모만 봐서는 쉽게 말을 못 놓을 비주얼이다.

그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묻지 못한 질문이다.


아저씨들과의 서먹함을 달래려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누가 뭐래도 폭염에는 맥주가 최고다..

더위 때문인지? 약해진 술 때문인지?

만난 지 20여분 만에 이유를 알 것 같은 거리감이 좁혀졌다.

덩달아 내 아저씨들도 사회생활로 덮였던 장막을 벗기 시작했다.


문득 미국에서 날라 온 친구가 처음에는 부담스러웠나 보다.

그들에게서 조심성이 엿 보였다. 그들의 배려가 무겁기만 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어떻게 변했을지 모르니 그들로서도 당연한 행동이다.

어릴 적 친구가 피라미드를 권유하거나,

낯 선 종교의 전도사로 나타난다면 참.. 곤란하다.



어릴 적 이야기로 시작된 탐색전은 30여분 만에 끝났다.


와이프와 자식들 험담이 이어졌다. 누워서 침 뱉기 절대 아니다.

하소연이 제자리를 잡았을 뿐이다.

가족 뒷담화를 어디 가서 할 수 있으랴!

그리고 중년의 자괴감

예전에 우리가 그토록 욕해되던 아저씨들.. 창피함을 모르던 그 아저씨들.

이제 그 나이가 된 우리들.

우리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하는 말이 공허하기만 하다.

어차피 판단은 젊은이들이 할 것 아닌가!

우리가 그때 그랬던 것처럼.


시간이 흐르며 아저씨들의 얼굴에서 친구들의 모습이 명확해졌다.

하나도 안 변한 예전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다들 주름에 머리숱 줄고 배는 나왔지만 말이다.


이런 경우를 보고 변한 게 하나도 없다는 말을 하나보다

분명 변했는데 변한 게 없다.


"야 똑같다.. 예전 그대로네."라는 말.

예전에는 절대 믿지 못할 말이었다.

그저 입에 발린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저 머리통, 저 눈가, 저 입꼬리, 저 콧방울이 변한 게 없다고?

네, 정말 예전 그대로입니다.



시간이 흘러 술자리는 4차까지 이어졌다.

어느덧 신 교수는 댄서가 돼 있었고,

대머리 최 사장은 여전히 음치, 혀 짧았던 친구는 계속 짧은 발음..

노래방까지 오기는 했지만 술을 더 탐내는 나머지 친구들.

그 와중에 팝송 발음 안 좋다고 욕먹는 나.

이러다가 과로사할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나올 때쯤,

모두가 한마음 되어 쿵따리 샤바라의 떼창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새벽 녁이라 힘들게 잡은 택시를 나 먼저 태운다.

내가 길이라도 잃을 가.. 기사분에게 잘 부탁드린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창을 열고 연신 손을 흔들어 대는 나, 잘 가라고 소리치는 친구들

누가 보면 전쟁터라도 나가는 줄 알겠다.


차창을 닫고 바로 침묵 모드

집 까지 가는 길 내내 창피함은 내 몫이었다.



어릴 적 친구들

나의 아저씨들.. 벌써 그리워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부자 父子 동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