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줌마들

옛날 옛적 소녀들

by Henry Hong

감사히 인연을 이어오는 여사친들이 있다.

아줌마로 불리기 한참 오래전,

소녀로 불렸을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다.

당연하게도 어느 면에서는 그들의 남편보다 자식들보다 그들을 잘 안다.


짝사랑하는 오빠를 독서실 앞에서 기다리고,

부모 몰래 국일관, 우산속, 콜로세움 나이트클럽을 갔던 소녀들


나의 아저씨들을 만났을 때처럼 몇 년 만에

본 얼굴들이다.

소녀적 얼굴이 보일 듯 말 듯했다.

확실한 건 몇 년 만에 보는 남사친 앞에서

거침이 없다.

이 소녀들 목소리가 이렇게 컸었나?

혹시 가는귀가 먹어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는 건가?


이따위 남편을 만날지 몰랐다고

자식이 이렇게 속 썩일 줄 몰랐다고 하소연을 한다.

곧 미국으로 돌아가는 나를 만나,

가족 험담에 아주 신들 났다.

이상한 건 아줌마들의 험담을 들을수록

공감이 가는 거였다.


"그 남편 욕먹을 만했네.." 오랜만에 만난 여사친들 앞에 들떠서는

할리우드 리액션을 보여주는 나.


방금 전 한 말을 묻고 또 묻는단다.

지 물건을 허구한 날 어딨냐고 묻는단다.

친구는 왜 그리 많은지 허구한 날 술을 퍼 마신단다.

엄마를 우습게 보는 자식들까지..

잊을만하면 인내심의 한계를 테스트한단다.


여사친들에게 공감이 가는 건 좋은데

시간이 흐를수록 반성까지 하게 된다.

내 아내를 아는 것도 아닌데 잔소리의 범위가

거기서 거기다.

이들의 하소연은 포기 못한 소녀적 꿈 때문이

아닐까?

아니 포기할 수 없는 희망.

하지만 미약하기만 한 희망.

이렇게 살다 갈 수 없다는.. 노파심

잔소리로 인생 낭비하기 싫은데

가족이 목소리만 큰 아줌마로 만든다.



아줌마의 겉모습을 한 소녀들을 바라본다.

몸매는 우스워졌지만 숨길수 없는 소녀 감성.

언제 꺼질지 모를 가슴속 불씨.

문득문득 얼굴에 비치는 막연한 두려움.

앞으로 깊어져 가기만 할 주름들.


마음은 예전 그대로인데..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많으시네요..라는 말을

듣는단다.


"뭔 소리야.. 아직 시작도 안 했다고!"

아줌마들의 외침은 메아리가 된다.



유방암 진단 후, 항암 치료까지 견뎌낸 선희는 생애 첫 해외여행을

프랑스로 잡았단다. 같이 갈 사람?

당연히 남편과 자식은 아니다.

공부 못하는 자식들 덕분에 사교육비 걱정 없다는 미경이와 함께 간단다.


하고 싶은 거 많고 이제는 즐길 때도 되지 않았냐고 목소리를 높이던 소녀들이 저녁 7시가 되자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 일은 하겠다는 자세의 아줌마들.

갑자기 서두르는 모습에 희망이 보인다.


헤어질 때가 되자 아줌마들에게서 소녀적 모습이

또렷이 보였다.


이 아줌마들이

옛날 옛적에는 스피커 위로 기어 올라

춤을 췄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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