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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Hong Sep 17. 2022

나의 아줌마들

옛날 옛적 소녀들

감사히 인연을 이어오는 여사친들이 있다.

아줌마로 불리기 한참 오래전,

소녀로 불렸을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다.

당연하게도 어느 면에서는 그들의 남편보다 자식들보다 그들을 잘 안다.


짝사랑하는 오빠를 독서실 앞에서 기다리고,

부모 몰래 국일관, 우산속, 콜로세움 나이트클럽을 갔던 소녀들


나의 아저씨들을 만났을 때처럼 몇 년 만에

본 얼굴들이다.

소녀적 얼굴이 보일 듯 말 듯했다.

확실한 건 몇 년 만에 보는 남사친 앞에서

거침이 없다.

이 소녀들 목소리가 이렇게 컸었나?

혹시 가는귀가 먹어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는 건가?


이따위 남편을 만날지 몰랐다고

자식이 이렇게 속 썩일 줄 몰랐다고 하소연을 한다.

곧 미국으로 돌아가는 나를 만나,

가족 험담에 아주 신들 났다.

이상한 건 아줌마들의 험담을 들을수록

공감이 가는 거였다.


"그 남편 욕먹을 만했네.." 오랜만에 만난 여사친들 앞에 들떠서는

할리우드 리액션을 보여주는 나.


방금 전 한 말을 묻고 또 묻는단다.

지 물건을 허구한 날 어딨냐고 묻는단다.

친구는 왜 그리 많은지 허구한 날 술을 퍼 마신단다.

엄마를 우습게 보는 자식들까지..

잊을만하면 인내심의 한계를 테스트한단다.


여사친들에게 공감이 가는 건 좋은데

시간이 흐를수록 반성까지 하게 된다.

내 아내를 아는 것도 아닌데 잔소리의 범위가

거기서 거기다.

이들의 하소연은 포기 못한 소녀적 꿈 때문이

아닐까?

아니 포기할 수 없는 희망.

하지만 미약하기만 한 희망.

이렇게 살다   없다는.. 노파심

잔소리로 인생 낭비하기 싫은데

가족이 목소리만 큰 아줌마로 만든다.



아줌마의 겉모습을 한 소녀들을 바라본다.

몸매는 우스워졌지만 숨길수 없는 소녀 감성.

언제 꺼질지 모를 가슴속 불씨.

문득문득 얼굴에 비치는 막연한 두려움.

앞으로 깊어져 가기만  주름들.


마음은 예전 그대로인데..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많으시네요..라는 말을

듣는단다.


"뭔 소리야.. 아직 시작도 안 했다고!"

아줌마들의 외침은 메아리가 된다.



유방암 진단 후, 항암 치료까지 견뎌낸 선희는 생애  해외여행을

프랑스로 잡았단다. 같이 갈 사람?

당연히 남편과 자식은 아니다.

공부 못하는 자식들 덕분에 사교육비 걱정 없다는 미경이와 함께 간단다.


하고 싶은 거 많고 이제는 즐길 때도 되지 않았냐고 목소리를 높이던 소녀들이 저녁 7시가 되자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 일은 하겠다는 자세의 아줌마들.

갑자기 서두르는 모습에 희망이 보인다.


헤어질 때가 되자 아줌마들에게서 소녀적 모습이

또렷이 보였다.


 아줌마들이

옛날 옛적에는 스피커 위로 기어 올라

춤을 췄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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