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서가 없다.
나뭇가지 사이로 들락날락하는 햇살이 곱기만 했다
햇살 사이 그림자를,
상승한 기분 눌러 앉히며 걷는다.
손에는 책이 들려있다.
오랜만의 일이다. 책만 달랑 들고 사무실을 나섰다.
언젠가부터 보기 드문 모습이 돼버렸다.
책을 든 나 자신이 낯선 모습으로 다가온다.
책을 읽고 안 읽고의 이야기가 아닌 낯선 모습으로..
머리도 몸도 아날로그인 내가 벤치에 자리 잡고
책을 읽고 있었다.
날씨 좋은 탓에 많은 사람이 공원에 나와 있었고,
혼자 독차지 한 벤치에 흐뭇해할 때였다.
걷는 것도 심심해 보이던 백인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슬쩍 미소를 지었더니 내 옆 자리에 앉더니,
무슨 책을 읽냐고 물었다.
갑자기 훅 들어온 대화가 시작됐다. 방심한 내 탓이다. 괜히 웃었다.
"어.. 그러니까 말이지.. 이 책은.. 한국말로 된
책인데.. 그냥 소설이야.."
(존댓말 필요 없으시고요..)
자기도 소설을 좋아한단다.
내용을 묻지 않기를 바랐건만, 시간 많아 보이는
할머니가 기어코 책의 내용을 물었다.
내용이 뭐냐면 그러니까.. 말이 길어질까 봐
겨우 한 말은
"응.. 그냥 있을법한 인생이야기.."
자기는 추리 소설을 좋아한단다.
예의 상, 질문을 해야 할 거 같아 어떤 작가를 좋아하냐고 물었다.
이름을 여러 명 얘기했는데 모두가 모르는 작가였다.
이 나라는 추리 소설 작가도 많다니까.. 생각하며
아가사 크리스티는 어떠냐고 물었다.
그 사람은 싫다는 짤막한 대답이 돌아왔다.
아니 추리 소설 좋아하며,
아가사 크리스티를 싫어해?
뭐지? 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왜냐고? 묻지 않았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만 같았다.
어차피 설득할 것도 아니잖아.
할머니가 무릎 위 커다란 캔버스 백에서
보란 듯이 책을 꺼냈다.
무슨 책이냐고 묻지 않았다. 묻기 싫었다.
점심시간이 좀 더 남아있었지만 사무실에 들어가
봐야 한다며 일어섰다.
또 보자며 할머니가 손을 흔들었다.
나는 가벼운 목례를 했다.
유쾌한 대화가 아니었다. 귀한 점심시간의 햇살을 낭비한 거 같았다. 괜히 책을 가져 나갔나 보다.
책만 안 들고나갔어도, 친절해 보이는
대화에 목마른 할머니를 안 만났을 텐데..
심통이 났다. 나도 안다.
나는 점점 이상해지고 있다.
이상한 걸 안다.
단지 퇴화인지 진화인지를 모르겠다.
책을 아무 때나 들고 다니면 안 되는 때이다.
남이 뭘 읽든 말든 그냥 놔두세요!
야외에서 책 읽는 거 어차피 폼이니까요!
책을 왜 보이게 들고 다녀!
그래서 가방이 있는 법입니다.
갑자기?
책에서 밖에 위로를 받을 수 없는 세상.
다행이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