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롱스 보태니컬 가든(Bronx Botanical Garden)
나에게 봄은 알레르기의 계절이다. 한국에 살 때는 없던 일이 미국에 와서 생겼다.
그전까지 알레르기라는 단어는 소설 속 이야기이거나, 별난 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갑각류 알레르기가 있어 조개를 못 먹는다는 사람에게 술을 덜 마셔서 그렇다며 술을 부어주던 나였다.
인과응보일까?
내 알레르기는 해가 갈수록 심해진다. 콧물이 줄줄 흐르고 뇌까지 흔드는 재채기가 끊이질 않는다.
특히 올 해는 이상 기온 때문인지 복용하는 약도 별 효과가 없다.
아내가 꽃구경을 가자며 예약을 해 버렸다.
점점 심해지는 알레르기 증상을 호소하니,
술을 너무 마셔서 그러니 술을 끊으란다.
인과응보 맞다.
아내가 작정한 날, 브롱스 보태니컬 가든
(Bronx Botanical Garden)으로 향했다.
어릴 적 엄마 손에 이끌려 치과를 가는 느낌이었다. 날씨는 해맑기만 했다. 차문을 열고 내리자마자 화사한 꽃잎들이 저 멀리 보였다. 그리고 시작된 재채기.. 훌쩍임.. 하지만 기왕 온 거 즐겨보자고 파이팅을 외쳤다!
어차피 다른 선택지는 없다.
내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 척하는 건지 아내의 얼굴은 밝기만 하다. 정원의 꽃가루를 다 흡입하겠다는 듯, 긴 숨을 들이마시고 내 쉰다. 이상한 건 18년 전만 해도 아내의 알레르기가 무척 심했다는 거다. 그 심하던 알레르기가 아이를 낳고는 싹 없어져 버렸다. 호르몬 때문이라는 알듯 모를듯한 대답을 의사에게 듣긴 했지만 이상하다는 생각에는 변화가 없다. 그럼 난 임신을 안 해서 알레르기가 생겼냐?
콧물, 재채기와 사투를 벌이며 공원을 거닐고 이 날의 하이라이트 난꽃쇼(Orchid Show)가 열리는 식물원에 들어섰다. 형형색색의 꽃들이 당당하게 손님을 맞이하는 느낌이었다. "자.. 나 좀 봐주셔!"
아내가 이쁘지 않냐며 몇 번을 묻는다. 솔직히 꽃을 보며 이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내 느낌은 언제나, 묘하네, 신기하네, 희한하게 생겼네 정도다. 꽃을 먹지는 않잖아요.
먹지도 못하는 꽃을 자세히 보기로 했다.
이쁨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아무리 봐도 희한하기만 했다.
사군자(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에 포함되는,
난초의 재배 역사는 2000년이 넘었다고 한다.
먹지도 못하는 걸.. 오직 아름다움 때문에?..
인류가 재배를 했단다.
난꽃을 피우는 건 쉬운 일도 아니라며?
그런 정성을 인류에게나 쏟지! 하는
마음마저 들었다.
꽃의 아름다움도 볼 줄 모르면서, 사람들의 정성을 폄하하려는 생각은 아니다.
꽃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려 하듯이 소외된 곳에도 눈길을 줬으면 하는 바람이 들어서다.
어린이날이면 더욱 외로울 아이들이 떠 올랐다.
꽃보다 아름다운 아이들이 어른들의 눈길, 손길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지?
꽃을 자세히 보기로 마음먹은 덕분에 식물원을 나올 때는 눈이 벌게지고 간지럽기까지 했다.
콧물, 재채기로 주접스러운 얼굴에 눈물을 더 할 참이다. 보람이라면 꽃을 보다가 아이들에게 까지 생각이 미쳤으니 뭔가를 배웠다.
꽃을 보다 보면 좋은 생각이 들기 때문에 인간은
꽃을 재배해 온 건가?
꼭, 이런 인간들이 봐야 할 꽃을 꺾는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