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추천서
아이의 대학 준비를 하며 가장 놀라운 것을 꼽자면 선생님 추천서였다.
어느 입시 전문가건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선생님 추천서였다.
추천서가 왜 그리 중요해?
선생님이 어련히 알아서 잘 써주실 텐데 무슨 걱정?
솔직히 예전 교수님들께 추천서를 부탁드리면..
귀찮다고 하시며 "네가 써 와라, 사인해 줄게.."
또는
이미 써놓으셨던 추천서에 이름만 바꿔 주셨던 경험을 해봤다.
라떼는 다들 그랬다. 죄송합니다.
타국에서 온 아빠의 머리에는 쉽고 쉬운 게 선생님의 추천서였다. 알아서 잘 써주시거나,
내가 써서 사인만 받으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입시 원서 마감이 다가오며 학교가 어수선하다는 이야기를 아이에게서 들었다.
때가 때이니 당연히 그럴려니 했는데 이유가 선생님들이 추천서 써 주는 걸 거절하기 때문이란다.
아니 왜? 학생이 부탁하면 선생님들은 발 벗고 나서서 잘 써주면 되잖아!
대학 입학률이 높아지면 선생님도 좋고 학생도 좋고….
학교 명성도 올라가는.. 좋은 게 좋은 상황이잖아.
선생님들이 내키지 않는 학생의 추천서는 절대로
써주질 않는단다.
본인이 추천서를 써 줄 정도로 잘 아는 학생들의 추천서만 쓴단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
말하기 부끄럽지만
촌지! 뇌물! 그냥 잘 좀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역시나 여기는 미국. 그게 그리 쉽지 않다.
일단 선생님들은 20불 이상의 선물은 받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이상의 뇌물을 먹인다 해도 내 뜻대로 된다는 보장이 없다.
추천서의 내용을 학생이나 학부형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내 추천서의 내용을 내가 모른다고요?
추천서 내용은 비밀의 비밀이고
추천서를 써준 선생님과 극소수의 입학 사정관들만 내용을 알 수 있다. 그들만의 이메일을 이용하거나 아직도 봉인한 우편물을 선호하는 학교가 있다.
마치 007 작전 같은 비밀
촌지나 뇌물 아무리 뿌려도 공허할 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좋은 추천서를 받을 수 있을까?
당연하게도 수업 참여 태도, 성취 노력 그리고
성적이 좋으면 된다.
그럼 선생님이 알아서 내 편이 되어 주신다.
지인의 따님이
MIT 대학원 재학 중 입학 사정관 밑에서 선생님 추천서를 읽고 골라내는 일을 했단다.
입학 사정관이 읽어 볼만한 추천서를 가려내는 일이었는데 일이 쉬웠단다.
수많은 추천서를 읽는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닐 텐데 의외였다.
방법은 읽어 볼만한 추천서와 그렇지 않은 추천서가 확연히 달랐기 때문이란다.
억지로 쓴 추천서는 일반적인 추천서 양식을 따르기 때문에 한눈에 걸러낼 수 있단다.
판에 박힌 추천서는 써준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나 이 학생은 아닙니다를 알고 있다. 아무 선생님에게 추천서를 부탁하면 안 되는 이유다.
믿기 어렵지만 첫 문장이
'이 학생은 엠아이티에 적합하지 않은 학생입니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는데 그런 추천서가 흔했다고 한다.
추천서를 부탁한 학생이 알았다면 황당하기 그지없을 일이다.
선생님은 내 편이 아니었다.
미국 선생님들은 집요한 부탁을 거절치 못하면 미국식대로 냉정한 결정을 하는 것 같다.
아들의 학교 선생님 중 한 분을 예로 들자면
그분은 아예 처음부터 학생들에게 추천서를 부탁하지 말라고 했단다.
추천서가 필요할 것 같은 학생에게는 본인이 먼저 제안을 하겠다고 하셨단다.
추천서가 필요할 것 같은 학생은 내가 먼저 써 줄 것이다.
추천서 내용을 학생이나 부모가 모르는 줄 몰랐다.
이제야 추천서의 중요성을 알게 됐고,
왜 대학들이 선생님의 추천서를 신뢰하는지 알게 됐다. 라떼와 비교하니 대단들 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참고로 아들은 영어 선생님과 생물 선생님에게 추천서를 받았다.
추천서의 내용은 알 수 없지만 두 분 모두 아들의
편이 되어 주신 건 틀림없다.
선생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