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의 일탈
아들은 첫돌이 되기 전부터 유아원에 맡겨졌다.
이런 아들에게
우리 부부는 미안한 감정이 있다.
아이는 무슨 영문이지 상상조차 못 하는 얼굴로
엄마, 아빠와
헤어졌다가 만나던 일상을 보냈다.
세월은 흘러 옹알이를 하고 몇몇 단어를 얘기하고
질문이 많아지고,
대화가 조금씩 통하는 시절로 일상은 변화돼 갔다.
외동이라 더 안쓰러운 아이에게 나는 큰 소리 한 번 낸 적 없었다.
유치원에서 아이를 집에 데리고 올 때면
뒷좌석에서 조곤조곤 하루를 이야기하는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깊은 뜻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단지 그래야 된다는 내용을 어딘가에서
듣거나 읽었기 때문이었다.
아이의 이야기를 경청하라!
아이와 눈높이를 맞춰라!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아들은 예나 지금이나 부모 말을 잘 듣는 아이다.
여자 친구와 데이트를 하고 있다가도 제 엄마의
부름에 달려오는 아이다.
부모의 말을 들으면 손해는 안 본다는 것을 아는
영악한 아이?
아님, 아주 어렸을 적부터 부모 말을 듣다 보니
자연스레 관성을 따르게 된 아이?
아들이 6살 때였다.
유치원에서 돌아와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두 로봇을 가지고 만담 하듯 대화를 이어간다.
무슨 말이 오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짐작건대 오늘의 악당은 힘이 상당히 센 녀석이다.
여섯 살의 일탈이었을까?
보통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저녁 먹기 전에 숙제를 끝냈는데
오늘은 장난감을 갖고 노는 시간이 길어졌다.
숙제라고 해봐야 단어 몇 개를 소리 나는 대로
써보는
종이 한 장 짜리 프린트물이다.
일단은 아빠가 인내심을 발휘했다.
참다 참다 그리고 말했다.
"이제 숙제해야지!"
대답이 없는 아이
아빠의 참을성 그건 둘째였다.
처음 겪는 상황에 아빠는 당황했다.
"숙제 안 하니?" 목소리가 조금 올라갔다.
아이가 갖고 놀던 장난감을 멈췄다. 그리고 조르륵 나에게 다가왔다.
"나 숙제하기 싫어!" 솔직하고 당당한 모습이었다.
앗! 허를 찔렸다.
이럴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걸까?
초보 아빠에게 해답이 있을 리 없다.
"정말 숙제하기 싫어?"
"응, 싫어!"
"그럼 하지 마!" 라면서 숙제를 가지고 오라고 했다.
재빠르게 그날의 숙제 프린트를 가지고 온 아이
"정말 숙제하기 싫어?" 다시 물었다. 이때까지도
나는 내 행동을 예측지 못했다.
해맑게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
그 찰나 행동을 보여야겠다고 생각한 아빠
나는 숙제 프린트를 발기발기 찢었다. 그리고
쓰레기통에 구겨 넣었다.
목소리는 이미 커졌다.
"숙제하기 싫으면 하지 마! 유치원도 가지 마!"
아이는 너무 놀라 커진 눈을 깜빡이지도 못했다.
줄곧 우리의 대화에 귀 기울이던 아내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나서지 않았다.
아니, 나서지 못했다. 우리에겐 나름 규칙이 있었다.
나중에 싸우더라도 애 앞에서는 한 목소리를 내자!
우물쭈물 입을 씰룩이던 아이가 울음을 터트렸다. 뒤늦게 숙제를 하겠단다.
자기가 잘 못했단다.
"아니 이미 늦었어 숙제하지 마! 숙제하기 싫으니까 유치원도 가지 말고.."
우는 소리가 커지며 테이프로 숙제 프린트를
붙이겠단다.
다급히 뛰어 제 방으로 가더니 딱풀을 가져왔다.
어지간히 급하긴 했나 보다.
이제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쓰레기통을
들여다본다.
조금 짠한 마음이 들었다. 그때서야 아빠는 아이를 안심시키려 한다.
먼저 뭘 잘못했냐고 물었다.
숙제해야 하는데 안 하겠다고 했단다.
앞으로는 숙제 열심히 하겠단다. 옆에서 보고만
있던 아내가 옆구리를 찔러왔다.
나도 이쯤 해서 끝내야 한다는 것쯤은 안다.
더 이상 분쟁을 진행할 명분도 아이디어도 없었다.
"내일 아빠가 선생님에게 숙제 프린트를
다시 받을 테니 숙제는 그때 해."
그래도 되느냐고 묻는 아이
"걱정하지 마 그건 아빠가 선생님께 잘 말할게.."
아내가 아이를 씻기려고 욕실로 데려갔다.
화가 나서 숙제를 발기발기 찢던 아빠 얼굴이
트라우마가 됐을까?
아이는 그 이후로 유치원을 학교를 학원을 다니는 세월 동안
가장 먼저 하는 일 중, 하나가 숙제가 됐다.
그 10여 년 전의 해프닝이 공부에 도움이 됐을까?
확실한 건 모르겠다.
확실한 건, 아빠는 그날 아이보다
더 어쩔 줄 몰랐다는 것
아이의 솔직한 언행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랐다는 것이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창피한 일이다.
혹시 그날 낮,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아이에게
화풀이한 게 아니었나?라는 생각마저 들면
창피해서 아이 얼굴을 못 볼 지경이다.
숙제를 박박 찢던 폭력은
아빠에게 트라우마로 남았다.
제 선배는 딸의 전화기를 두 동강 낸 적이 있다네요.
한국 아빠들 왜 이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