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어른 탓!
아들이 친구의 생일 파티에 초대를 받았다.
주말이긴 해도 밤 8시부터 파티를 시작한다고 해
꺼림칙했지만
고등학교 졸업반인 아이를 마냥 막아설 수는
없었다.
일단 웃으면서 승낙
인스타그램으로 보냈다는 생일 초대장을 살펴봤다.
실내의 페인트볼 경기장이었다. 아직도 이런 곳이 있나?
페인트볼 경기장이면 규모가 커야 할 텐데
브루클린에 그런 장소가 있다는 게
조금 의아했다.
의문은 장소를 찾아가며 풀렸다.
뉴욕 퀸즈와 브루클린의 경계인 이곳은 몇 년 전만 해도 밤에 올 수 없는 장소였다.
사실 낮에도 꺼려지기는 마찬가지인 동네다.
영화에서 처럼 폐차장이 있고 각종 범죄자들이
증거를 감추던 곳. 시내의 변두리였다.
오죽하면 가로지르는 큰길 이름이
플러싱 에비뉴일까?
Flushing 뜻: 화장실 세정
지금도 컨테이너 창고와 버스 대기소만이
즐비한 곳이다.
어두운 창고 건물들을 이리저리 돌아 페인트볼
경기장을 찾았다.
딱, 그곳만 화려한 조명과 시끄러운 음악으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건물 앞에는 누가 봐도 경비원인 사람들이
경계를 했다.
조금 안심이 되는 아빠와 엄마
아들을 내려주고 아내와 잠깐 차 안에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하지? 원래 계획은 아이를 내려주고
근처 식당에서 기다릴 생각이었는데,
오면서 보니 식당은커녕 식당 할배도 없을
동네였다.
설사 식당이 있다고 해도 맘 편히 들어갈 곳은
아닐 듯싶었다.
별수 있나? 일단 구글의 도움을 받아보기로 했다. 식당을 찾으니 몇 군데 알려주긴 했다.
생각보다 가까운, 차로 10분 정도의 거리였다.
운전을 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가로등도 희미한 낙서 투성이의 거리를 굽이굽이
지나니 화려한 불빛이 보였다.
마치 사막에서 오아이스를 만난 기분이었다.
불빛에 다가갈수록 거리의 사람들을 볼 수 있었고, 식당 안은 가족 단위의 손님들이 눈에 띄었다.
그렇다면 안전하다는 뜻..
음식을 오물거리는 어린아이가 사랑스럽게 보였다.
차를 길가에 세우고 아내와 식당을 찾으러
거닐었다. 이상 기온으로 눈 한번 제대로 안 내린
뉴욕의 이번 겨울. 거리 구경하기에 좋은 날씨였다. 오아이스는 넓지 않았고 구경은 곧 끝났다.
늦은 밤, 젊은이들이
많았는데 주머니 사정 거기서 거기인지..
푸드 트럭 음식을 길에 쭈그리고 앉아 먹는 이들이
눈에 자주 띄었다.
남의 눈은 눈곱만치도 의식하지 않는 이들.
그들을
부러운 눈으로 흘깃 거리는 나.
아내와 식당 앞 메뉴판을 살피다가 결정한 곳은
피자집. 낯 선곳에서도 웬만하면 실망하지 않는
메뉴를 선택했다.
결론은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
풍부한 치즈와 고기,
딱 알맞게 탄 크러스트. 입안 가득히 퍼지는 오븐 향
맥주가 절로 당기는 맛이었다.
역시 피자는 브루클린이다.
등을 의자에 편히 기대며 여유로워졌다.
결혼 21년 차, 부부는 자연스럽게 말이 없어지고
뒷 좌석 젊은이들의 대화에 귀 기울인다. 화가와
음악가가 뒤섞인 듯했다. 피자집에서 피자를 시킨 이는 없었다. 웨이트리스가
벌써 두 번째 그들에게 다가가 필요한 거 있으면
얘기하란다. 그들에게
돈 말고 뭐가 필요하겠어?라고 생각하는 나.
창 밖으로는 이동 판매점에서 마리화나를 구입하는 젊은이가 보인다. 바로
길 건너, 대형 마리화나 상점이 더 많은 젊은이를
유혹한다.
식사를 끝마치고 소화도 시킬 겸 근방을 한 바퀴
돌았다. 거리에는
마리화나를 피는 젊은이들이 듬성듬성 보였다.
빨갛게 충혈된 눈이 길 잃은 웃음을 보인다.
11시가 넘어 파티가 끝났다는 아들의 연락을
받았다. 온몸이
페인트 칠로 뒤덮인 아들은 연신 웃는 얼굴이었다. 총에
맞아도 맞혀도 재미있었단다.
아들의 얼굴과 길가 젊은이들의 얼굴이
디졸브(Dissolve)됐다.
슬픈 웃음..
누군가의 자식들..
모든 게 어른 탓 같다.
갑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