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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Hong Nov 15. 2023

샤이닝

겁 많은 아빠와 아들

무서운 영화를 못 본다. 이유는 무섭기 때문이다.

무서운 것을 못 보는 게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꼬마였을 때,

영화 "악령"의 길거리 포스터가 무서워 그 길을 돌아가야만 했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골목마다 덕지덕지 붙어있던 영화 포스터는 공포 그 자체였다.


극장에서 본 첫 공포 영화는

나이트메어(Nightmare on Elm Street 1984)였고

제목 그대로 몇 주를 악몽에 시달렸다.

그 이후로 공포 영화에 대한 공포는 더 커졌다.

아무 생각 없이 본 '곡성'으로 진짜 곡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무슨 영화가 생각할수록 무서워지는지..

그 생각이 멈추지 않아 더 무서웠던 영화였다.

공포 영화를 무서워하는 게 유전인지 아들도 마찬가지다. 겁보 아빠에 겁보 아들.


어릴 적, 아들은 박물관의 석상을 무서워해 눈을 가리고 돌아가야 했다.

공룡뼈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라보던 아이가 석상을 무서워했다.


아들이 중학교를 다닐 때,

샤이닝(The Shining 1980)을 보자고 했다.

그동안 나는 늙었고, 샤이닝은 몇 번 봤던 영화라 자신 있게 되물었다.

정말? 너 볼 수 있겠어? 시도해 보겠단다.


거실 조명을 켜고 부엌의 조명까지 밝힌 후, 영화 볼 준비를 끝마쳤다.

사실 무서운 장면보다는 상황이 무서운 영화, 아빠가 귀신에 씌어 아내와 자식을 죽이려 쫓아다닌다.

가족을 죽이려고 선택한 도구는 도끼였다. 총이나 칼보다 더 무섭다.

아들과 같이 보려고 선택한 영화가 하필, 아빠가 아들을 죽이려고 쫓고 또 쫓는다.

다행히도 아빠는 성공하지 못하고 눈밭에서 얼어 죽는다.

얼어버린 얼굴이 괴기스럽기만 하다.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영화를 보던 아들이 영화가 끝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별로 무섭지 않았단다.

생각보다 시시했단다.

내 아들 많이 컸네라고 생각하며 이 애가 영화를 제대로 이해했나라는 의심이 들었다.

이 영화는 이해하려 할수록 더 무섭다.

가장 가깝고 믿었던 사람이 악마가 된다.

가족이 날 죽이려 한다.

더 무서운 이유다.


아빠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한다.

"그러니까 말이지.. 잭 니컬슨이 옛날 사진에도 있었잖아.. 그 사람 자체가 귀신일 수도 있고..

영생을 살았을 수도 있고.."

"아빠가 미쳐가기 시작한 계기는.. 아주 오래전 이미 누군가에 의해 예정된 이야기 일거야."

"작가라는 사람들이 귀신 들기 딱 좋지.. 원래 딴 세상에 사는 경우가 많으니까."

"아이의 자전거를 따라가는 스테디 캠 샷은 영화 역사의 한 획을 그었어.."

"스텐리 큐브릭 감독은 잭 니컬슨의 연기를 한심하다고 폄하했단다.."

그건 그렇고 "네 엄마가 태어난 곳이 콜로라도 산골이고.. 엄마, 아빠는 브루클린에서 만났고.."


공포 영화를 끝마친 아들이 자랑스러워 아빠가 주절주절 떠든다.

겁쟁이 아빠 닮지 말라는 바람이었다.

겁쟁이 아들에 겁쟁이 손주까지 보고 싶지 않다.

길거리 영화 포스터가 무서워 먼 거리로 돌아갔던 나,

아들은 공포 영화도 즐길 줄 아는 어른이면 좋겠다.

영화 같은 이야기는 영화 속에만 존재했으면 한다.

세상에는 영화보다 무서운 게 너무너무 많다.


자신감 생긴 아들이 다음에는 극장에서 공포 영화를 보잔다.

"아들아! 그런 건 친구들하고 보는 거란다."


The Shining (1980)

Director: Stanley Kubrick

Cast: Jack Nicholson, Shelley Duvall, Danny Lloy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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