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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Hong Nov 23. 2023

자전거 도둑

아들이 목격자

자전거 도둑

어릴 적, 명화 극장에서 가끔 방영을 해줘 제목이

익숙한 영화였다. 하지만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본 건 강의실이었다.


이탈리안 감독인 비토리오 데 시카의 영화.

네오리얼리즘을 공부하다가 마주친 영화 중 한 편이었다.


어렵게 구한 일자리에 온 가족이 기뻐한 것도 잠시,

일을 하는데 자전거가 필요하단다. 가난한 주인공에게 그런 게 있을 리 없다.

아내는 침대보까지 팔아가며 어렵게 자전거를 마련한다.

일에 들뜬 아빠는 출근을 한 첫날, 그 중요한 자전거를 잃어버리고 만다.


흑백 영상 속의 아빠와 아들.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을 옥죄는 답답함이 더 기억에 남는 영화다.

갈 길 모르며 로마 시내를 휘젓는 아빠.

불안한 눈으로 아빠를 따르는 아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아빠에게 어차피 선택은 한정적이다.

아들이 목격자가 돼버린다.


HBO Max에서 이 영화를 발견하고는 아들과 같이 봤다.

영화를 보며 자연스럽게 내가 주인공의 처지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과 연결됐다.

택시 운전사가 택시를 도둑맞았다면?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컴퓨터를 도둑맞았다면?

권총 강도가 권총을 도둑맞았다면?

애처가가 아내를 도둑맞았다면?

합법적인 대처가 힘들다면 불법을 저지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멈췄다.

그리고 가장 창피한 그 순간을 아들에게 들킨다면?


영화를 보던 아들도 답답한 마음이었는지 한숨을 몇 번 내쉬었다.

아들은 영화 속 아빠에게 감정 몰입이 됐을까?

아님 아들?

영화가 끝나고 아들에게 물으니 아빠에게 몰입이 됐단다.

괜히 아빠에 대한 변호를 시작하는 나.

패전국이 된 이태리 상황을 얘기한다.

열심히 살려는 주인공이지만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아들은 바로 반격했다.

어려운 상황이라며 와인과 음식을 즐기는 가족이 영화 속에 나온다는 것이다.

맞다. 먹을 걸 갖고 놀리는 아이마저 등장한다.

영화 속이나 현실이나, 능력 있는 아빠와 그렇지 못한 아빠가 있어 궁지에 몰리는 나.

옛날이야기를 아들에게 해주며 영화의 여운을 남겼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으니 동생이 2학년 때였다.

동생을 자전거에 태우고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오락실을 찾았다. 동네 오락실에는 없던 게임이 있는 곳이었다. 무슨 게임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혼자 열심히 게임을 했다.

동생은 옆에서 구경만 했다. 아니 구경만 하라고 시켰다. 동전은 언제나 모자랐고 동생은 착했다.

신나게 오락을 하고 만족한 얼굴로 나오니 문 앞에 세워 두었던 자전거가 안 보였다.

할아버지가 사주신 노란색 자전거가 보이지 않았다. 이 자전거를 얻으려고 할아버지 앞에서 얼마나

많은 재롱을 부렸는데.. 내 눈가는 이미 젖어가고 있었다.

상황 파악이 제대로 안 된 동생은 그저 형 얼굴만 쳐다보고 있다. 착하긴 한데 좀 느리다.

길이 어딘지도 모르며 자전거를 찾아 헤맸다.

그 당시만 해도 노란색 어린이 자전거가 흔하지 않을 때였다.

달리고 달렸다. 뒤 따르는 동생을 빨리 뛰라 다그쳤다. 그러나 자전거는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서 있는 곳이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다다랐다.

날은 점점 어두워졌고 어린 마음에 억울함만 더 해졌다. 어린이 자전거가 보였다면 훔쳤을 거라고 지금도 확신한다. 서 있는 자전거라고는 전부 짐 싣는 자전거들이었다. 결국, 날이 어두워지고 나서야 집을 찾아 발길을 돌렸다. 어딘지도 모르며 헤맨 덕분에 집으로 오는 길은 묻고 물어야 했다.


놀란 얼굴의 엄마가 대문을 열어 주었다. 엄마를 보자마자 크게 울음을 터트렸다. 동생도 함께 울었다.

"어.. 어.. 엄마 나 자.. 자전거 이러.. 버려써.. 으앙..!"

힘은 힘대로 들고 혼날게 무서워 일단 터트렸다.

이 상황에서 엄마가 화 내기는.. 여간해서는 힘들다.

그때 나와 동생의 얼굴은 전쟁통 고아의 모습이었다. 울음과 땟물로 얼룩진 얼굴에 허기지고 지쳐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별 말없이 나와 동생을 씻기고 밥상을 차려 주셨던 엄마


자전거 도둑 영화를 보고 자전거 도둑이 될 뻔한 아빠 이야기를 아들에게 해줬다.

이 이야기를 통한 교훈?

사람이 도둑 되기 쉽다는 것, 나는 일찌감치 알았다.

유난히 자전거 도둑이 많다는 한국..

혹시 도둑질의 악순환?.. 제발 쫌!! 상상으로 끝.


Ladri di Biciclette (1948)

Director: Vittorio De Sica

Cast: Lamberto Maggiorani, Enzo Staio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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