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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Hong Dec 31. 2023

프로젝트 A

젊었던 그들

옛날 옛적부터 삼촌이나 고모를 따라 극장 출입을 했다.

자막을 읽을 수 없는 나이에도, 배에 칼을 맞고 입에서 피를 쏟는 장면을 수없이 봤다.

팔이나 다리도 수없이 잘려 나갔다.

성룡의 코믹 쿵후 영화가 등장하기 전, 홍콩 영화는 잔인한 장면이 자주 등장했다.

옛날의 홍콩 영화는 공포 영화에 가까웠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부모의 원수를, 사부의 원수를 갚아야

하니 대화로 풀 수가 없다.

주인공은 열심히 수련을 해야 했고 물불 가릴 상황이 아니다.

방법은 다르지만 성룡의 초반 영화 대부분도 누군가의

원수를 갚는 내용이었다.

뻔하기만 했던 홍콩 영화를 다시 보게 되는 계기는 나의 아빠로 시작됐다.


아주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극장에 갔을지는 모르지만

기억나는 건 없었다.

어릴 적에는 주로 삼촌이나 고모를 따라갔고,

초등학교 3학년 무렵부터는 3살 어린 동생을 내가 데리고 다녔다. 그때는 그래도 됐다.

고 1 때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어머니와 동생은 외출 중이었고 아버지와 내가 어색하게 집에 있었다.

아빠가 갑자기 물으셨다.

"영화 보러 갈래?" 이건 또 무슨 상황이지.. 처음 들어보는

질문에 당황했다

"영화요? 무슨 영화요?"

"뭐 볼 거 없어?"

"몰라요!" 그때까지도 내 반응은 시큰둥했다.

"이거 보러 가자.." 신문의 영화 광고를 내미셨다.

아들은 서먹한 기분으로 아버지를 따라 집을 나서고 버스를 타고 종로의 단성사로 갔다.

극장에 도착하고 보니, 방금 영화가 시작됐고

극장은 조용하기만 했다.

극장 하나에 영화 한 편을 상영하던 단일관 시절이었다.

손에 든 극장표는 2시간 정도를 기다려야 하는 다음 시간표.

부자가 근처에서 시간 때우고 할 저지가 아니었다. 스마트 폰 같은 게 있을 리도 없다.

느려 터졌다고 어머니에게 핀잔을 듣는 아버지의 행동이 빨라졌다. 아버지를 따라 3층으로 올라가 어느 문의 커튼을

제치고 극장에 들어섰다.

이래도 되나? 같은 질문은 필요 없었다. 걸려도 그만, 안 걸리면 감사할 뿐.

솔직히 극장은 한가하기만 했다.


얼떨결에 본 첫 장면은 성룡 무리와 원표 무리가  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멈출 수 없었던 웃음.

평소에 표정 관리를 무슨 사명처럼 여기던 아빠를 무장 해제 시켰다.

아니 뭐가 이리 웃겨? 웃기면서 싸우기도 잘한다.

딱 아빠와 아들 수준의 유머와 어메이징 한 액션.

끝나지 않기를 바랐던 영화가 끝나고 놓쳤던 앞부분만 보고 나가자던 아버지의 계획은..

아들의 간절한 눈 빛 때문에 영화를 끝까지 다시 보게 된다.

내용은 이미 알지만 또다시 시작된 웃음.

아빠의 과묵한 얼굴에서 번지던 웃음.

웃참에 실패한 어른의 수줍음?

나의 최애 성룡 영화는 프로젝트 에이(Project A)가 됐다.


내가 느꼈던 감동을 아들에게 바라지는 않았지만

할아버지와 극장에 갔던 이야기를 해줬다.

아들은 할아버지의 과묵함이 이해가 안 되는 거 같았다.

미국 손자와 말이 안 통하면 손짓, 발짓에 구글 번역기 마저 돌려가며 대화에 열중하는 귀여운 노인이..

아들이 기억하는 할아버지기 때문이다.

"그때는 말이지.. 할아버지가 할아버지가 아니었다니까."


왜들 이러는 걸 까요?


사실 내가 보고 있는 지금의 아빠가 그 옛날 그 아빠였는 지,

의심 갈 때가 많다.

이 분이 옛날에도 이러셨나?

다정함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던 분이 내 아들만 보면

반달눈을 만드시네..


젊었던 성룡을 모르는 아들은 성룡 영화에 흥미가 없었다.

러시 아워(Rush Hour)에서도 크리스 터커에 더 웃음이 터졌다. 그리고 알게 된 젊은 성룡

"봐라! 성룡도 젊었을 때는 와이어나 CG 안 썼다니까."

프로젝트 에이, 쾌찬차, 폴리스 스토리 같은 영화에 아들은

성룡을 다시 보게 됐다.

나는 아들 덕분에 아빠를 다시 보게 됐다.

이 분이 이렇게 웃음이 많으셨나?

이 분이 이렇게 많이 늙으셨나?


프로젝트 에이 (1983)

감독: 성룡

출연: 성룡, 홍금보, 원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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