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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Hong Jun 14. 2022

탑건

36년의 기다림

극장 가는 게 귀찮아질 나이가 돼버렸다. 하지만 이 영화만큼은 꼭 극장에서 봐야 했다.

요즘 부쩍 바쁜척하는 아들을 꼬드겼다. 아들이 무슨 선심 쓰듯 하며 스케줄을 잡아준다.

일주일 정도를 기다린 끝에 영화관을 찾았다.

오랜만에 찾은 극장의 공기를 즐기며 30분 정도 로비에서 시간을 보냈다.

풍부한 팝콘 냄새가 기분을 업시켰다. 그러나 팝콘은 사지 않았다. 

영화를 보며 어떻게 뭘 먹을 수 있을까? 영화에 대한 모독이다.

로비에서 상기된 표정의 사람들을 구경하다 보니 팬데믹으로 너무 많은 걸 잊고 있었네 라는

다소 감상적인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제 맛이지.

시간에 맞춰 상영관으로 들어서니 의자가 모두 최신식으로 바뀌어 있었다. 

버튼을 누르니 거의 눕는 자세가 됐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탑건 인트로 음악이 흘렀다. 잔잔하게 시작하며 에너지를 끌어올리던 그때 그 OST였다. 음악이 가슴을 울리더니 시간을 거슬러 35년 전으로 이끌었다. 내가 17살 때였다.

누워있던 자세를 고쳐 앉았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머리가 아닌 가슴과 피부에서 기억이 되살아났다.

거부할 수 없는 끌림이었다. 전투기에 오토바이에 스피드에 설레었다.

이 나이에 주책인가? 옆의 17살 아들에게 민망함이 전해질까 조심스러웠다.

탑건 1편을 봤을 때가 정확히 아들의 나이였다. 넋을 놓고 피카디리 극장에 앉아있었다.

멋있게만 보이던 전투기, 유니폼, 우정, 의리, 사랑....

머리 자르러 이발소부터 가야 하나?를 생각하던 철부지.


영화 내용? 당연히 별 내용 없다. 웬만하면 죽지 않는 탐 크루즈가 훔친 전투기로 친구 아들을 구해 돌아온다.

옛날 서부 영화에서 볼 법한 진부한 스토리

예상 가능한 이야기 구조와 엔딩.. 조금 볼만했던 전투기 씬.

하지만 영화 이외의 요소들이 내 가슴을 펌프질 했다.

17살의 나 때문이었다.

미국에 살게 될지도.. 미국을 싫어하게 될지도 모르던, 그때 그 시절 때문이었다.


그 당시 영화잡지에 나온 탑건 기사를 찾아봤다. 1986년의 새 영화 소개였으니,

한국에서는 개봉 전이었을 시기다. 


탑건 소개가 있었던 86년 스크린 10월호 



탐 크루즈는 계속 멋있다.


내친김에 잡지를 펼쳐봤다.

다시 봐도 스크린은 알찬 잡지였다는 생각이 든다. 성실한 인터뷰 기사와 예전에는 쉽지 않았을

자료 정리 기사도 많이 눈에 띄었다. 30여 년을 간직한 보람이 있다.



 낯익은 얼굴을 광고에서 볼 수 있었다.



지금 보니 레트로 감성의 광고 문구



아들과 오락 영화 한 편 보고 와서는 추억의 늪에 빠졌다. 

후회가 쌓여 지금의 내가 된 거 같아 또 다른 후회가 생긴다. 

손에 잡힐 듯 실감 나는 그리움인데 돌이킬 수 없어 더 그립다.


한 편의 영화

사람의 미래를 바꾸어 놓을 수 있습니다.

그 당시 비디오를 볼 때마다 나오던 공익광고

옳은 말이다.


탑건 OST를 들으며 댓글을 보니 나와 같은 감성에 젖은 사람이 수천 명은 되는 거 같다.

국적도 다양하다. 탑건을 보고 모두들 감수성 만렙.

36년 만에 속편을 만드니 이런 일이 벌어진다. 역시 안타까운 건 속절없이 흐른 시간인 거 같다. 

탐 크루즈가 젊은 조종사들을 농락할 때 얼마나 많은 꼰대들이 환호했을까?


아들 얼굴을 훔쳐보듯 바라봤다. 딱 저 얼굴이었을 나를 생각했다.

갖은 거라고는 꿈밖에 없으면서 가슴 벅찬 일들이 매일 일어나던 때..

이 아이도 비슷한 상황이 아닐까?

갑자기 아이를 위해 어떤 아빠가 될지를 생각한다. 젖어있던 감성을 드라이기에 돌려 현실 모드가 된다.

아이의 삶이 후회 없는 삶이 되기를 바라는데....

역시 쉽게 풀릴 문제가 아니다. 조용히 옆에서 지켜보자고 나와 약속한다.


아들 곁에서 묵묵히 지켜보며 응원해 주자!

잔소리 유전자 때문에 지켜지지 않을 약속을 오늘도 해봅니다.


Top Gun (1986)

Director: Tony Scott

Cast: Tom Cruise, Val Kilmer, Kelly McGill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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