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지 않는 모험심
미국의 오리건 주 시골
백인 아이들이 잔뜩 등장하고 동양 아이 하나가 끼여 있다.
영화 속 중요 인물에는 흑인조차 찾아볼 수 없다.
악당들 마저 모두 백인이다.
아이들이 보물 지도를 손에 쥐고 해적선을 찾아 나선다.
악당들의 추격을 받은 끝에 보물이 가득한 해적선을 발견한다.
결말은 조금 아쉬운 공수래공수거 느낌 (문제 해결이야 됐지만..)
영화 속 유일한 유색 인종 소년의 존재감이 심상치 않다.
유일하게 악당에게 펀치를 날리는 아이다.
일찍이 인디아나 존스에서 해리슨 포드의 오른팔로 출연했던 베트남 출신 아역 배우 키 후이 콴이다.
백인들 사이에서 이야기를 풍부하게 만들었던 소년으로 기억된다.
특유의 억양으로 닥터 존스를 내내 불러대던 바로 그 소년이다.
그의 목소리는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온 후에도 강렬히 남아 있었다.
하지만 구니스로 다시 한번 유명세를 타고 사라져 버린 소년.
적어도 내 기억 속에서는 사라졌다. 그리고 중년이 되어 나타난 남자.
1985년에 사라져서는 2022년에 번쩍 나타난 느낌.
아주 오래전, 씬스틸러였던 아역 배우 키 후히 콴이 다시 미디어의 조명을 받고 있다.
아역 배우로 인기의 정점에 섰던 것도 잠시.. 그 이후로 30여 년을 불러 주는 이 없었단다.
끝없는 오디션과 실패로 점철된 그의 청년기.
영어 억양까지 이상한 아시안이 할리우드에 설 자리는 없었다.
카메라 앞에 설 수 없었던 그는 카메라 뒤편에서 스태프로 일을 했다고 한다.
연기를 하고 싶은 꿈을 왜 버리고 싶지 않았을까? 수많은 포기의 순간이 있었단다.
그럴 때마다 힘이 되어 준 건 아내였단다. 아내는 그가 천상 배우임을 알았다.
언젠가 다시 한번 팬들 앞에 설 것이라고 믿었다.
콴은 2018년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Crazy Rich Asians 2018)이라는 영화를 접하며
터닝 포인트를 맞는다. 어떤 계시를 받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영화를 몇 번이고 보며 영화를 볼 때마다 울었다고 한다.
아시안 감독에 아시안 배우들.. 원작자도 아시안이다.
그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좌절만 안기던 오디션에 다시 나서기 시작했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Everything Evrywhere All at Once 2022)의
오디션을 마친, 콴은 직감했단다.
"이 영화는 나의 영화다."
아시다시피 그는 이 영화로 2023년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한다.
어릴 적 재미있게 보았던 구니스만이 모험담이 아니었다.
진정한 모험담은 극장 밖, 실제 인생에 있었다.
거창한 꿈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고 인생 자체를 모험이라고 생각하는 마음 가짐이다.
해보지도 않은 모험을 두려워한다면 어떤 인생이 될까?
꼰대라고 해도 할 수 없지만 살면서 필요한 게 패기다.
난감하게도 적당한 단어를 찾을 수 없다.
실패에 대항하는 의욕과 자신감을 말하고자 한다.
거창하게 해적선을 찾아 나설 필요도 없다.
모험은 실패를 두려워 않는 마음가짐에서 시작된다.
어차피, 영화 속 위험한 순간들은 현실에서도 똑같이 재현되지 않나?
총 든 악당만 무서운 게 아니다.
누구나 거리의 무법자들과 마주칠 수 있는 게 현실이다.
법을 모르니 법 없이도 살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다.
때로는 용감하기까지 하다.
아주 위험한 세상이다.
위험한 세상에 패기마저 없다면 너무 억울하지 않을까!
쫄지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다.
키 후이 콴이 꿈을 이루는 데는 쫄지 않는 모험심이 있었다고 믿는다.
그가 쫄보였다면 그 긴 시간을 버틸 수 있었을까?
기회를 잡을 수나 있었을까?
차기작으로 콴은 87 North's "With Love"라는 영화를 준비 중이라고 한다.
중년의 아시안 배우를 또 보게 돼 기쁜 마음이다.
이제 그가 나를 응원한다.
"미스터 홍! 좀 잘해 봐.. 우물쭈물할 시간 없다고!"
미스터 콴의 목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용기 없는 내가 외쳐본다. 쫄지마!!
늙은 쫄보는 더 보기 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갑자기 듭니다.
The Goonies (1985)
Director: Richard Donner
Cast: Sean Astin, Josh Brolin, Ke Huy Qu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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