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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Hong Dec 30. 2023

쥬라식 파크

살면서 가장 많이 본 영화

내가 살면서 가장 많이 본 영화는 쥬라식 파크다.

나는 이 영화를 어림잡아도 백 번 이상은 본 거 같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과는 거리가 먼 영화다.


쥬라식 파크의 개봉 당시, 미국에서는 쥬라식 파크가 굉장한 인기였다.

장난감 가게는 당연하고 햄버거 체인점의 실내가 공룡으로 치장됐고, 거리는 티라노사우스의 사진으로  줄을 이었다.

도대체가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

영화 선전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애나 어른이나 왜 이럴까?

공룡이 귀여워? 공룡이 정의로워?

아무리 이쁘게 보려 해도 집채 만한 악어가 두 발로

걸어 다니는 것만 같다.


세월이 흘렀고 아들이 태어났다.

아들의 일상은 눈을 뜨면 공룡 장난감을 찾고, 잠자리는 공룡과 같이했다.

길기만 한 공룡의 이름을 자기식대로 줄여서 불렀다.

브라키오사우르스는 브락코

트리케라톱스는 트라기로 부르는 식이었다.

공룡이 나오면 만화부터 다큐까지 봐야 했다.

더 이상 볼 게 있나 싶을 때, 쥬라식 파크를

아들과 봐도 될까? 망설였다.

아직은 해맑기만 한 어린아이에게 잔인한 장면이 많은 영화를 보여줘도 될까?

사람이 산채로 먹히고 팔이 떨어져 나가고 하는 영화잖아..

더구나 겁도 많은 아이인데..

그러나 같이 보기로 했다. 쥬라식 파크처럼 실감 나는 공룡 영화가 어딨어?


집에 단 둘이 있는 어느 날이었다. 장난감 갖고 놀아주기도 지쳤을 무렵이었다.

쥬라식 파크 DVD를 플레이시켰다. 일단 말 많은 앞쪽은 넘기고 박사일행이 들판에서

공룡들과 마주치는 장면부터 보기 시작했다.

아들은 다물어지지 않는 입으로 영화에 빠져 들었다.

박사보다 더 놀라는 아들의 눈.


그 후로 쥬라식 공원 DVD는 닳도록 플레이됐다.

아들은 거실에서 놀 때면 의례 DVD를 플레이시켰다.

아들은 영화를 보는 것에 멈추지 않고 공룡들과 대화를 하고 싸움을 붙이고,

공룡의 울음소리와 걸음걸이 흉내를 냈다.

초식과 육식 공룡을 구별했고,

고학년이 되면서는 시대별로 공룡을 분리할 수 있었다.


아들의 정신 상태가 의심스러워 의사에게 묻기까지 했다.

"애가 공룡을 너무 좋아하는데 그냥 놔둬도 될까요?

"남아들에게 가끔 있는 일입니다.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의사는 공룡을 좋아하다가 고생물학과를 가게 된 아이 이야기도 해줬다.

고생물학자 그거 멋진데요.. 얼마나 벌지요? 는 내가 묻지 못한 질문이었다.

아들의 공룡 사랑은 중학교 고학년이 될 때까지 지속됐다.


공룡의 생김새부터가 마음에 안 드는 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언젠가 아들에게 물었다.

"넌 공룡 어디가 그렇게 좋았어?"

"그냥 좋았어.. 멋있고 이쁘고.."

"이쁘고 멋있다면 다른 동물들도 많잖아.. 공룡은 더 이상 존재하지도 않고.."

"잘 모르겠는데 더 이상 없으니까 좋아했을지도 모르지.."


이게 무슨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같은 이야기야!!



이제 쥬라식 파크가 몇 편까지 나왔는지도 모를 정도로 속편이 많지만,

사내아이들의 공룡 사랑이 있고 어릴 적 공룡과의 추억이 존재하는 한, 쥬라식 파크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일단 사업성은 확실하지 않나?


나에게 쥬라식 파크는 가장 많이 본 영화이기도 하지만

아들의 얼굴을 가장 많이 바라보게 만든 영화로 기억된다.

몸까지 떨어가며 경이로워하던 아들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아빠 가슴에 추억이 새겨졌다.


Jurassic Park (1993)

Director: Steven Spielberg

Cast: Sam Neil, Laura Dern, Jeff Goldbl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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