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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Hong Nov 30. 2023

빅 BIG

나의 동화

땅값 비싸기로 소문난 뉴욕의 센트럴 파크 남단,

5 에비뉴에 자리 잡고 있었던 장난감 가게.

어렸던 아들이 무척 좋아하던 놀이터였다.

아빠인 나는 장난감 가게에 입장해, 아이를 방목하듯 놓아주기만 하면 됐다.

아이가 만지고 싶은 것, 놀고 싶은 것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거의 한 블록을 차지하고 있던 넓은 공간은 지하를 포함해 2층까지 장난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2층에는 그 유명한 발로 밟아 소리를 내는 거대한 건반이 있었다.


톰 행크스가 건반 위를 뛰어다니며 젓가락 행진곡을 연주했던 그 피아노(?)다.

나의 최애 영화 중 하나인 빅(Big)의 배경이 되는 곳. 지금은 자리를 옮겨 아쉬움만 남겨 주는 곳.

에프에이오(FAO)

아이라면 한 번쯤, 빨리 어른이 되는 상상을 해봤을 것이다. 어른이 되면 자고 싶은 시간에 잘 수 있고,

아이스크림 한 통쯤은 컴퓨터 앞에서 해치우고,

방청소하라는 잔소리도 안 듣고.. 이런 유아적 상상부터.. 좀 더 에로틱한 상상까지..

어른이 되면 내 멋대로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상상 말이다.


영화는 카니발에 놀러 갔던 아이가 하루아침에 어른이 되고, 온갖 모험 끝에 가족에게 돌아가는 모습을

그린다.

어른의 세게를 제대로 맛보고는 엄마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

어른이 돼봤자 별 볼일 없다는 걸, 영화는 잘도 보여준다. 이 영화가 어른을 위한 동화인 이유다.

어릴 적 자주 가던 장난감 가게가 배경인 이 영화를 아들과 같이 봤다.

장난감 가게에 들어설 때 네 눈이 두배로 커지기 시작했다는 것부터,

공룡 장난감이 있는 곳에서는 1시간 이상을 놀았다는 것, 갈 시간이 돼서 가자고 하면 일일이 공룡들에게 잘 있으라고 인사했던 에피소드 같은 걸

이야기하며 영화를 봤다.

아이에게 옛 추억을 이야기하며 자연스럽게 옛 기억이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친구 준석이가 빅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너무 재미있다며 추천을 했다.

"무슨 내용인데?" 네가 영화를 알기나 해?라는

심드렁한 자세로 물었다.

"애가 어른이 되고 어쩌고 저쩌고.."

"제목이 뭐 그래? 빅? 제목부터가 마음에 안 든다. 안 봐."

"야! 진짜 재밌어 꼭 봐야 해!"

"나중에 보련다. 그 돈으로 딴 영화 볼 거다."

그리고 잊힌 영화가 됐다.


어느 날 준석이네를 놀러 갔다. 사내 둘이서 뭘 하겠는가? 라면이나 끓여 먹으려는데

준석이가 영화를 빌려 보잔다.

"뭐 볼 거 있어?"

"지난번에 얘기했던 영화 빅!'

"넌 봤잖아!"

"한 번 더 봐도 돼."

그래도 미심쩍었던 나는 끝까지 이기주의자였다. "비디오 빌리는 값은 네가 내!"


준석이네 집이었으니 라면은 당연히 준석이가 끓였고, 영화도 준석이가 보고 싶었던 영화였으니

비디오 값도 준석이가 지불했다. 학폭 그런 거 절대 아닙니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나는 라면이 불건 말건 영화에 빠져 들었다.

영화가 너무 이쁘고,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한

묘한 감정을 일으켰다.

준석이네 집을 나서 집에 오는 길,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빅을 빌렸다.

그리고 또 봤다. 영화는 또 끝났다.

아쉬움 끝에 결론을 내린다.

뉴욕에 가야 한다! 그곳에서 살아야 한다!

영화 속 아이가 어른의 세계를 동경했듯, 나는 뉴욕을 동경했다. 그곳에 가면 뭔가 이뤄질 거 같았다.

군 제대 후, 복학을 했지만 적응 못하던 시절이었다.


역시 뉴욕에 간다고 무슨 뾰족한 수가 생기겠는가?

기껏해야 입장료 없는 장난감 가게나 가겠지.

그 답은 중년이 된 지금 절실히 느끼고 있다.

결국엔 나와의 타협.. 지금 꼭 뭐가 돼있어야 해?

아직 안 됐으니 기회는 열려 있는 거지.

뭐라도 됐다면 자기 성찰할 시간이나 있겠어!

시간이 있으니 자기 성찰도 하고, 나를 용서할 여유도 생기고 그런 거지....

영화 속 이야기처럼 내가 갑자기 어른이 된 게 아닌가! 상상해 본다.

늙은 몸에 못 미치는 정신 연령.

어릴 적 집으로 돌아가 본다. 집은 그곳에 없었다.

잡히지 않는 그리움만큼 세월은 흘러 버렸다.


돌아갈 어릴 적 집 같은 건 이제 없다.


내가 돌아갈 곳은 뉴욕의 조그만 아파트.

어찌 됐건 그토록 갈구하던 뉴욕에 살고 있다.

그런데 뭐가 불만이냐 굽쇼?

연어 같은 생선도 귀소본능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Big (1988)

Director: Penny Marshall

Cast: Tom Hanks, Elizabeth Perk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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