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메이트

블루 뉴욕 5화

by Henry Hong

미국의 뉴욕, 나 아는 이 없던 곳에서 나를 알아가는 이가 생겼다.


한국에서 그 들어가기 힘들다는 홍대를 졸업하고, 등록금만 5천만 원이 넘는 NYU 미대를 다시 다니는 자.

돈 많은 부모 만나 모든 걸 쉽게 가질 수 있는 자. 받는 것에만 익숙한 자. 저주받아 마땅할 거만함.

내가 주는 방세는 모두 개인 작업비에 쓴다는.. 내가 묻지 않은 대답.

고생이라는 것을 겪어 본 적이 있을까?. 고생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고나 있을까?

이런 인간이 나를 모멸감 어린 눈초리로 쳐다본다.

어느덧 나는 그자의 눈초리를 피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시선을 회피할수록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나를 괴롭힌다.

생각하기도 싫은 과거의 시선이 나를 쫒으며, 현재의 나를 추궁한다.


눈 시림이 시작됐다. 노래방에서 일할 때 생긴 눈 시림 증상이 다시 시작됐다. 그때나 지금이나 원인은 알 수

없다. 단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할 때, 증상이 나타난다고 짐작된다. 증상이 심할 때는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시려온다. 안약 같은 건 소용도 없다. 눈이 시려 올 경우에는 낮이건 밤이건 수면안대를 쓴 후에 웅크리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다. 웅크리고 앉아서는 심호흡을 한다. 아주 천천히 들 숨, 날 숨을 당기고 밀고를 한다.

어느 때는 증상이 쉽게 가라앉고 어느 때는 좀 더 길게 증상이 이어진다. 내 눈도 내가 어쩌지 못하는 순간이

나를 절망에 빠뜨린다.



얼마 전부터 집에서 전화를 사용할 때는 그자가 엿들을까 봐 이불속에서 통화를 한다. 누가 보냈는지 뻔히 알 수 있는 우편물도 신경 쓰인다. 내 우편물의 대부분은 고지서이지만 간혹 랭귀지 스쿨의 우편물이 포함되어 있어 당혹스럽다.

박사과정 중이라는 얘기를 괜히 했나?라는 후회 아닌 후회도 해 봤다. 그러나 후회는 이미 늦었다.

한인타운에서 랭귀지 스쿨 사람들과 밥을 먹기라도 할 때는 룸메이트와 마주칠 걱정에 전전긍긍한다.

어쩔 수 없이 이제는 랭귀지 스쿨에서 조차 철저히 혼자가 됐고 혼밥을 하는 것도 익숙해졌다.


룸메이트의 시선이 점점 나를 병적으로 만든다.


타임스퀘어비.JPG


뉴욕에서의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첫눈이 예상된 다는 일기 예보로 한층 들떠서 시작한 하루였다. 첫눈을 맞이하는 뉴욕에서의 겨울.

상상만으로도 설레는 날이었다 하지만 오후가 돼도 하늘이 어두워 지기는 했지만 눈은 내리지 않았다.

대신 주책없어 보이는 비가 내렸다.


그녀를 집에 데려온 첫날이었다. 집에 없을 줄 알았던 룸메이트에게 마지못해 그녀를 인사시켰다.

룸메이트는 아르바이트 여학생을 쳐다보던 노래방 사장의 눈초리로 그녀를 맞았다.

인사를 시켜주는 그 짧은 시간에 룸메이트의 시선은 카메라 줌인이라도 하듯 그녀의 눈, 코, 입술을 훑어 내려갔다. 상반신을 거쳐 그녀의 다리로 시선이 향할 때는 입가에 묘한 주름까지 만들며 몰입을 했다. 찰나의 순간,

나는 욕정의 눈빛을 봤다.

그자의 시선을 모르는 듯 친절히 인사를 건네는 그녀. 현관에 널려진 화구와 그림을 보며 어떤 질문까지 한다.

그냥 그림이 좋아서 그림을 그린다는 허세 가득한 그자의 소리. 나를 쳐다보는 비아냥 가득한 눈초리.


그녀와 그자의 첫 만남이 있고, 나는 이 삼일 생각을 해봤다. 더 이상 그자와 한 지붕 밑에서 같이 살 이유가

없음을 알았다. SNS로 그녀와 룸메이트가 친구 맺기 한 것을 확인 한 날이었다.

속 좁은 놈이라는 비판이 무서워 그녀에게는 싫은 내색을 못했다.



이사를 결정하고 룸메이트에게 계약기간 만료 전에 이사를 하겠다고 하니 계약금은 돌려줄 수 없다는 얘기를

한다. 울화가 치밀었지만 나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 원화의 가치가 떨어져 예금잔고 마저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상황.. 아쉬움은 크기만 하다.

내가 조심하며 참기로 했다. 참는 건 잘할 자신이 있다. 힘이 없으니 참는다.

그 참을성의 한계치를 모를지언정….



그녀가 우리 집을 방문하는 날이 많아질수록 나는 룸메이트의 시선을 더욱 의식하게 됐다.

하루 중 수면안대를 착용하는 시간도 길어졌다.

그자는 나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며칠 전이었다. 그자가 방에서 나오다가 나와 부엌 앞에서 마주쳤다.

그는 통화 중이던 전화기를 가리며 서둘러 제 방으로 되돌아갔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었다.

나는 유리컵을 조심스럽게 들어 그자의 방 벽에 밀착시킨다. 그 컵에 내 귀를 살며시 갖다 댄다.

두근거리는 가슴. 가슴이 울려와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다. 호흡을 가다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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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기찻길 건널목에서 기차가 어디쯤에 있을까? 기찻길에 귀를 갖다 댔다.

두 궁.. 두 궁.. 보이지 않는 기차는 내 쪽으로 오고 있었다.

두 궁.. 두 궁.. 두 궁....

기차가 눈에 들어올 때까지, 어린 나는 기찻길에 귀를 대고 있었다.

불현듯 그때의 기억이 나의 심장소리를 낮춰 준다.

자세히 들리지는 않지만 분명 가짜 명품에 대한 얘기였다.

내가 갖고 있는 물건들에 대한 얘기가 틀림없다.

여자 얘기도 하는 듯이 들리는데 나의 그녀 얘기를 하고 있는 거다.

혹시 그녀와 통화하고 있는 건 아닐까?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다. 나는 떨리는 귀를 컵에서 떼어내고 더 떨리는 손으로 컵을 벽에서 떼어낸다.


그자의 방문을 지나친다. 모멸감 때문에 부들부들 떨리는 내손을 한참 바라본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