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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Hong Jun 21. 2024

버리지 못하는 것들

영원한 숙제

워낙 좁은 공간의 아파트다 보니,

공간에 대한 욕구는 사라지지 않는다.

대학 간 아들과 헤어지며 유일하게 좋았던 점은 내 공간이 넓어졌다는 거다.

공간에 진심인 나에게 아내는 말한다.

"이거 버리고 저거 버리면 자리 넓어져.. 아.. 저거 갖다 버리면 진짜 자리 넓어지겠다!"

누가 그걸 몰라?

버릴 수가 없으니 문제지.

손때 묻은 물건들을 보고 있자면 감정의 선이 끊이질 않는다. 어쩌란 말인가!

유튜브로 쉽게 듣거나 볼 수 있는 음악 테이프나 CD, 영화 테이프.

무슨 인연으로 나와 같이 태평양을 건너왔을까?를 생각하면

도저히 버릴 수가 없다.

비단 태평양을 건너오지 않은 물품들도 마찬가지다.

같이 한 시간을 생각하면 놓아줄 수가 없다.

나이만큼 숙성되는 듯한 박스의 숫자만 늘어난다.

내 공간을 잠식한다.


음악 테이프를 또는 영화 테이프를 집어 드는 순간 그때 그 시간으로 나를 이끌어주는 마법.

물론 행복한 기억만 있는 건 아니다.

무기력을 느끼며 울던 기억도 있다. 그러나 어쩌랴 그것마저도 나의 일부였는데..

시간이 흐르니 그립기만 한 것을..


겨울이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어 거리는 한껏 들떠 있었다.

분위기에 질세라 술자리는 1차, 2차.. 를 거쳐 3차 자리를 찾고 있었다.

술기운에 몸은 무거워지는데 친구들 중 하나가 없어졌다.

그 친구를 찾으러 술기운의 인간들이 흩어졌다.

이성의 끈을 힘겹게 잡고 있었던 나는 그냥 서 있었다.

관철동 포시즌 카페 앞이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사라졌던 친구가 내 앞에 섰는데,

정작 이 친구를 찾으러 갔던 3명의 친구는 보이지 않는다.

화가 났다.

"너 인마 어디 가면 간다고 얘기를 했어야지! 애들이 너 찾으려고 흩어졌잖아!"

친구가 갑자기 코 앞으로 손을 내민다.

음악 테이프였다.

아까 술 집에서 나오는데 네가 좋아하는 음악이 나오더라고..  너 주려고

리어카 아저씨한테 사려는데 하필 그 노래 테이프가 하나 남았다며 창고에서

가져와야 한다네.. 미안 그래서 좀 늦었다."


나는 그 해 크리스마스를 뉴욕에서 맞았다.

혼자 방안에 쭈그리고 앉아 웬디스 햄버거를 크게 베어 물고

오랫동안 씹던 밤이었다.

친구가 건네준 테이프는 워크맨 속에서 돌고 돌았다.



어디 청춘의 잔재뿐이랴..

아들이 아기 때 쓰던 뽀로로 매트도 버리지 못한다.

아들과 레슬링을 했고 씨름을 했고

같이 낮잠에 빠져들던 매트다.

아이와 뒹굴던 매트를 쓸쓸한 쓰레기 수거장에 도저히 놓고 올 수가 없다.

시작이야 어떻든 18년을 같이 한 인연이지 않은가.

어느 날, 뽀로로 그림의 매트가 부끄러워 한쪽으로 개켜 놓았는데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는 아내의 잔소리에 다시 불려 나와

거실 바닥에 깔렸다. 매트는 역시 깔리는 게 고유기능이다.

매트가 차지하고 있던 공간은 당연히 다른 무언가가 차지하고 있다.


이거 좀 아니다 싶으면 그냥 갖다 버리는

아내에게 잔소리 들을 만하다.

옛 물건 정리하자는 아내에게 일일이 스토리를 이야기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니까 말이지.. 이 책은 누가 줬고.. 이건 아들 주려고 찾아 헤매다 산 장난감이고..

아.. 그건 처음으로 외국 친구에게 받은 선물이고.. 그래서 이 모든 걸 버릴 수가 없단 말이지..

이해가 돼? 설명하자면 긴 이야기인데 이걸 내가 꼭 설명을 해야 해!"

잘못하다간 감정싸움이 된다.

집이 좁아 어디 숨길 때도 없다.

큰 집 살 형편은 안되고

어디 창고라도 빌려야 하나 보다.


물건 정리? 영원한 숙제다.

문제는 나의 보물들이 남의 눈에는 쓰레기로 보인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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