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먹고사는 일
거리에 낙엽이 뒹군다.
떨어진 입맛, 밥맛은 돌아 올 생각이 없다.
식욕의 계절인데..
어차피 먹고살려고 하는 짓인데..
식욕이 떨어지니 일할 맛도 안 난다.
이 와중에,
하루 세 끼나.. 챙겨 먹는다고? 정말로?
그래서 뭘 먹는데?
그렇지 중요한 건 도대체 뭘 먹는데?
이것저것 맛있게 잘 먹는다는 믿지 못할 대답이 돌아왔다.
물러 설 수 없다. 다시 질문한다.
구체적으로 뭐가 맛있는데?
제철 과일도 맛있고, 와이프가 해주는 밥, 반찬도 맛있고,
술자리 안주도 맛있고..
그럼 뭐가 맛없는데?
끼기 싫은 자리에 껴서 먹는 밥.
이 인간이 입 맛없는데 장난하나? 당연한 얘기를 하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본다.
도대체 뭘 드시나요?
뭘 드셨길래 잘 먹었다는 얘기를 하시나요?
혹은 뭘 드셨길래 잘 못 먹었다는 얘기를 하시나요?
역시 사람이 문제였다.
억지로 껴야 할 자리!
밥 맛 떨어져서 가기 싫다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살았다.
살아남기 위해 상대방을 배려했다.
웃기지 않는 농담에 웃었고,
불합리에 고개를 끄덕였고,
미의 기준을 낮췄고,
살다 보면 그런 거라고 자기 체면을 걸었다.
구차하다는 생각은 그때도 했다.
그런 자리에서 음식이 들어갈 일은 없고
애꿎은 술잔만 기울이다 취해 버린다.
얼굴에 벌건 인주를 제대로 묻혔다.
거리에 낙엽이 뒹구니,
모임 초대장을 받기 시작했다.
몇몇 단톡방은 벌써 시끄럽다.
세상엔 부지런한 사람도 참 많다.
초대장을 노려보며 다짐한다.
절대로 가기 싫은 자리에는 안 가겠다.
얼굴 도장이라도 찍어야지? 싫다.
구차해지기가 귀찮아졌다.
너 왜 그렇게 사니? 스스로에게 묻는 게 귀찮아졌다.
가기 싫은 자리에 안 가면 해결될 일이었다.
모임에 갈 체력이 떨어지니 용기가 생긴 걸까?
내친김에 "당신들 밥맛 떨어져!"라고
폭탄을 던져 버릴까?
그동안 누구보다 크게 웃어주고 공감해 주고
예의 바르던 내가.
덧붙여서,
고상한 척, 우아한 척 하지만 지적 열등감에 시달리는 당신들 모습이
역겨워! 뭐 나도 같은 처지지만..이라고 말해 버릴까?
확 저질러 버릴까?
뒷감당이야 까짓 거 시간에 맡겨 버리면 되지.
사람은 이렇게 사고를 치나 보다.
이렇게 혼자가 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