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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없다.

필요충분조건

by Henry Hong

워싱턴의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2년여 만에 듣는 반가운 목소리였다.

궁금한 마음에 서로의 질문이 부딪쳤다.

오랜만의 안부를 묻고,

같이 일할 때를 추억하는 몇 분의 시간이었다.

전화를 끊고도 여운이 남았다.

동갑내기, 전 직장 동료.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를 공부한 사람

자식이 하나인 사람

미국에서 늙어가는 같은 처지의 사람

농담이라도 단 한 번도 말을 놓아 본 적이 없는 관계

이 사람을 친구라 불러도 될까?


스물다섯에 미국에 왔다.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직장 생활을 하고 가끔은 동문회에도 나가고..

무슨 무슨 협회에 가끔 얼굴도 디밀어 보지만 어떤 사람을 친구라

불러야 될지 잘 모르겠다.

누구는 어린 친구들이라며 젊은이들과 잘도 어울려 다니더구먼.

그 젊은이들도 그 사람을 친구로 생각할까?

괜한 자격지심?

진짜 궁금하다.


어느 모임에서 처음 만난 홍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동갑 나기에 성이 같은 사람이었다.

누구나 아는 대학의 교수였던 홍은 예의가 무척 바른 사람이었다.

일 때문에 그리고 우연한 만남이 몇 번 있고

어느 뒤풀이에서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술을 한 잔도 못한다는 그가 맥주를 두 잔이나 마셨다.

이럴 때 좋은 말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본능적으로 안다.

그가 대뜸 말했다.

"헨리 씨는 예의가 너무 바라요. 몇 번을 만나도 예의가 너무 바르다는 건,

상대에게도 같은 예의를 바라기 때문이죠. 저도 그래서 헨리 씨에게 예의를

다 하려고 합니다."

술자리의 들뜬 분위기,

술 못 마시는 사람의 폭음(?)

깊게 생각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평소에 부담스러울 정도로 예의가 바르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지금 내 탓을 하는 거야?

나는 과하게 잔을 부딪치고 다음에는 막 대해주겠다는 정도로 넘겨 버렸다.

다음번에는 말을 놓고 친구 하자는 말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그다음에도, 당연히 예의는 지켜졌다.

같은 공간에 서먹함을 더한 만남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성인이 되어 만난 동갑내기들

혹여 생길 거침없는 반말이 거슬렸을까?

그들이 얕잡아 볼까 두려웠을까?

유달리 동갑내기들에게 깍듯한 예의를 지키려 했다.

그게 상대에게 바란 예의였다고?

나는 애초에 친구가 될 생각이 없었던 건가.

예의라는 돌로,

차곡차곡 벽을 쌓아 올려 뭘 어쩌려 한 걸까?

그들에게 가깝다고 느끼지 못 한건

나 때문이었을까?

그들과 싸워 본 적도 실망한 적도 없으니

우리는 친구가 아니었다 말해야 하나?

물음표만 남는다.


나이도 다르고 국적도 다른 사람들을 친구라 부르고 있다.

왜?

서로에 대한 예의가 없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다 보니,

돌려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You are very very ugly!"

"You are so fat!"

훅 들어오는 말이 직구를 넘어 폭탄급이다.

쌍욕도 술술 나온다.

술을 마시면 술꼬장마저 영어로 해야 했다.

문화가 다르다 보니 언쟁도 많다.

흡연은 무조건 실내에서 해야 맛난 다는 놈.

설거지는 최대한 모아 놓고 해야 직성이 풀리는 놈.

빨래를 너저분하게 널어놓는 놈까지..

국적 다른 인간들에게 열받고 스트레스받는 일 숱하게 많았다.

매일 밤 살인 충동에 시달리기도 했다.

물론 그들도 같은 심정이었겠지.

아무튼 살아남은 인간들이 내 친구가 되었다.

나에게의 친구는 서로의 바닥을 봐야 하나 보다.

마치 저 높은 벽 아래의 머릿돌을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듯이.

인생 친구 정도하려면 친구 필요충분조건 같은 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베이테라스벽.jpg


이 글을 쓰며 마음의 벽을 조금이라도

허물어 볼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아니다.

새 친구 사귈 자신도 없다.

무례한 것들 보기 싫어 예의를 지키련다.

친구 그까짓 거 한국에 있다.

예의라는 단어조차 몰랐을 그때 그 시절에 시작된 인연.

나의 바닥을 본 사람들.

친구가 있다!

그들이 사무치게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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